주여,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

날짜: 
2002/11/25
설교: 

제 목 : 주여,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
본 문 : 고후 1:3-7

이 외국 땅에 살면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 혹은 남으로부터 상처를 당했을 때, 혹은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겼을 때의 답답함과 허전함, 그리고 우울함과 초조함은 한국에서의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음.
한국 같으면 그럴 때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한 친구나 이웃에게 전화를 걸든지 그들과 만나서 자기의 심정도 털어놓고 위로도 받고 격려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이런저런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이런저런 곳에 다니며 쇼핑도 하고 바람도 쐬는 중에 그 답답함과 우울함을 풀기가 쉬울 것임.
그리고 좀 더 믿음이 있는 분들은 산 기도도 다니고 가까운 기도원도 다니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중에 그 우울함과 답답함을 풀 수가 있음.

그러나 이곳 외국 땅에 살면서는 언어와 문화, 인종과 음식이 틀려 허전함과 공허함을 달래기가 쉽지 않고 우울함과 답답함을 풀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기 캐나다보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 분들은 이런저런 일로 인해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할 때 우울증 증세와 함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을 내 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하지는 못하는 것이 이민이나 유학 온 사람들 대부분의 형편이다 보니 외국 생활 속에서 겪는 고통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이런 탄식을 해 봅니다.
"내가 이 땅에 무엇 때문에 왔는가 ? 울려고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
여러분, 우리가 내 고향 한국을 떠나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나라 중 하나인 캐나다로 이민이나 유학을 올 때에는 뭔가의 기대감과 꿈을 품고 이 땅에 왔지 단지 울려고 오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이 꿈꾸고 목적했던 것을 어느 정도 성취하고 보다 떳떳하게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에게 연락도 함으로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에 큰 보람을 느끼려고 왔지 허전함과 공허함에 빠지려고 오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

그런데 이 외국 땅에서 어느 정도 살다보면 이곳도 우리 마음먹은 대로 쉽게 꿈이 성취되는 곳이 아닌 것을 알게 됨.
더구나 이 외국 땅에서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가 다가오고 장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생길 때,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손길은 너무도 막막하고 미약하고 멀리 있을 때 우리는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시고, 나의 형편을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어야 됨.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정의를 모두 갖추신 인격적인 분이심.
즉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상황을 모두 잘 아시고 있고, 우리 마음의 희로애락도 모두 느끼시고 있고, 우리를 위해 의지를 갖고 열심히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심.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 슬퍼할 때, 답답할 때, 허전할 때, 걱정할 때, 곤고할 때 주님은 바로 이때 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오셔서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원하심.

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은혜와 자비를 베푸냐고 그렇게 촌스럽게 묻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본래 자비로운 분이시고, 본래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되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는 분이심.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그 자녀가 자기 아버지에게 "아버지, 왜 날 사랑하는 거예요 ?" 라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묻는다면 오히려 무식하고 촌스런 질문임.

여러분, 잊지마십시오.
이 온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심. 고로 아버지로서 자녀된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 우리를 위로하고 힘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심.
여러분, 잊지마십시오.
당신이 이 외국 땅에서 여러 가지 상처를 당하고 문제를 만나 마음이 처지고 왠지 모르는 공허함 속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께 가장 가까이 계셔서 당신을 위로하기 원하심. 힘을 주고 격려하여 당신의 처진 어깨를 바로 세워주고 세상을 이길 용기를 주시길 원하심.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상쾌하게 만드실 수 있음.
고로 이 외국 땅에서 당신이 힘들고 쳐질 때, 답답하고 허전할 때, 슬프고 괴로울 때 '하나님 아버지, 저를 위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은 그 옛날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셨던 성령님을 오늘날에도 보내 주시어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음.
원래 성령님이란 '옆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는 분'이란 뜻임. 그래서 성령님이 오셨다는 것은 곧 위로자가 내 옆에 오셨다는 뜻임.
혹 여러분의 추억 속에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가장 따뜻하고 가장 포근하게 위로해 주셨던 분이 기억나지는 않습니까 ?
물론 세상이 워낙 각박하다보니 사람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러한 추억이 없을는지도 모름.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시며, 나의 가장 못난 점도 끝없이 감싸줄 수 있는 그 분이 바로 내 곁에 있다면 인생을 사는데 얼마나 마음의 평안함과 든든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여러분, 결코 잊지마십시오.
바로 당신 옆에는 한없이 당신을 위로해주시는 성령님이 와 계심.
고로 이 외국 땅에서 마음이 울적하고 슬플 때, 허전하고 공허하며 답답할 때, 용기를 잃고 어깨가 처지고 낙심될 때 이렇게 솔직하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나를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

대저 성경 속의 신앙의 위인들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했고, 그 기도에 따라 하나님이 그들을 넉넉하게 위로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음.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시86:17)
"하나님이여 나를 더욱 창대케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71:21)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또한 하나님도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심.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곧 내니라."(사51:12)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사66:13-14)
"영원한 위로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로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2:16-17)

여러분, 사도 바울은 외국 땅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며 하늘나라를 세우는 가운데 때로는 큰 환난과 각종 어려움에 처하여 낙심할 때가 있었음.
그러나 그에게는 항상 옆에서 그를 위로해주시는 주님이 계셨기에 다시 용기를 얻고 꿋꿋이 사도의 길을 갈 수가 있었음.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함.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로부터 복음을 받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튼튼히 서가는 성도와 교회를 바라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음.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위로를 얻었노라."(몬1:7)
"내가 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살전3:7)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3:11)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심.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서로를 위로해야 함. 서로에게 용기를 주어야 함.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위로로도 부족할 때 위로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넉넉하게 위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어야 함.
그래서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고 용기와 힘을 얻고 꿋꿋이 성도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함. 그리고 그들이 용기를 얻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