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순간에는

날짜: 
2003/03/17
설교: 

제 목 ;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 문 ; 에 9:20-28

운동경기를 보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이란 말이 많이 쓰여집니다.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당당히 4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골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구에서도 보면 주자가 나가 있을 때 결정타가 터지면 게임을 이기게 되고 반면 주자가 아무리 많이 나가도 결정타가 제대로 터지지 않으면 게임에서 패하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운동 선수 중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거나 안타를 치므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헛발질을 하거나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물러나는 선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비단 운동 경기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서 많은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반면에 결정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여 아주 큰 이익을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정치가들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악수를 두므로 일생일대에 한이 될 만큼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면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수를 두어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앞길의 환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선택이나 좋은 역할을 하므로 승리와 축복과 행복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안 듣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에 100% 확신하며 선택을 한 것이 그만 악수가 되어 결정적인 패배나 불행의 요인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만 그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잘못하므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후회를 하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 반면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좋은 선택을 하므로 늘 그 일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는 분은 안 계십니까 ?

요즘 한국에는 '올 인(All In)'이라는 드라마가 '야인 시대' 만큼이나 굉장히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올 인'이란 도박하는 데 쓰이는 용어로서 '마지막 승부에 모든 것을 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승부의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뜨면 그동안 잃었던 것을 일순간에 다 찾게 되고 큰 행운을 얻게 되지만, 반면 그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바라던 것이 뜨지 않으면 인생은 더욱 비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비참한 인생이 되느냐 혹은 기가 막히게 좋은 인생이 되느냐는 결정적인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과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원하는 일이 제대로 풀어지므로 그 동안 겪었던 수고와 노력에 대한 보람과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입니까 ?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오히려 일이 꼬이므로 그 나중이 더욱 비참해지는 사람입니까 ?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악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므로 그 나중이 비참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므로 그 나중이 아주 좋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오늘 본문에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메대와 바사 나라의 국무총리로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대궐 문을 출입할 때면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마치 신처럼 경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인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그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자 하만이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모르드개의 종족인 유대인을 전부 박멸하는 왕의 교서를 꾸며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유대인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마는 민족적인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너무도 다급하고 슬픈 나머지 모든 유대인들은 옷을 찢고 재에 누워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하만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성문 앞에 높은 장대를 세우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순간의 날이 다가오자 상황은 180도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놓은 그 높은 장대에 오히려 하만과 하만의 가족이 죽어서 매달리게 되고 모르드개는 국무총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죽이려고 했던 그 날은 오히려 유대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날로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도와주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인들은 '부림절'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메데와 바사 나라에 있던 유대인은 모조리 멸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사망은 생명으로, 절망의 탄식은 환희의 노래로 바뀌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결코 잊지마십시오. 이 이국 땅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나셔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이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인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이 외국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안식과 평안을 누리고 떳떳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
저와 여러분이 한국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이곳에 온 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귀한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 믿으십시오. 보통 때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을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고 당신이 꼭 필요한 그 순간에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궁핍에서 풍족함과 부유함으로 채워주십니다. 고로 당신은 이 외국 땅에서도 이렇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1,4)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이 외국 땅에서 혹 당신에게 어려움이 다가올 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것을 100% 믿습니까 ?
당신이 혹 병이 들 때, 그리고 그 병이 이곳 캐나다 앨버타의 의료제도로도 치료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시고 당신을 깨끗하게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까 ?
혹 당신의 가족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이 생길 때 "금도 은도 다 내 것이라"(학2:8)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가족에게 물질을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까 ?

대저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확신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그리고 나를 도와 주신다.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를 도와 주신다. 고로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아니한다.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여러분, 열왕기하 6-7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아람 나라 왕 벤하닷이란 사람이 온 군대를 몰고 와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오랫동안 포위했습니다. 그러자 성안에는 굶주림이 너무나 심하여 평상시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귀 머리도 거금에 거래되고, 심지어 비둘기의 똥도 양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이스라엘 왕이 성 위를 걷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다가와 왕께 하소연을 합니다.
"왕이여, 도와 주소서. 옆집에 사는 여인과 제가 '오늘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내일은 네 아들을 삶아 먹자'고 굳게 약속을 하고 어제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제 와서 옆집 여인이 자기 아들을 내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옷을 찢고 신하에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선지자 엘리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 빨리 가서 엘리사 선지자의 목을 쳐라."
환경이 극도라 나빠지자 이스라엘 왕은 처절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아예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아갔지만 엘리사는 이 와중에서도 성령의 감동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 한 부대가 1달러에, 그리고 보릿가루 두부대가 1달러에 거래가 되리라."

이 말을 전해들은 이스라엘의 한 군대 장관이 엘리사를 조롱하며 말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
즉 아무리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군대 장관을 향해 말을 합니다. "네가 네 눈으로 이것을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너는 먹지 못하리라."
즉 하나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아예 신앙을 포기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문 어귀에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소외된 네 명의 문둥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야, 우리가 어찌 여기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느냐 ? 성안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으니 차리리 아람 나라 군대에게 나아가자. 저들이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요, 기왕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먹는 희망이라도 품고 죽어보자."
이렇게 말하고 네 명의 문둥이들이 황혼에 이르러 아람 나라 진으로 나아갔는데 이상하게 아람 나라 군대의 진이 쥐죽은듯이 조용합니다.
"어- 이상하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생각하면서 보니까 아람 군인들이 산더미 같은 군량미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군대의 소리와 병거 소리를 듣게 하므로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의 군인들과 애굽 나라의 군인들을 돈으로 사서 자신들을 치러 온다고 생각하여 겁을 먹고 황급히 도망을 가고 만 것입니다.
네 명의 문둥이들은 그곳에 널려진 양식을 먹고 또 먹고 금과 은과 의복을 감추고 또 감추고 나서 보니까 자기들의 행위가 바르지 못한 줄을 깨닫고 말을 합니다. "야, 오늘 같이 좋은 소식을 우리가 성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알려야지, 이렇게 우리만 먹고 있으면 되겠느냐 ?"
문둥이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성들이 아람 진에 가서 본즉 나귀와 금과 은과 의복, 그리고 군량미가 길에 널려 있었습니다.
결국 엘리사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사마리아 성문에서는 밀가루 한 부대가 1달러하고, 보리 두 부대가 1달러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때로는 환경이 어려워질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 외국 땅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한국에서 당하는 그것보다 더욱 난감하고 심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처럼 하나님과 선지자를 탓하거나 원망하여 믿음을 포기하는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죽겠다, 못살겠다, 끝장이다, 될 대로 되라."는 비관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처럼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말을 뱉지 마십시오.

엘리사처럼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성경은"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로 믿음을 가지십시오. "오늘의 환경이 비록 나의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할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라고 힘있게 외치십시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십시다.
고로 우리는 패하는 것 같지만 결국 승리를 합니다. 망하는 것 같지만 결국 흥하게 됩니다. 약한 것 같지만 오히려 강하게 됩니다. 슬픔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나중은 굉장한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바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