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도피냐? 현실 승리냐?

날짜: 
2008/10/13
설교: 

왕상19:1-8 현실 도피냐? 현실 승리냐?
혹시 이 자리에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어디론지 멀리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생명이 있는 한 현재라는 시간과 현실이라는 환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현재와 현실을 초월하며 살지는 못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현재와 현실이라는 감옥과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와 현실의 울타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그 울타리가 자기를 힘들게 할 때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곳 캐나다 땅이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우리는 “아- 이곳을 떠나 어디론지 멀리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 이곳에 갓 오신 분들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럴 여유도 없겠지요.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그 한국의 현실 상황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아- 이곳 한국 땅을 벗어나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 속에 이 캐나다 땅에 왔다면 이곳은 한국보다는 자유와 행복을 느끼는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외국 땅에서도 어렵고 힘든 현실과 부딪히게 될 때 이런 노래가 나옵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물론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같이 웃을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의 현실은 그래도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하면서도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현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현실을 깨뜨리고 싶거나, 혹은 그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과 마약과 노름과 섹스로 현실을 잊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인터넷이라고 하는 사이버 시대에 사는 청소년들은 아예 현실을 떠나서 인터넷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종의 현실도피 현상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혼자 방문을 잠그고 자기 방에서 며칠동안 나오지 않습니다. 현실이 싫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비관이 지나치게 되면 극단적이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무작정 사람들을 죽인다든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우리는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살 사건을 보면서 참으로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사건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분들 중에도 상당수가 자살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원인은 대부분 현실에 대한 비관 때문입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수많은 빚을 져서 날마다 빚 독촉을 받습니다. 때때로 빚쟁이로부터 협박과 공갈도 받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공격과 함께 공포도 느낍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들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생길 수 있는 불안함이 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면서도 가위에 눌립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식은땀이 흐릅니다. 깨어나도 한숨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전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탈출구가 없습니다. 이때 누구나 본능적으로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외국이 도피처가 되기도 합니다. 혹은 외딴 섬에 도망가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한적한 산에 있는 기도원 굴속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인 엘리야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우상숭배로 인하여 극도로 타락한 시대에 사역하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종들이 우상숭배자들에게 죽었습니다. 나라는 큰 가뭄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탄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혼자 고군분투합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자들과 일전을 벌립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응답의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인 것을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 우상숭배자들을 처형합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던 비를 내리게 합니다. 이제 가뭄이 물러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왕 아합도 이런 기적을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우상에서 떠나 능력의 하나님께로 돌아갈 조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아내 이세벨에게 이런 사실을 다 고하자 우상숭배에 미친 그의 아내 이세벨이 흥분하여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갑자기 힘이 쭉 빠졌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소낙비가 내려서 큰 하나님의 권능을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들이 직접 보았기에 이제는 현실이 바뀔 줄 알았습니다. 왕도 백성들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올 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제 악한 시대가 가고 선한 시대, 소망의 시대가 펼쳐질 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기대는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도리어 자기의 생명이 심히 위태로웠습니다. 왕비가 자기를 내일 이 맘 때가지 죽인다고 자기의 신들에게 맹세를 하고 덤벼들었습니다.
이제 현실은 어제보다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내일도 미래도 캄캄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현실을 도피합니다. 이세벨의 군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브엘세바 광야로 황급히 도망갑니다. 그리고 자기의 사환도 떼어놓고 혼자서 더욱 깊은 광야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그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왕과 왕비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마당에 이제 어디로 도망갑니까? 도저히 살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브엘세바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숨어 지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제 최후의 도피처를 찾습니다.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는 지치고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잠을 잡니다. 그렇게 잠을 자다가 그대로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괴로워하는 엘리야를 그냥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천사가 다정스럽고 포근하게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엘리야야, 일어나서 먹으라.” 엘리야가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또 다시 깊은 잠을 잡니다. 그리고 또 얼마를 지났는가 하나님의 천사가 다시 나타나 또다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엘리야야, 일어나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그렇게 엘리야는 잠을 푹 자고 음식을 먹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사십일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또다시 굴속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굴속에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러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기의 사정을 일일이 아룁니다. “하나님, 아시다시피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참으로 열심히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저들은 모든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의 목숨까지 빼앗으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할까요?”
현실이 캄캄한 엘리야를 향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다메섹 광야를 통과하고 나아가라.(Go back the way you came, and go to the Desert of Damascus." 이 말씀의 뜻은 현실도피생활을 끝내고 다시 힘을 얻어 현실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그곳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즉 다시 현실로 돌아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쁜 현실이 바꿔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가 현실을 무서워하여 도피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엘리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나쁜 현실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 드디어 하나님은 불말과 불수레를 보내시어 엘리야를 하늘로 옮기셨습니다. 그때에는 엘리야가 현실 도피자가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한 현실 승리자였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현실 도피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현실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현실 승리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외국 땅의 현실 속에서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길고도 캄캄한 캘거리의 겨울 속에서도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고 힘차게 전진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과 교회 창립 11주년을 기념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어려운 현실을 제법 겪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뒤로 후퇴하거나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버티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실을 사는 우리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 외국 땅의 현실 속에서 하늘나라를 가꾸는 저와 여러분들을 살피시고 있습니다.
혹 엘리야처럼 캄캄한 현실 속에서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합니다. “엘리야야, 힘을 내라! 엘리야야, 힘을 내라! 정녕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정녕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주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권능의 오른 손으로 내 뜻을 이루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