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적과 기독교

날짜: 
2009/01/24
설교: 

요2:1-11, 4:46-54 예수님의 기적과 기독교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은 30년간은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역이 시작되어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죽기까지 3년 반 동안 많은 기적들을 베푸셨습니다.
오늘 본문(요2:11)에 보면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은 본문(요4:54)에 보면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갈릴리 가나 지방에서 맹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로 만든 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고, 오늘의 본문에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것이 두 번째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기적을 통하여 기독교가 과연 어떤 종교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기독교 밖에서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적과 다른 기적과의 차이점은 그 기적 속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성경 (살후2:9-10)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즉 예수님이 있는 기적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지만 예수님이 없는 기적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없으므로 결국 영원한 사망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두 기적을 통하여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고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의 생명과 함께 행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과 기독교
하루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라는 지방에서 온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예수 선생임, 존체일양망강하시옵나이까? 다름이 아니오라 그 동안 선생님께서 아껴 주셨던 한 사랑 씨의 장남 한 소망 군과 이기자 씨의 차녀 이기순 양의 결혼식 및 피로연이 아래와 같이 있사오니 부디 참석하셔서 축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신랑신부 올림."
이 같은 초청을 받은 후 예수님의 어머님이 먼저 음식 만드는 일을 돕기 위해 결혼식 잔치자리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이 먼저 택한 5명의 제자들과 같이 그 자리에 가셨습니다. 한창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님이 예수님께 황급히 달려와 말합니다. "아이고, 큰일 났다. 여기 포도주가 떨어졌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어머님이 그 집 하인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애들아, 너희들 저 안에 계신 분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여라." 얼마 후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애들아, 저기 물 담아 놓은 항아리 여섯 개가 있는데 그곳에다 가득히 물을 채워라."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구까지 물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
하인들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니, 연회장이 포도주를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맹물을 가지고 가면 어떡해? 우리 되게 혼날 텐데! 그래도 끝까지 순종해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맹물이 변하여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혼인잔치 자리는 더욱 큰 기쁨의 자리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첫 번째 기적을 통하여 기독교는 바로 변화의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같이 기독교는 죄인을 의인으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과 같은 생활을 천국과
같은 생활로, 원망을 감사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간 예수님을 믿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배운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변했습니다. 한국의 오산리에 있는 순복음 기도원에서 성령이 임하자 그토록 끊기 어려웠던 술과 담배가 하루아침에 끊어졌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그저 윤리나 도덕만을 가르쳐주는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무식했던 갈릴리 어부인 베드로가 성령의 은혜를 받자 복음을 깨닫고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그리고 갈대처럼 연약한 그가 튼튼한 반석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요4:13-14)
사람들이 베드로가 변화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실패자를 성공자로, 소극적인 자를 적극적인 자로, 부정적인 자를 긍정적인 자로, 두려워 떠는 자를 담대한 자로, 신경질을 부리는 자를 온유한 자로 변화를 시킵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장차 기족교가 변화의 종교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기적의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후 사흘 동안 물이 떨어졌습니다. 기진맥진하여 광야를 통과하는 중에 드디어 물을 발견했습니다. "야, 물이다!" 그런데 마셔보니 도저히 먹지 못하는 쓴물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목말라 죽겠는데 쓴물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듣고 지시합니다. "모세야, 저기
한 나무를 물에 던져라." 모세가 하나님이 지시한 한 나무를 물에 던지니까 그 쓴물이 변하여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바로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 십자가의 죽음은 쓴물과 같은 인생, 쓴물과 같은 환경, 쓴물과 같은 마음을 단물과 같은 인생, 단물과 같은 환경, 단물과 같은 마음으로 변화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이 없는 맹물과 같은 인생이 기쁨이 넘치는 인생으로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처와 슬픔과 고통의 인생도 변화되어 단물의 인생,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자손이 없던 아브람도 100세에 기적적으로 자손을 갖는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던 슬픔의 여인 사래도 90세에 아기를 출산하는 열국의 어미 사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도한 사기꾼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이스라엘로 변화가 되었고, 갈대 시몬이 반석 베드로로 변화가 되었고, 교만하고 핍박자인 사울이 겸손한 사도 바울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지조각처럼 꾸겨진 넝마 같은 인생도 변화여 장미꽃 같이 피어나는 인생으로 변화가 됩니다. 고로 성경은 증거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을 통하여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근심도 변하여 기쁨과 행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두 번째 기적과 기독교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베푸신 갈릴리 가나라는 지방에 다시 이르렀습니다. 가버나움 동네에 사는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와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 제 사랑하는 아들이 심한 병으로 곧 죽게 되었습니다. 빨리 오셔서 좀 고쳐주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마중 나온 하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하인이 말합니다. "주인님, 아드님이 살았습니다. "그래, 언제 나았느냐?"하고 물어보니 바로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하던 그때에 아들의 열기가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번째 기적을 통하여 기독교가 치료의 종교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참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열병, 중풍병, 문둥병,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간질병, 고창병, 혈루병, 그리고 죽은 자도 살리심으로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오늘 이 자리에도 주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기 원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료에 대하여 "그것은 샤머니즘이고 미신적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기독교는 오히려 치료의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합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귀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명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그리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이유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벧전2:24)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오늘도 주님은 이렇게 치료의 말씀을 통하여 병든 자를 고치시기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시편 107:20절의 말씀입니다.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시느니라."
저희 가정에도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저dml의 어머님의 경우 만성 축농증으로 늘 코피가 나고 날마다 휴지로 코피를 닦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언제부터인가 감쪽같이 축농증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누님의 경우 만성 위장병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위장병도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5:15)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환자를 고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병 고침 받는 것은 결코 미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 중의 핵심입니다. 육체 및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요, 기독교인의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내 가족이 병이 들렸을 때에 후퇴하지 마시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병을 고쳐 주십시오." 아무쪼록 병에서 놓여나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와 윤리와 도덕과 철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기적 중에 변화의 기적이 있습니다. 치료의 기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를 맛보아야 합니다. 불행이 변하여 반드시 행복이 되어야 합니다. 질병은 치료되고 반드시 건강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변화와 치료의 기적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