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으면 돈이 생기나?

날짜: 
2009/02/02
설교: 

눅5:1-11 예수 믿으면 돈이 생기나?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돈을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돈을 너무 사모하고 돈을 너무 사랑하므로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돈으로 인해 많은 근심이 생기고, 돈으로 인해 생긴 근심은 결국 날카로운 칼과 창이 되어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돈에 대한 잘못된 태도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딤전6:10)
우리는 황금만능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나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사상을 강력히 경계해야 합니다. 성도님들 중에도 보면 돈 벌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돈이 많으므로 그 돈을 쓰기 위해서 주일날 교회도 못 오고, 또 돈 관리하고 돈 버는 방법 연구하느라고 주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고, 돈 때문에 싸우고 다투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렇게 돈에 대한 집착력은 대화중에도 쉽게 나타납니다.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입니다. 교회 좀 오십시오." "교회 가면 예수가 밥 먹여줍니까?" "예, 저희 교회는 주일날 예배 마치고 항상 밥 먹여줍니다. 매주 불고기 반찬도 나오고요. 먹을 만합니다." "허허, 주일 한 끼 먹여준다고 교회에 나가면 내가 거지입니까? 홈리스입니까? 아직 한 끼 정도 해결하는 것은 내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저... 예수님이 한 끼만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평생도 먹여주고 돈도 주는데요." "그래요. 당신 그 말에 진짜 책임질 수 있습니까?" "예, 저는 책임을 못 져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신 예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우리는 전도자의 신앙과 불신자의 관심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예수님이 만일 밥도 주고 돈도 주면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그 불신자에게 많은 돈을 주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 외국 땅에서 예수님이 많은 돈을 준다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이 생기겠지요. 그런데 이 대화에서 보면 전도자는 예수님이 평생 먹여도 주고 돈도 준다는 체험적인 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전할 때에 그저 종교가나 철학자로서의 예수님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실제적인 구원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전도자라면 어떻습니까? 과연 예수님이 우리들의 빵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도 주시는 실제적인 삶의 구원자로 증거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은 그저 우리가 죽을 때 천국만 데리고 가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착하게 살도록 훌륭한 교훈만 하신 종교가나 도덕가로만 알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베드로와 안드레를 비롯해 요한과 야고보는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수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곧 돈입니다. 부요입니다. 축복입니다. 번영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반면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돈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저주입니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이들이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비즈니스가 공친 것입니다. 장사 파리 날린 것입니다. 수고비도 안나왔습니다. 심신이 피로합니다. 집에 가면 가족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심신이 피로한 베드로에게 배 좀 빌리자고 했습니다. 빈 배를 강대상 삼아 해변에 모인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밤새도록 일을 해서 지금 몹시 피곤한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배를 빌려드리지요." 요즘 말로 하면 "예수님, 저 어제 철야 근무 했거든요. 지금 피곤해요. 잠자야 되요. 나중에 교회 갈게요." 하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복을 받으려고 했던지 피곤한 중에도 배를 빌려 드렸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피곤해도, 지치고 고단해도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롬10:17) 베드로에게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한 말씀 더 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물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의 경험에 비추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조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바다는 워낙 물이 맑아서 밝을 때에 그물을 내리면 물고기가 그물 내려오는 것을 보고 다 도망가고 맙니다. 그러니 밝을 때에는 깊은 데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권세가 있으시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비록 몸이 극도로 피곤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세상에 물고기가 그물에 걸렸는데 도저히 믿지 못할 정도로 많이 걸렸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배는 물고기로 가득하게 되고, 옆에 있던 동료의 배도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부들이 그렇게 꿈꾸던 만선의 축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많은 물고기 팔면 뭐가 됩니까? 돈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빵을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순종한 베드로에게 돈도 주시고 빵도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나 많이 주셔서 베드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놀랄 정도로 베드로에게 돈도 주시고 빵도 주시는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실 수 있습니다. 조금 전 전도자가 불신자에게 말한 대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평생 먹을 수 있는 빵도 주시고 돈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아직도 못믿으시면 노멘?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양식이 없어 굶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40년간 만나를 주어서 그들을 배불리 먹여주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며불며 야단법석을 칠 때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서 한 달간 지긋지긋하도록 고기를 실컷 먹여주었습니다. 그 많은 메추라기를 말려서 건어물 시장에 내다가 팔면 오늘날 오징어포 장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떼돈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믿으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하고 의심하는 분들은 축복의 하나님, 돈 주시고 밥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늘 애용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욜2:26)
저는 이 말씀에 굉장한 은혜를 받습니다. 옛날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먹는 것의 문제는 곧 바로 삶의 질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즉 잘 먹으면 잘 살고 행복한 것이고, 못 먹으면 못살고 불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가정이 하나님을 축복의 근원으로 삼지 않았을 때에는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못살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홍제동 화장터가 있는 곳에서 살다가 철거민이 되어 길가에 쫒기기도 했습니다.
응암동에 대궐 같은 집을 지어서 잘 살아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이상하게 남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목동에 새집 아홉 채를 짓고 우리 가족들이 하나씩 나누어가지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아홉 채중의 한 채의 방 한 칸에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고기반찬이 올라와서 먹으려고 하면 밥상을 앞에 두고 형제들이 다투므로 결국 아버지가 밥상을 엎어버려 고기반찬도 못 먹게 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가난이 저희를 따라다녔는데 지금 와서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총각 시절에 예수님을 믿다가 믿음 없는 저희 어머님 만나 결혼하면서부터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축복이 들어오다가도 나중에 보면 복이 멀리 도망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돈도 생겼습니다. 좋은 집도 생겼습니다. 고기반찬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아이들은 고기반찬 먹는 것이 뭐가 축복이냐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저와 비슷한 때를 살았던 한국 어른들은 고기반찬 먹는 것은 큰 축복인 줄을 압니다. 가난을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아주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이 외국 땅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를 강력하게 소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8)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창9:1)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창26:12)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시매 "이에 그 삶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30:4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추복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도 크게 축복해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고로 복음이 바르게 전파된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따랐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저주의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력한 축복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축복을 받는 것은 절대로 미신이 아닙니다. 샤머니즘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기에 그냥 축복이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제 교회 어느 정도 다니면 다 아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베드로와 같이 말씀에 순종하여 만선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받은 축복, 죽을 때에는 한 푼도 가지고 못가니 열심히 주의 일에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