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날짜: 
2009/09/01
설교: 

롬14:1-6 그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드는 것도 많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마음에 안들어서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마음에 안든다는 것은 내가 그 환경을, 그 사건을, 그 사람을 못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 나와 다른 것은 모두 틀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어로 "It is different."이지 "It is wrong."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목욕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여성들은 공중목욕탕에 가면 거의 2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남성들은 목욕하러 들어가면 30분, 혹은 많이 있어도 1시간 정도입니다.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목욕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남녀 간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물에서 빨리 나옵니다. 흙이 물속에 오래있으면 다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지어졌기 때문에 물속에 오래있습니다. 뼈는 물속에서 푹 불어야 제 맛을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웃기 위한 얘기지만 남녀 간의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차이점으로 인해 한쪽이 우수하고 한쪽이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서부터 그렇게 차이점이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각기 모습이 다릅니다. 특히 신체의 아주 일부분인 손가락에 새겨진 지문만 보아도 60억이 넘는 세계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모두가 서로 다릅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일란성 쌍둥이인 요셉과 바울도 우리가 보기에는 똑같이 보여도 엄마가 보기에는 분명 차이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시집 온 새댁이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서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남편은 설탕물에 말은 국수를 처음 본지라 먹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느냐?" 그랬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그럼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지, 어디에 말아 먹느냐?" 그러자 그 남편이 대답하기를 "국수는 다시다 물에 말아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다 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싸움이 도저히 해결되지 않아서 부부는 마을 이장님한테 갔습니다. 이장님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말을 합니다. "세상에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러니 남편이 기세등등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장님이 남편을 보더니 말을 합니다. "국수를 다시다 물에 말아 먹는 것도 처음 듣는다." 아내와 남편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그럼 이장님은 어디에 국수를 말아 먹습니까?" 그러자 이장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김칫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
여러분,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는다고, 또 국수를 다시다 물에 말아 먹는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인 것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아하, 나와 다르구나!" 하고 인정하지 않고, "그것 틀렸구나!"라고 판단해 버립니다. 이렇게 나와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도무지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틀렸다고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와 다른 점을 가지고 틀렸다고 하면 인간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화목이 달아나고 공존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고로 서로 화목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다른 점을 가지고 틀렸다고 판단하면 안됩니다.
특히 가정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 삽니다. 그리고 남녀 간에 분명 차이점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함께 생각해봅시다. 먼저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남성은 남성호르몬이 있고,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있습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호르몬이 점점 줄어들고, 여성호르몬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수록 남성은 점차 여성화되어집니다.
반면에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고 남성호르몬이 더 늘어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젊었을 때는 용모도 곱고, 말도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게 됩니다. 목소리도 커지고 대범해집니다. 아무도 못말리는 한국의 아줌마 기질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가 살아있던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기가 죽고, 반대로 기가 죽어지내던 여자는 대장부가 되고 맙니다. 완전히 인생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특히 여성은 폐경기가 되면 이러한 호르몬 작용이 급격하게 변화되므로 마치 사춘기 청소년 시절처럼 신경도 예민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생리적인 현상을 알면 자신이 조금씩 변해갈 때 "아하,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리적인 차이점이 생기는 것을 가족들이 서로 이해할 때에 보다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녀 간의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감각기관에 있어서 남성은 후각적이고 시각적입니다. 반면에 여성은 청각적이고 촉각 지향적입니다. 그래서 시각지향적인 남성은 무언가 보기를 항상 원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같이 길을 가다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을 아내가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오는 현상임을 알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여성은 청각적이고 촉각 지향적입니다. 뭔가를 듣기를 원합니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남성들은 "아 그것을 꼭 말해야 아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성향을 알면 힘들어도 그런 표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그것을 듣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향에 있어서도 남녀 간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성공 지향적이고, 지배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수용적이고, 감정적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아주 기뻐하고 아주 슬퍼하기도 합니다.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남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무뚝뚝합니다. 드라마가 따분합니다. 시간 낭비 같습니다. 화끈한 스포츠에 더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남편이 없는 가정은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없는 가정은 아빠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여성이 남성 보다 더욱 수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에 있어서도 남성은 구심력을 가지고 있고 레이저와 같습니다. 반면에 여성은 원심력이고 마치 조명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대화에 있어서도 남성은 정보수집에 관심이 많습니다. 항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문제를 나열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말합니다. "결론이 뭐야!" 그러나 여성은 결론 보다는 관계유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보기에는 여성들의 수다는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수다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존재를 발견하고, 거기서 행복감을 맛봅니다. 고로 여자는 대화를 하면서 굳이 결론이 없어도 한참 이야기만 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좀 더 통계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2만5천 단어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성은 평균 3만5천 단어를 이야기하고, 남성은 1만5천 단어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성은 밖에 나가서 자기가 이야기할 것들을 다 소비하고 집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집에 있던 아내는 남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하는 것을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아직 마음에 소화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어서 같이 이야기를 안하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남편이 아내의 대화 상대가 되지 않으면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서 스트레스를 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전화로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남자들은 전화를 하면 용건만 이야기하고 끝내지만 여성들은 전화를 들었다하면 통화가 길어집니다. 이때 남편이 "아하, 내가 대화를 못해줘서 아내가 저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구나!" 하고 미안하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가지고 우리는 서로 "틀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자꾸 부딪치게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람마다 문화와 성격과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서 쓰고, 어떤 사람은 아래서부터 짜서 씁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짠 치약으로 이를 닦든지 아래서부터 짠 치약으로 이를 닦든지 이 닦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을 서로 "틀렸다."고 단정하면 이 닦을 때마다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은 종종 다툼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어떤 친한 두 친구가 하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데 한 친구는 집에서 감자반찬만 계속 먹고 자랐고, 한 친구는 콩나물반찬만 계속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한 친구는 콩나물만 보면 지긋지긋하고 한 친구는 감자반찬만 보면 지긋지긋합니다. 가끔 하숙집에 콩나물반찬과 감자반찬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두 친구는 서로 생각해준다는 마음에 감자반찬이 지긋지긋한 친구는 감자반찬만 보면 친구를 생각한다는 마음에 빨리 먹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편 콩나물반찬이 지긋지긋한 친구는 콩나물반찬만 올라오면 또 얼른 먹어치우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저 지긋지긋한 콩나물반찬 내가 대신 먹어줘야지!"
이런 상황 속에 밥 먹는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자반찬 싫어하는 친구는 콩나물반찬이 올라오면 "이번엔 저 친구가 좀 남겨주겠지!" 생각을 하고, 반면 콩나물반찬 싫어하는 친구는 감자반찬이 올라오면 침을 삼키며 "이번에는 저 친구가 좀 남겨주겠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찬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다 먹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둘은 알게 모르게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커져서 그 답답함을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넌 날 위한다고 하지만 콩나물반찬이 올라오면 네가 다 먹어 버렸잖아?" 또 다른 친구는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날 위한다고 하지만 감자반찬만 올라오면 네가 다 먹어 버렸잖아?" 이렇게 서로의 차이점을 서로 표현하지 않고, 서로의 입장만 생각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귀족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습니다.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이인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차이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불화의 소지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의 권면은 서로의 차이점들을 틀린 것이라고 비판하지 말고, 그 차이점을 수용하여 화목하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하면 한참 후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답답합니다. 이때 "아하!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화목한 방법을 모색해야지, "이 사람은 나와 다르니까 틀린 사람이네!"라고 판단하면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고로 오늘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라."(3절)
똑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먹는 것에 대한 의견의 차이점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하면 배가 고파서 주님의 일을 못한다고 먹으면서 봉사합니다. 두 분 다 주님을 위한 봉사인데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한 사람은 먹는 것이요, 한 사람은 안 먹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가지고 서로 틀렸다고 하면 안됩니다. 그냥 다른 것입니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고로 먹는 자는 먹지 않고 금식하는 자를 이해해야 하고, 먹지 않는 자는 잘 먹고 봉사하는 것을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사람이 나와 다른 헌신, 나와 다른 봉사, 나와 다른 섬김, 나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비판을 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로가 힘이 들어집니다. 특히 이민 교회는 로마 교회처럼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다른 것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따라서 화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다툼으로 비화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주는 교훈의 결론입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서로의 차이점을 잘 수용하며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켜나가기를 축원합니다. 그 사랑으로 이 외국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아름답게 가꾸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