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아야 한다

날짜: 
2009/12/28
설교: 

마21:28-32     끝이 좋아야 한다.
4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사람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사람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등장부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끝가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처음도 나쁘고 나중까지 나쁜 사람입니다. 애급의 바로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못살게 굴기 시작하며 등장한 바로는 홍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왔다가 홍해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셋째, 처음은 좋았다가 나중에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입니다.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 이방 여자 첩을 1000명을 둡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나라가 쪼개지게 됩니다. 넷째, 처음에는 나쁜 짓만 하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그는 크리스천들을 잡이 죽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기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장열하게 순교함으로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지막 주일을 맞이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인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포도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도가 익으면서 갑자기 폭풍우가 닥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익으면 곧 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 년 농사를 다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오늘> 당장 가서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긴박성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안 갔고,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가서 일하였습니다. 맏아들은 긍정하다가 결론은 부정이었고, 둘째 아들은 부정하다가 결론은 긍정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맏아들은 알고 있으나 행함은 없는 사람입니다. 다 알고 있는 데 행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편리하게 대답하여 놓고 후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장소에 따라서 마음이 변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순종하고 싶어서 <예> 하였으나 아버지를 떠나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거절하여 버렸습니다.
자극을 받을 때에는 결심을 하지만 조금 지나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환란을 당할 때에는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다가도 환란이 지나고 나면 마음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처음은 좋았으나 나중은 나쁜 사람입니다. 처음에 사귈 때에는 싹싹하고 좋은 것 같은데 점점 지나면서 안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열정적이고 좋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지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싫소이다." 해놓고 나중에 보니 포도원에서 일한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잠이 안 왔을 것입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못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만 께름칙한 것이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깨달은 것은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적으로 깨닫자 말자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좋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끝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제 2009년의 결론을 내릴 차례입니다. 어떤 결론이 좋은 결론이고 아름다운 끝일까요? 금년을 어떻게 끝내야 아름다운 끝이 될까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입니다. 잘 끝내야 잘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끝내는 것이 좋은 끝일까요?
1. 회개로 끝내는 것이 가장 좋은 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30절) 둘째 아들의 끝은 뉘우침 즉 회개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싫소이다." 하고 다른 곳으로 갔지만 곧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라는 말씀대로 결론은 회개였습니다. 우리는 작은 죄라도 다 회개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조선업자가 산같이 거대한 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엔진이 돌지가 않았습니다. 다시 다 뜯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원인을 보니 엔진에 물을 부을 때에 물속에 죽은 뱀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부어서 죽은 뱀이 엔진을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 영적 교통을 막게 됩니다. 천국에는 죄 없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죄범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사울왕도 죄를 지었고 다윗왕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왕은 버렸고 다윗왕은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니까? 사울은 죄를 지었을 때 교만한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죄를 지었을 때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는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즉 끝은 회개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쓰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일까요?
(1) 진정한 고백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하나님 앞에 진정한 고백이 없이는 진정한 회개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가 다 하나님 앞에 나와 직접 회개하여야 합니다. 
(2) 진정한 애통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한다는 말은 죄를 미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증오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원수 마귀와 대적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진정한 애통이 있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3) 진정한 돌아섬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개는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는 닦아 놓으면 다시 딩구는 동물입니다. 회개하고 다시 그 죄에 빠지는 것은 진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뜨겁게 흘린 후에는 순교하기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한 죄에는 다시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이 회개하고 술을 끊었습니다. 그 후 친구들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그러면 이야기나 하게 술좌석에 가서 안주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따라 갔습니다. 술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고 갈 때 그는 정말 안주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꼭 한 잔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딱 한 잔만 마시겠다고 받아먹은 것은 두 잔 으로 세 잔으로 이어졌습니다. 결심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4) 진정한 보상이 따라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보상입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는 철저한 보상이 따랐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고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4배나 갚았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5) 성령까지 받아야 완전한 회개입니다.
결심만으로 달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로켓을 타야 합니다. 결심만으로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 의지하여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할 때에 죄를 철저히 통회하면서 말했습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본문에서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3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과정은 남의 것을 토색하는 세리요, 음란의 표상인 창녀라 하더라도 끝에는 포도원으로 들어 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수 믿기 싫다고 거절하던 그들이 결론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결론은 회개여야 합니다.
2. 충성으로 끝내는 것이 좋은 끝입니다. 
맏아들은 순종에서 시작하여 불순종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불순종에서 시작하여 순종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맏아들은 충성을 약속하고 나가서 불충성으로 끝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불충성으로 도망가는 듯하더니 충성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불충성하였다 하더라도 결론은 충성으로 금년을 마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느 왕이 죽으면서 자기에게 일생 충성스럽게 지낸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나에게 충성을 다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세상으로 간다. 너는 나보다 먼저 가서 내 갈 곳을 준비하여 놓아라."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신하는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서 칼을 심장에 찔러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왕의 길을 예비할 정도로 충성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불후의 명작 <피에타>를 완성한 후 너무나 기뻐서 후대의 사람들이 자기를 잊지 않도록 자기의 이름을 사인하였습니다. 그것도 마리아의 가슴에 두른 띠에 한 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이 만드신 장엄한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고도 사인하나 남기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모습에 감탄을 또 하였습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작품을 하나 만들고도 사인을 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작품에도 자기의 사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 오직 하나님의 작품을 만드는 일에만 충성을 하였습니다.
혹시 우리가 과정은 잘못 갈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끝은 충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충성하였는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두 천사에게 임무를 맡겼다고 합시다. 한 천사에게는 천하에서 제일 큰 왕국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다른 한 천사에게는 땅위에서 가장 지저분한 마을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둘 다 맡은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칭찬하시겠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둘 다 똑같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보다도 얼마나 충성하였는가를 보실 것입니다. 집사로서 충성한 사람이나 목사로서 충성한 사람이나 이 다음에 하나님의 상급은 같을 것입니다. 과정은 좀 불충성스러웠다고 할지라도 끝은 충성스런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늘나라로 끝내는 것이 좋은 끝입니다. 
이 비유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나라였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데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간다고 하다가 안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하다가 갔습니다. 그 후 주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시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그들은 안 믿는다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생명이 우선입니다. 구원이 결론입니다. 3년씩이나 주님을 고생스럽게 따라다니다가도 결론은 지옥인 유다가 있습니다. 반대로 일생 강도짓하다가도 결론은 하늘나라에 간 강도도 있습니다.
아무리 처음과 중간에 은혜를 많이 받았어도 끝이 지옥으로 끝나면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이 비록 은혜롭지 못해도 끝이 하늘나라이면 좋은 것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처음에는 이겼어도 끝에 역전패하면 더욱 나쁩니다. 반면 운동경기에서 처음에는 졌어도 끝에 역전승 하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끝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회개로 끝내야 합니다. 충성으로 끝내야 합니다. 하늘나라로 끝이 나야 합니다. 아무쪼록 2009년 마지막에 좋은 끝을 맺으시고 2010년 소망의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