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동영상)

날짜: 
2013/05/25
말씀: 
살후 3:1-2
말씀구절: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시147:15, 살전5:25
(살후 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설교: 

살후3:1-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여러분 각자 인생을 살면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은 경우가 언제입니까?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경쟁률은 어느 정도가 됩니까? 한국의 경우 지금은 고등학교까지는 무상 교육에 자기가 사는 학군에 자동적으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다닐 시절에는, 그러니까 40년 전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들어갈 때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물론 그 시험에 떨어져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못 들어간 분들도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상업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때 경쟁률이 제 기억으로 4:1 정도였습니다. 제가 그 시험에 붙었겠습니까? 떨어졌겠습니까?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기분이 상당히 나쁘고,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대학교 들어갈 때 모 대학교에 1차 시험을 쳤습니다. 그때 경쟁률이 10:1입니다. 제가 붙었겠습니까? 떨어졌겠습니까? 또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서 섭섭하지도 않았고 그냥 덤덤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히 떨어질 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 때에 자기가 합격된 것을 확인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합격된 분들 중에는 수석이나 차석으로 붙은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1등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그에 따른 장학금과 각종 혜택이 주어집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믿음 생활에도 이런 경우가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해변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수없이 많은 인생들 중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저를 택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특히 저와 여러분이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저와 여러분은 태어날 때부터 수백만 분의 일의 기적 같은 경쟁률을 뚫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즉 남성의 정자 중 수백만 개 중의 가장 우수한 녀석이 1등으로 난자와 결합이 되어 태어났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겁니다. 우리 옆에 분과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당신은 대단히 우수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기적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보십시오.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더 많습니까?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진짜 바르게 믿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소수입니다. 고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물론 이 성경 구절은 소수의 이단들이 자기들을 옹호하는 데에 자주 사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즉 "현재의 많은 교회들은 다 썩었다. 오직 우리만이 바르게 믿는 사람들이요, 생명의 길로 가는 소수의 사람들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좁은 길로 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사망의 직행 길로 먼저 가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즉 가장 먼저 믿음의 경주에서 탈락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믿음의 경주(마라톤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 중에 10년 후에, 20년 후에 볼 때 과연 도착지점에 몇 명이나 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때 당신은 과연 그 도착 지점에 성공적으로 도착할 거라고 생각이 듭니까? 그리고 그때 당신은 몇 등이나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 믿음의 낙오자나 믿음의 탈락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또 무슨 생각을 합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낙오하고 탈락해도 나는 낙오되지 말아야지! 나는 탈락하지 말아야지! 나는 통과해야지! 나는 합격해야지!" 할렐루야!

기독교 서적 중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란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성도가 천국으로 가는데 수많은 종류의 시험과 장애물들이 나타납니다. 성도는 그 모든 장애물을 통과해야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을 배우고 공부하다 보면 '시험'이란 말을 참 자주 듣습니다. 주기도문에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늘 기도합니다. 아마 이민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기도 제목인 것 같습니다. "주여, 아무개 성도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주여, 단체로 혹은 줄줄이 사탕처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사단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탈락이나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 여러분! 데마라는 사람은 사도 바울과 선교여행을 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의 일을 하다 보니 고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그리고 그는 결국 선교여행에서 이탈하여 세상을 좇아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도 바울도 한때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힘을 추슬러 계속 믿음의 경주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치고 이런 고백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10년을 다녔어도 믿음이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3:1-2)

마태복음 13장에도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농부 되신 주님이 밭에다 말씀의 씨를 골고루 뿌렸습니다. 그런데 밭이 네 종류가 있었는데 오직 한 군데에서만 열매를 맺었습니다. 좋은 마음의 밭에 떨어진 씨만 열매를 맺고, 다른 곳 즉 자갈 밭, 길가 밭, 가시떨기 밭 같은 마음에 떨어진 씨들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거나, 아니면 가시 같은 기운에 막혀 믿음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참 이상하고 안타까운 것을 발견합니다. 다름 아니라 믿은 지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믿음이 전혀 자라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이 기억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믿음도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고, 축복도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고, 기적과 영광도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결국 믿음의 경주에서 통과한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습니다. 경쟁률이 적은 곳에는 적은 축복이 있고, 경쟁률이 센 곳에는, 즉 많은 탈락자가 생기는 곳에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많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를 보십시오. 수백만 백성들이 애급을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1세대가 거의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1 세대 중에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축복을 누렸습니다. 물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약속은 주어졌지만 그들은 스스로 안 되는 길, 망하는 길, 저주의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축복의 밥상을 스스로 엎어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축복을 받을 기회도 주십니다. 고로 하나님께 이렇게 짜증을 부리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는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는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독생자까지 주셨으면 다 주신 것 아닙니까?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만족할 만큼 못 받은 것은 그 시험에 내가 탈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는 더 이상 축복에 탈락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천분지 만분지 일의 경쟁률도 뚫고 합격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3:6) 즉 그는 천만 분의 일의 경쟁률을 뚫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군인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전쟁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백전백승을 거두기가 힘이 듭니다. 확률적으로도 도저히 이루기 힘이 듭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백전백승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다윗의 신복들과 장수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 때에 팔백 인을 쳐 죽였더라."(삼하23:8)

다윗은 전쟁에서 쓰러지지 않았지만 그의 부하들 역시 수많은 전쟁에서 쓰러지지 않고 이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의 좌편에서 우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도 우리는 너와 나는 하나님을 붙잡고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 승리의 자리, 그 축복의 자리, 그 영광의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우뚝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