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날짜: 
2014/02/02
말씀: 
마22:34-40
말씀구절: 

34 <가장 큰 계명(막 12:28-34; 눅 10:25-28)>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설교: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축복이요, 하나님을 멀리하면 저주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저주에 빠트리기 위해 특별히 딴 일을 안 합니다. 단지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 도구가 바로 죄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은만큼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큰 죄를 지으면 크게 멀어지고, 작은 죄를 지으면 작게 멀어집니다. 그리고 작은 죄도 계속 지으면 역시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영적 사망이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져서 아예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즉 영적 사망이 다가오면 육적 사망도 뒤따르고, 각종 저주가 따르게 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과 저주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고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따르고, 죄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게 노래합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왜 기쁠까요? 죄에서 해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사형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죄의 사면을 받고 자유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이런 기쁨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보면 화가 납니다. 왜 사단은 우리의 행복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아세요? 이유는 이겁니다. 그는 사단이니까. 사단은 원래 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께 반역죄를 짓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니 사단은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 하나님께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러니 사단은 하나님께 복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쓰러지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고 하나님께 복수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사단의 공격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사단은 자기 때가 얼마 안 남은 줄을 알기 때문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고로 말세가 되면 될수록 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죄가 만연합니다. 미움과 증오가 꽉 찹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이 사단에게 지지 말고, 죄에 지지 말고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기도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합니다. 더 나아가 이미 사단의 노예가 된 사람까지 전도하여 살려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선한 싸움은 내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싸움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펴고 힘을 합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십자가 군사입니다. 군대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군사들이 필요합니다.

각개 전투도 잘 해야 하고, 분대 전투, 소대, 전투... 등 군사들이 힘을 합쳐서 하는 싸움도 잘해야 합니다. 교회 식으로 말하면 각 부서와 기관들이 있어 힘을 합쳐 전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서가 어떤 모임을 가지려고 하면 부서장은 목사님에게 보고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보고를 받고 뒤에서 기도로 영적 전투를 지원합니다. 그 모임이 단지 세상 사람들처럼 모여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시험 들고 마음이 상하는 모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익된 모임이 되도록 기도해주고 지도해줍니다. 성도님들의 이러한 교제를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교제할 때 그 목적과 방향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좇게 합니다. 만약 어떤 부서가 모임을 갖고 나서 그 멤버들이 더욱 하나님을 잘 믿고 예배도 더 열심히 나오고, 전도도 더 열심히 하면 그 모임은 코이노니아 모임입니다. 유익한 모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유익하지 못한 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주후 100년 까지를 초대교회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성도님들의 모임이 코이노니아 모임이었습니다. 모이면 같이 떡을 떼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같이 밥 먹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서로 도와주며, 또 나가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를 논할 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약 20-30년 전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그랬습니다. 구역 식구들이 모이면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밥 먹고 나가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특히 당시 여성들은 남편이 직장가고 애들이 학교 가면 시간이 많이 납니다. 고로 여성 구역이 매우 활성화 되었습니다. 여성구역이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여성 구역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교회 성장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왜 여성 구역이 약해졌을까요? 다름 아닌 돈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제가 좋아지다 보니 여성들에게도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성 구역장들이 직장에 나가느라고, 돈을 버느라고 제대로 구역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직장에 나가느라고 몸도 피곤하고, 그러다 보니 기도도 못하고, 결국 그때부터 구역은 약해지고 '나 홀로 구역, 나 홀로 구역장'이란 단어도 생기고, 여기 저기 구역에 구멍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결국 돈 때문에 망치는 겁니다.

제가 며칠 전에 누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 돈이 많아서 문제에요." 그렇습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적으면 적어서 문제입니다. 돈 번다고 예배도 제대로 못 드립니다. 또한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이 교만해지고, 돈 쓰느라고 예배를 제대로 못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수퍼스토아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면 오른쪽 문 옆에 복권 가게가 있습니다. 제가 무심코 그 복권 가게를 지나가면서 보니까 복권 당첨액수가 수천 만 달러로 올라간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듭니까? "하나 사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에이, 아니지! 그러다가 남이 보면 어쩌려고!" 하면서 돌이키신 분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를 보다가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 남편이 복권을 하나 샀습니다. 아내에게 그 복권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복권이 일등 당첨이 됐습니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좋아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디론가 잠적했습니다. 방바닥에는 이혼 요구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는 좋은 빌딩을 사고, 새로 딴 남자와 재혼을 했습니다. 이 남자는 그제야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내가 괜히 복권을 샀구나!"

이런 뉴스를 듣고 나서 제가 우리 집사람과 수퍼스토아에 갔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복권 가게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씩- 웃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양반도 그럴까?" 하는 생각에서 혼자 웃은 겁니다. 저희 집 사람이 제가 웃는 것을 보고 묻습니다. "왜 혼자 웃어요?" "응- 그냥!"

여러분! 돈에 너무 욕심을 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쓸 돈을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내가 뿌린 만큼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돈을 받아도 하나님 아버지께 돈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돈을 억지로 취하려고 하면 그 돈은 결국 근심으로 나를 찌르고 맙니다. 믿음에서 나를 떠나게 합니다. 불행을 초래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받은 돈은 평안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를 작성할 때 분명한 주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작성하면서 보니 성도님들에게 이 이야기도 해주고 싶고, 저 이야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다보니 설교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만 설교가 짬뽕이 되었습니다. 잡탕밥이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제가 나이가 먹고 늙어간다는 징조입니다.

대개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들의 설교는 아는 지식은 많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까 설교가 길어집니다. 또한 자신의 기억력이 떨어지니까 남도 그런 줄 알고 한 이야기 또 합니다. 그러니 젊은 성도님들은 연로한 목사님의 긴 설교를 듣기가 매우 지루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 성도님들에게 다행스런 것이 있습니다. 제 설교가 짧다는 겁니다. 저는 설교 중에 어떤 성도님이 지루해서 하품을 한다거나, 시계를 쳐다본다거나, 딴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아- 설교 빨리 마치라고 신호를 보내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즉각 오고, 또 즉각 실천합니다.

또 설교가 옆으로 샜는데... 하기야 모든 목사님들의 설교는 길든지 짧든지 간에 결국 우리가 하나님 잘 믿자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자는 겁니다. 그게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가르쳐준 성경의 요점이요,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보면 교회 소개란에 우리 교회의 비전에 대하여 나옵니다. 뭡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가 외국 땅에서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자는 겁니다. 너와 내가 서로 좋은 이웃이 되어 서로 많이 사랑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잘 가꾸어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모두가 칭찬과 상급을 받자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누가 하나님과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눅7:40-42)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3-47)

즉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많은 죄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는 고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하나님께 바르게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것에 얼마나 감격하고 얼마나 고마워합니까?

혹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가 변하여 "나 같은 훌륭한 사람을 데리고 쓰시는 주님은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나요?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이런 책망을 했습니다. "너희 첫 사랑을 버렸느니라." 즉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는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해도 별 기쁨도 보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교회에서의 봉사는 참으로 가장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을 위한 봉사 역시 인생의 큰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즉 인생의 행복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내가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하나님 많이 사랑합시다. 이웃들도 많이 사랑합시다. 그러기 위해 부탁합니다. 제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그 사랑을 부족하게 받지 말고 넉넉하게 받으십시오. 그래서 넉넉한 사랑을 하다가, 그 귀한 사랑 속에서 인생을 행복하게 잘 마무리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가서,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보고 크게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