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날짜: 
2014/04/05
말씀: 
창1:1-5
말씀구절: 

1 <천지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설교: 

세상 학문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진화론과 창조론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분명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론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2절에 보니 혼동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저는 이 일에 대하여 어려운 신학적 토론이나 논문을 발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신상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나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하나님을 잘 믿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차 사고가 난다든지, 애들이 다친다든지,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하는데 왜 이런 고통이 다가옵니까? 이제 하나님 믿고 술과 담배와 잘못된 습관을 끊고 보다 바르고 성실히 살려고 하는데... 학생의 경우는 이제 제대로 마음먹고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부정적이고 어두운 소식이 생기고, 오히려 술 생각이 나고, 환경이 꼬이는 겁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이곳 캐나다 캘거리에 왔는데 왜 절망과 탄식과 어두움이 있습니까?

이럴 때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기치 않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처박혀 인상 쓰고, 우울해하고, 답답해하고, 한숨 쉬고 인생을 부정적으로 살아야 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외치신 것처럼 우리도 외쳐야 합니다. "나의 인생 속에 어두움은 물러가고 빛이 있으라.” 부부간에 혹은 사람 간에 쓰디쓴 상처로 어두움의 그림자가 있다면 외쳐야 됩니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이웃과 친척과 친구와 성도 간에 섭섭함이 있다면 이때에도 외쳐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 나의 마음속에(아내, 남편, 교회, 성도에게) 빛이 있으라.”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할 때 하나님이 외쳤습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어두움과 공허와 혼돈과 무질서가 떠나가고 빛이 임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곳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고로 외치십시오. “빛이 있으라.”

요한일서 1:5에 보니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했습니다. 시편 27:1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4:6에는 "어두운 데서 빛이 있으라 하시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60:20에는 "여호와가 너의 영원한 빛이 되리니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로 이전의 어두움의 일로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전의 혼돈과 공허로 인해 탄식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빛이 당신에게 비추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었습니다.(사9:2)

성경은 이 빛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즉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예수님이 임하면 슬픔이 떠나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고로 하나님의 전에 올 때는 우울해가지고 왔다가도 예배를 드린 후에는 웃으며 기쁨으로 성전을 나가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는 근심이 가득 찼어도 예배를 마친 후에는 예수님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찬송의 콧노래가 나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행복을 찾아보았지만 행복하고는 거리가 더욱 멀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5번이나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큰 상처와 좌절만이 남았습니다. 마음은 더욱 공허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가리켜 '못 말리는 여인, 행실이 못된 여인, 개 같은 여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기뻐 뛰면서 “내가 선지자를 만났다.”고 외치며 마을 사람들에게 담대히 나아가 전도하는 여인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누가 전도자가 되고 누가 증인이 되는 겁니까? 바로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인상 짓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과 방긋방긋 웃으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겠습니까?

저의 경우 목사가 되기 이전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가장 큰 변화는 기쁨이었습니다. 분명히 세상은 그대로인데 하나님을 만나니 세상이 밝게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나의 미래도 희망의 빛이 비춰져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성령을 받은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큰 증거는 변화입니다. 슬픔이 떠나고 기쁨이 다가옵니다. 왜 이런 변화의 일이 일어납니까? 다름 아닌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죄로 인한 정죄함에 빠지지 마십시오. 죄로 인해 더 이상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사43:25)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신약 시대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핍박하고 죽였던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의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중 길에서 햇빛보다 더 찬란한 예수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을 보고 난 후 그는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빛 되신 주님을 위해 꿋꿋이 사도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예수님의 빛을 체험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꿋꿋이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님이 그랬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는 하늘 문이 열어지고 그 보좌에 계신 찬란하고 영광스런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도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그 얼굴이 얼마나 빛났던지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변화산에서 얼굴이 해같이 변했습니다.(마17:2)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그 영광의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빛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떳떳이 행하라."(엡5:8)고 말씀합니다. 고로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빛의 자녀다. 나의 앞길에 빚이 있을 지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열왕은 네 빛으로 열방은 비추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여러분, 이 세상에는 어두움의 일들을 좋아하는 야행성, 음지성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곳으로 기어들어가야만 편안합니다. 성경이 말씀 한 바 마귀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어두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밝은 빛으로 나아오려고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초를 키워보신 분들은 압니다. 햇볕이 없으면 식물은 시들시들 죽고 맙니다. 특히 여기 캘거리는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부족한지라 겨울철에 화초가 죽기 쉽습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볕이 없으면 사람 역시 시들시들해집니다. 제가 몇 년 전 이곳 병원에 식구들(저와 집 사람과 딸)과 같이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들 각자 의사를 만나는 이유가 달랐습니다. 즉 병의 종류와 증상이 각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 분이 우리 세 사람을 각각 진료하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세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비타민 D를 드십시오." 우리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뭐야- 이거? 아- 이곳 의사는 해 먹기가 참 편하구나! 그냥 비타민 D를 먹으라고만 하면 되니..."

그런데 제가 나중에 피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캘거리에서 제법 오래 살다 보니 비타민 D의 수치가 정상치의 십분의 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즉 의사의 말대로 심각한 비타민 D 결핍증에 걸려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이곳 캘거리는 북반부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철에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혹 겨울철에 햇볕이 쬐는 낮 시간에도 날씨가 추워서 도저히 밖에 나가기가 겁이 납니다.

즉 사람도 제대로 햇볕을 받지 못하면 비타민 D 결핍으로 인해 몸의 저항력이 떨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영혼도 영적 빛이 비추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지고 맙니다. 믿음도 떨어지고, 영적 저항력도 떨어지고 맙니다. 소망도 사랑도 시들시들해지고 맙니다. 고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두움의 자녀가 아닙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빛을 받고 사는 존재입니다. 고로 어두움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빨리 빛으로 나아와야 됩니다. 그리고 나의 주위에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고 외쳐야 합니다. "그곳에, 이곳에, 거기에, 여기에 빛이 있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곳의 겨울이 길다고, 날씨가 춥다고 결코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인상을 펴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하나님의 백성이 영영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시34:5)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태양이 떠올라서 치료의 빛을 비추리라."(말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빛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입니다. 고로 우리는 그 빛을 받아서 외쳐야 됩니다. “빛이 있으라. 그곳에도, 거기에도, 여기에도, 나의 마음속에도, 빛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