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것을 뚫어라.

날짜: 
2014/11/22
말씀: 
엡2:13-18
말씀구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집에 부엌 싱크대나 목욕탕 배수구가 막힌 경험이 있을 겁니다. 대개의 경우 목욕탕 배수구는 여성들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자주 막힙니다. 이때에는 뚫는 약 한통 정도를 붓고 하루 정도 기다리면 대개 뚫립니다. 부엌 싱크대의 경우는 음식물 찌꺼기 때문에 막히는 경우입니다. 이때에도 역시 뚫는 약 한 통 정도 붓고 하루 정도 기다리면 대개 뚫립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부엌 싱크대가 자주 막히는 이유는 음식물 찌꺼기도 많이 빠지지만 가끔 보면 그 안에 젓가락이나 칼이 많이 들어가서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뚫는 약으로만 안 됩니다. 플러머(Plumber)가 쓰는 스네이크(snake)라 하는 뱀같이 구불구불한 꼬챙이를 돌리고 돌리고 쑤시고 쑤시고 해야 겨우 뚫리게 됩니다.

그런데 화장실 변기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급하게 용무를 봐야 하는데 변기가 막히면 참 난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캐나다에는 화장실을 잘 개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참 쫀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경우는 변기가 막히지 않게 하려고 화장실 휴지를 변기에 버리지 않고 따로 밖에 휴지통을 놓고 거기에 버립니다.

그러니 한국의 화장실은 들어가면 가끔 휴지에 묻은 똥냄새가 납니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하고 놀라는 문화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보통 화장실의 변기가 막히는 이유는 물에 녹는 화장실 전용 휴지를 쓰지 않고 신문지나 페이퍼 타월 등 물에 녹지 않는 종이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공기를 집어넣는 압력기로 30초 정도 계속 눌러주거나 뚫는 약을 쓰게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또 스네이크로 돌리고 돌려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플러머를 불러야 하지요. 약 10년 전에 우리 교회 성전 지하 화장실이 자주 막혔습니다. 몇 명의 플러머를 불렀지만 제대로 뚫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자주 막히는지 나중에 알아보니 다름 아닌 나무의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 건물 옆에 큰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의 뿌리가 교회 건물 하수구 틈새를 타고 들어가므로 자주 막히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큰 소나무를 싹둑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쪽 화단의 관목들도 전부 베어버렸습니다. 좀 허전하긴 하지만 그 후로 화장실 변기가 잘 막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하려다 보니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오늘의 설교 주제는 막힌 것을 빨리 뚫어야 한다는 겁니다. 뚫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심장 혈관이 막히면 심근 경색이 됩니다. 뇌혈관이 막히면 뇌경색이 됩니다.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도로의 경우도 이런 저런 이유로 막힙니다. 중요한 일이 있는 경우, 특히 시간 맞추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도로가 막혔으니 참 난감합니다. 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입니다. 이것 역시 뚫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심하게 막혔습니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막힌 것이 아닙니다. 음식물 찌꺼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죄가 막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생수도 공급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들 힘들어합니다. 인생 살기가 뻑뻑합니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뚫어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잘 뚫리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게 오랫동안 막혔습니다. 이때 ‘뚫어요!’ 하고 나타나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그 분이 해결사입니다. 오늘 인생이 막힌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초청하십시오. 그 분이 확실하게 뚫어주실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라고 하는 동네의 우물가에 가셨습니다. 때는 정오쯤 되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이름하여 ‘우물가의 여인’입니다. 이 여인에 관한 유명한 복음송도 있습니다. 같이 한번 불러볼까요.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이 여인 아주 팔자가 센 여자입니다. 5명의 남자와 결혼했고 이혼을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버렸는지 여자가 남자를 버렸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원래 부부간에는 남이 모르는 비밀과 사정들이 참 많습니다. 어쨌든 행복하려고 5번 결혼을 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인생의 불통입니다. 아주 인생이 꽉 막혔습니다.

누가 이 여인의 꽉 막힌 인생의 통로를 뚫어줄 수 있겠습니까? 이 여인이 사정합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소서. 주여 내 마음의 답답함을 뚫어주세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텐데....”(요4:15,25)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4:26)

즉 예수님이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 분이 확실하게 인생의 불통을 뚫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천국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길을 뚫었습니다. 어떻게 뚫었을까요? 뚫는 약을 부었습니까? 스네이크를 돌리고 또 돌렸습니까?

아닙니다. 그 분의 죄 없는 피를 쏟아 부으심으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천국 가는 길을 뚫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에 있는 커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짖어졌습니다. 그 커튼은 바로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아주 튼튼한 커튼이 항상 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하나님이 계신 그 지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단지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커튼을 치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자유왕래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이 담에는 이방인들이 그것을 넘어갈 경우 죽임을 당한다는 경고의 비문이 새겨져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담도 허물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방인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막힌 담을 치우심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느니라.”(엡2:14-15)

한국 텔레비전 프로 중에 ‘힐링 캠프’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의외로 사람들의 상처가 참 많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큰 상처들은 대개 가까운 사람에게로부터 당한 상처입니다.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 혹은 애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든지, 가족 식구로부터 상처를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자녀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상처를 당한 것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반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녀로부터 당한 상처는 거의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녀는 부모님에게 전혀 상처를 끼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실제는 자녀가 부모에게 지긋지긋하게 속을 썩였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누가 봐도 부모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자녀는 자기가 부모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부모님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부모님과 관계를 끊고 삽니다. 그 부모님이 싫어서 여기 캐나다로 이민을 갑니다. “아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아!

며칠 전에 ‘힐링 캠프’에 한 여자 배우가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합니다. 자기가 아버지께 너무나 큰 불효를 저질렀다고요. 사연을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엄마 아빠가 자기 어렸을 때에 이혼을 했습니다. 자기는 엄마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학교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금이 없습니다. 가난하여 어머니가 등록금을 대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아버지에게 연락하여 등록금을 좀 해달라고 했더니 아버지도 형편이 못되어 그 등록금을 못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이 분이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딴에는 아버지께 큰 상처를 받은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결혼할 때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은 겁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자기도 결혼해서 애를 낳고 키워보니 그것이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이제야 깨달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눈물로 고백합니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러나 그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시고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한국의 송강 정철이란 분이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닮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제 생각에는 그 여자 배우도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입었겠지만 아버지 역시 딸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미친 부모가 아닌 이상 부모는 자녀에게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어도 말을 안 합니다. 왜 그럽니까?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려주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맨 마지막 책,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구절인 말라기 4:6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즉 그가 와서 아비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와 자녀가 다시 화평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그 선지자는 바로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겁니다. 그 분이 진정 우리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메시야라는 겁니다. 그 분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뚫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6개월 전에 제가 패밀리 닥터(Family Doctor)에게 갔습니다. “심장 쪽 가슴이 눌리는 증상이 있어서 밤에 잠을 자는데 힘듭니다.” 그러자 그 노인 의사 분이 피검사 결과를 보고 말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군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심장이 아픈가요?” 그 분이 즉시 대답합니다. “Of course!"

그때부터 제가 콜레스테롤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은 후부터 심장이 안 아픕니다. 피가 끈적거리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니 혈관이 잘 뚫리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소화도 잘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마치 나쁜 콜레스테롤과 같습니다. 죄를 많이 지으면 영적인 세계가 막힙니다.

이때 빨리 죄를 녹여야 합니다.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1:15)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처방전을 줍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18)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나아와 내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가로 막힌 것이 뚫립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원수지간이 아닌 사랑하는 자녀와 아버지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각종 좋은 것이 선물로 내려옵니다. 그냥 값없이 주시는 겁니다. 아니 이미 예수님이 그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고로 우리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영생이 주어집니다. 평안과 축복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의 통로가 죄로 인해 다시 막히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혹 죄를 지어 그 통로가 막혔으면 신속하게 다시 뚫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회개하며 다시 뚫어달라고, 다시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막힌 것을 뚫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그 분의 이름을 붙잡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에 답답한 것이 뻥- 뚫어지고 시원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