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날짜: 
2016/05/22
말씀: 
고전10:31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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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부 과학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아메바나 원숭이로부터 온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들이요,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흙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언제 돌아가느냐? 오랜 세월이 아닌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아멘입니까? 그리고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사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훨씬 더 좋습니다. 이것도 아멘입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잠시잠깐 이 땅에 있을 때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당연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살긴? 아,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지요! 솔직히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희생정신에 강한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기도 합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 국가를 위해서 산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산다.”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해서 산다.”라고 이기적인 대답을 하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산다.”라고 희생적인 대답을 하는 것이 훨씬 멋있는 인생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멋있는 인생관, 이보다 더 멋있는 대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이 “나를 위해서 산다.”는 이기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고, 남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부부관계는 힘들어지고 말 것입니다. 즉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가정과 사회를 행복하게 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내가 대접을 받으려고 교회에 나온다.”라는 대답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교회에 나온다.”라는 대답을 하는 성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더욱 아름답고 회목하고 행복하게 가꾸어질 것입니다. 즉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만약 어떤 남편이 오직 자기 아내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사랑을 받는 아내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일는지 모르지만, 이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 자기 아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그 누구하고도 심지어 하나님하고도 싸울 수 있다는 큰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의 말이 틀려도 무조건 신뢰하여 좇아가는 잘못을 범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어머니들이 모성애가 굉장히 강한데 그 중 오직 자기 자녀만을 위해 사는 어머니에게는 다른 사람이 자기 자녀를 꾸짖거나 하게 되면 그 일로 인해 큰 시험이 들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자기 자녀만 위해 사는 것보다 남의 아내, 남의 남편, 남의 자녀를 생각해 주며 사는 것이 훨씬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의 백성들이 중요하지만, 남의 나라와 남의 나라의 백성도 중요합니다. 특히 강대국들이 자기들 나라만 생각하고 약한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면 국제 사회는 살벌한 동물의 왕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즉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편협한 자기중심적인 대답보다는 보다 넓게 생각하고 보다 희생하는 대답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언한대로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살게 됩니다.“(딤후3:1-5) 즉 말세가 되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인류의 번영을 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공부하고,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도 남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돈을 벌고,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이민을 와도 오직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민 사회가 힘들고 심지어 이민 교회가 힘들다고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닙니까? 남을 위해 살기보다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사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민사회가 힘들고 이민 교회가 힘들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만약 남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자기가 좀 더 양보할 수 있고, 자기가 좀 더 희생할 수 있고, 따라서 남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도 기쁘게 하고, 하늘나라도 더욱 튼튼하고 아름답게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결국은 자신에게도 더욱 큰 행복이고 더욱 큰 상급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삽니까?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 “먹기 위해서 산다.”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가난할 때에는 많은 분들이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에 이민을 왔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이민 오는 이유는 단순히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보다 더욱 좋은 공기, 좋은 물, 좋은 환경, 좋은 자녀 교육, 기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이민을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캐나다에 이민 와서 이런 좋은 면을 누리고 있다면 그 다음은 어떻습니까? 이제 인생의 목적, 이민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까?
물론 불평하며 사는 것보다 감사하며 만족하며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유로만 만족하며 산다면 앨버타의 소들에 비하여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먹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집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자녀들 교육에 대하여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꼴이 있고, 좋은 공기, 좋은 물이 있습니다. 옛날 한국의 소들처럼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나쁜 환경에 있을지라도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는 짐승보다 나은 것은 인간과 짐승의 사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먹고 마시고 사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목적이 있다면 당신은 분명 앨버타의 소들보다 못한 인생입니다. 그리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사는 애완견보다 못한 인생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은 삶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가 교회 다니며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가기 위함이요, 기도하는 것도 내 욕심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민 오고 유학 오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또한 본문에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먹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먹지 않고 금식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이 캐나다 땅에 온 것도 단지 좋은 환경에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단지 빵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이민 생활의 고생도 참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견딜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가족과도 헤어져 살아야 하는 외국 생활의 고통도 견딜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많은 희생도 감수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빵이 모자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 목적을 모르고 방황하며 사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천들이 큰 핍박 속에서 집을 잃고 컴컴한 동굴 속에서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어도 그들에게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바른 삶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왜 이민을 오셨습니까?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잘 살아보려고 왔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이 아닌 오늘날의 살기 좋다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목적이 아니고, 자신의 명예를 세우려는 목적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자신의 손에 돈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큰 만족을 하시며 자신의 짧은 인생을 떳떳이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다가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여 만민의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입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끔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짧은 인생의 출발과 종착역은 분명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위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