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통곡으로

날짜: 
2018/07/08
말씀: 
왕하20:1-7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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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러분 살면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면 눈물이 나오고 때로는 통곡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특히 우리들은 이곳 캐나다 캘거리 땅에 와서 종종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외국 땅에서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해서 통곡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거기서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눈물과 통곡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회복의 역사가 있었고, 변화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고로 인생을 살면서 눈물이 나오고 통곡이 이루어지면 거기가 바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좋은 단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중병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왕에게 이런 불길한 예언을 합니다. “당신은 이제 곧 죽을 테니 집안을 정리하십시오.” 물론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히스기야 왕이지만 이대로 인생을 마치기에는 맺혀진 원한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죽음 앞에서는 왕도 무력합니다.
히스기야는 죽음 앞에서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그 어떤 좋은 음식도,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자신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벽을 향하여 얼굴을 대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을 대언하여 이런 예언을 합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삼일 만에 네 병이 낫겠고, 내가 네 생명을 15년 연장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동정이 많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자기 자녀가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찡- 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부모라면 생각해보십시오. 밖에 나갔던 자녀가 집에 들어와서 통곡을 하고 울면 부모님은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리고 “아니, 재가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하고 깜짝 놀라서 자녀에게 달려갑니다.
한나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엘가나라는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없습니다. 남편이 둘째 부인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부인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둘째 부인이 본처인 한나를 무시하고 격동시킵니다. 한나는 너무나 번민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어디다가 하소연을 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울며 통곡을 합니다.
그 광경을 보고 엘리 제사장이 술 취한 여자인 줄 알고 다가와 핀잔을 줍니다. “여인아, 술을 끊어라.” 한나가 대답합니다. “저는 술 취한 여자가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저는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은 여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의 심정을 아뢰는 것뿐입니다.”
이에 엘리 제사장이 그녀의 사정을 불쌍히 여기며 그녀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여인아,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그 결과 그녀에게도 아기가 생겼습니다.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을 큰 위기 때에 구한 선지자요 사사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통곡의 기도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만나거나, 도저히 내 힘으로 넘기 힘든 문제의 장벽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고 울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야곱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타향살이 20년을 하는 동안 고생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이제는 거부가 되어 아내들과 자녀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의 형 에서가 20년이나 지나서도 자기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내일 아침이면 자기는 형의 손에 죽게 되고 맙니다. 재산은 많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음 앞에선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통곡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고 사정을 합니다. “나를 살려주소서. 나를 축복하소서.”
그의 눈물과 통곡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를 죽이러 온 형과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형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변하여 다시 형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눈물과 통곡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갈이란 여인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처로서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본처인 사라가 한 때 아기를 못 가졌으나 이제는 본처도 이삭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다시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인 이스마엘도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 이스마엘이 본처의 아들 이삭을 괴롭히니까 결국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물 한 가죽 부대만 가지고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그만 물이 떨어져 죽게 생겼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못난 어미 때문에 아들까지 죽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로서 마음이 메어집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대성통곡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갈의 눈을 밝히매 바로 옆에 샘물이 보입니다. 아- 이제 살았습니다. 이 사건 역시 눈물과 통곡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를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6) 즉 눈물이 있는 곳에 샘물도 터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 즉 눈물이 없으면 거두는 것도 없고 눈물이 있는 곳에는 수확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5:7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게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으며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에게도 너무나 큰 근심이고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 통곡 소리에 천사가 나타나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이 듭니다. 나만 인생사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힘들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물과 통곡으로 자기의 사정과 처지를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그냥 기도해도 듣는 분이시지만 때로는 우리가 너무 슬프거나 힘들어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면 더욱 가까이서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전에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을 하여 성장하는 중에 50명에서 60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시커먼 마귀가 잡아당겨서 도저히 달성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산에 오르다가 바위 절벽을 만났습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 절벽 바위를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가 단계다.”
저는 그 단계를 도저히 제 힘으로 올라갈 수 없어서 엉엉- 소리 내어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울고 나서 눈을 떠보니 어-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그 바위 절벽을 넘어 그 위에 이미 올라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내 통곡 소리를 듣고 나를 안아서 그 바위 위로 올려놓은 것입니다. 나는 다만 통곡을 한 것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 통곡 소리를 듣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민생활, 외국생활 중에 많은 분들이 어려운 단계를 겪게 됩니다. 실직을 했거나, 돈줄이 막혔거나, 일이 갑자기 꼬이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나거나, 혹은 외국 땅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그 답답함이 계속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계속 스트레스가 쌓이고, 답답함이 나를 누리고, 소망이 없게 됩니다. 그것을 뻔히 알지만 나는 그 단계를 넘을 힘이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나아가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를 해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울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어지고, 단계가 통과된 것이 보일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 시절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훼는 40일이 지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들이 재에 앉아 눈물과 통곡을 하니 망할 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은 결국 망하고 둘째 왕 다윗은 결국 흥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눈물의 차이입니다. 사울왕도 죄를 지었고 다윗 왕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눈물 흘려 회개하지 못했고 다윗은 눈물 흘려 통회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결국 망하고 베드로는 결국 흥했습니다. 그 역시 눈물의 차이입니다. 통곡을 하며 회개한 베드로는 다시 기회를 얻었고 통곡을 하지 못한 유다는 버림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한 성도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통곡하는 성도가 있으면 그는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인들은 나름대로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눈물을 흘리지 않고 통곡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단계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 되겠다 싶어서 도저히 자기 힘으로 풀 수 없는 큰 문제를 보내어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통곡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와 환난을 통하여 통곡을 하다 보면 어느새 천사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는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순복음 교회는 눈물과 통곡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만나고, 문제도 풀어지고, 하나님의 위로도 받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외국 생활에서 눈물과 통곡으로 단계를 통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가 풀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