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날짜: 
2020/02/02
말씀: 
마10:28-31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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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성도님들 중에 혼자 성전에 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밤중에 주일식사 당번이라 교회에 와야 하는데 무서워서 혼자 못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전에 어느 청년이 교회 대성전에서 혼자 자다가 무서워서 혼났다고 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대성전 건물이 오래되고 목조 건물입니다. 그리고 온수난방시스템입니다. 그러다보니 온도자동조절장치에 따라서 갑자기 ‘웅-’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드드드득-’ 거리고 ‘철퍼덕’ 하고 물이 돌아가는 소리도 납니다. 그리고 자다가 보면 목조 건물이 온도에 따라서 풀렸다 조였다 하면서 ‘삐거덕’ 소리가 납니다. 이 모든 음들이 계속해서 믹스가 되어서 아주 이상한 소리가 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도둑이 들어왔나?“ 하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혼자 밤에 대성전에서 올나잇하면서 기도를 해보시면 알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지난 주일부터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셔서 혼자 밤에 성전에 와서 아침까지 올나잇하면서 일주일간 기도를 해보았습니다. 기도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전등을 모두 끄고 캄캄한 상태에서 기도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소리가 여전히 납니다. 저는 이 소리에 20년이 넘게 익숙한지라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마 도둑님께서 밤중에 대성전에 오셨다가 캄캄한 중에 사람의 물체인 제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래서 도망갈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요일4:1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딤후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국 땅에 살면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며 괜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과 두려움은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복만 파괴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과 교회에도 불안과 두려움을 끼치게 되고 결국 자멸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싸움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한 병사의 두려움은 또 다른 병사의 두려움을 야기하고 나아가 한 나라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에서도 남편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 아내나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결국 그 자녀도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그 아내도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그만 그 가정이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믿음의 선진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야곱아, 두려워 말라. 모세야,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야, 두려워 말라. 바울아, 두려워 말라.” 즉 그렇게 믿음이 강한 사람들도 때로는 두려움이 생길 만한 상황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옛날 믿음의 조상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외국 땅에서 사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1. 사람을 두려워 말라.
본문 28절에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두려워하되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혹시 이 가운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만 두려워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당신이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오늘 밤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까? 그리고 당신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 아무리 주먹이 세도,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권모술수가 뛰어나도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의 성공과 실패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축복 받고, 사랑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두려워할지언정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을 보면 친구들이 자기를 버릴 것을 생각하며 늘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결국 그 얼굴과 표정에 “나는 약한 사람이다.”라고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그 친구들은 엉뚱한 자신감을 얻게 되고 계속해서 그 아이를 왕따로 만들게 됩니다. 즉 괜한 두려움이 자신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29:25에서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보면 12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두령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온 백성 앞에서 그 땅의 풍성한 과일들을 보여주며 보고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보내신 땅에 가 보았더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12명의 정탐꾼이 똑같은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10명의 정탐꾼들이 자기들의 견해를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에 가보니 골짜기는 깊고, 성은 높고, 완전히 천연요새입니다. 거기다가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가 다 거인 족속들입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새끼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땅에 올라갔다가는 모두 다 죽을 것입니다.“
이런 보고를 하니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두려움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를 갈아치우고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엉뚱한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20일정도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복지를 옆에 두고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헤매는 생활을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즉 두려움은 다 이루어 놓은 승리와 축복과 성공을 망치는 결정적인 패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도 성공과 축복과 행복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고 담대히 나아가고자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속한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2. 고난을 두려워 말라.
요한계시록 2:10에서는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외국 땅에서 사는 여러분들의 삶이 혹시 심히 안 좋은 상황입니까? 그로 인해 두렵고 떨리는 상황입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렇게 외치십시오. “두려움아, 물러가라. 평강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출애굽기 14:1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에는 홍해바다요 등 뒤에는 애급 군대가 병거를 몰고 질풍노도와 같이 쳐들어오는 아주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형편을 살펴보면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상황입니까? 앞에는 홍해바다요 뒤에는 애급 군대가 추격하고 있는 상황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도 죽고, 뒤로 물러서도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그리고 이 어려움을 만나게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결국 홍해수는 갈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었던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이 외국 땅에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로 결코 환난을, 문제를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있지 않습니까? 괜히 문제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갔을 때에는 풍랑 이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물위로 걸어갈 때 풍랑과 세찬 바람을 바라니 결국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은 베드로의 믿음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리고 결국 베드로는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즉 두려움이 그를 실패로 몰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어렵고 힘든 환경을 극복해 나갈 수 없습니다. 두려워하면 할 수 있는 일도 실패하고 맙니다. 아무리 작은 일을 하려고 해도 두려움이 앞서면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고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려움이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성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외치십시오. “두려움아, 물러갈지어다.”
3. 귀신을 두려워 말라.
많은 사람들은 귀신이 어디 있냐고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에는 “혹시 귀신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 귀신이 오늘 밤에 나한테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예수님을 믿고 나서 대학생 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귀신아, 네가 진짜 있다면 나한테 한번 나타나 보라. 누가 센지 나랑 한 판 붙어보자.”
그런데 그런 저에게 진짜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에 아버님이 충청도 아산에 있는 한 야산에다 피아노 공장을 짓는데 거기 땅을 평평하게 하는 사업을 맡으셨습니다. 마을과 걸어서 30분 정도 제법 떨어져 있는 야산에서 불도저로 산을 밀어 절벽 골짜기를 메워야 됩니다.
저는 그때 방학 때라 아버님 사업장에서 일도 배우고 용돈도 벌려고 한 일주일 정도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 산을 가리켜 귀신이 나오는 산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몇 년 전에 북한 무장간첩이 출현해서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해마다 여자가 목매달아 죽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 산에 보니 여기 저기 도자기 그릇 조각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게 뭐에요?” 하고 물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옛날 고려장 터라고 합니다. 아시지요? 고려장? 옛날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늙으신 부모를 지게에 업어서 깊은 산속에다 밥 한 그릇 담아서 버리고 오는 장례 제도입니다. 그러니 그 산이 얼마나 원한이 맺힌 터이겠습니까?
저의 어머니는 그 산에 올라가면 땅에다가 십자가를 긋고 “이 사업장에 귀신들 틈타지 않고 평안히 잘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산을 밀다보니 큰 검은 색 관이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두 배 되는 관이고 거기에 이런 저런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박물관 사람들을 불러서 파악하니 옛날 청일전쟁 때에 청나라 장수가 죽어서 여기다 묻어놓고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진행 중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만 큰 바위 층을 만난 것입니다. 일이 예정보다 지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야간작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불도저 기사가 기계가 고장 났으니 손을 봐야 된다고 밤중에 저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단지 불도저 위에서 플래시를 비춰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느 할머니 음성이 들렸습니다. “당신이 여기 주인이요?” “네?” 제가 플래시를 비추고 보니 한 할머니가 흰 옷을 입고 상체만 보이는데 얼굴이 주름진 할머니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래시 불빛에 바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불도저 기사 분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거 이상하다!”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하니까 어머니가 말씀합니다. “귀신이 너에게 나타난 모양이다. 그때에는 ‘예수의 피!’를 외쳐서 귀신을 쫒아내라.” 그리고 며칠 후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불도저 기사가 혼자 그 무서운 산에서 야간작업을 하는데 새벽에 얼굴이 파래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 이제 야간작업을 못하겠어요?” “아니 왜요?” “나 어제 밤에 귀신을 봤어요.” “뭔 일인지 자세히 이야기 해보세요.”
그 불도저 기사가 말합니다. “제가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불도저 바퀴위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를 쳐다보는 겁니다. 저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작업을 못하고 밤새 불도저 안에서 빙빙 돌다가 새벽에야 이렇게 도망쳐 내려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산에 올라가 보니 진짜 작업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땅만 빙빙 돈 자국만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또 귀신이 나타났구나!”
물론 성경적으로 보면 귀신은 하나님처럼 영적 존재라 우리 인간의 시각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단지 영안이 열린 사람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지,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이 이 땅으로 내어 쫓긴 존재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파괴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줍니다.
성경은 이런 귀신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피의 능력으로 반드시 쫓아내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귀신들은 오늘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로 그 귀신들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워말고 단호히 쫓아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쫓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귀신이 우리를 무서워하고 도망갑니다.
여러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잠도 잘 오지 않게 됩니다. 자연히 병이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어이구, 이제 내가 망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 병들어 죽는 것은 아닌가?” 별별 좋지 못한 생각이 다 들게 됩니다. 결국 두려움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와 망하기도 전에 미리 망하게 하고, 실패하기도 전에 미리 실패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얼마나 우리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지 모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정서가 불안해지고 왜 그렇게 피곤이 자주 오는지 괜히 피곤해 집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두려움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더구나 이곳 캐나다 땅까지 와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살아가십시오.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아무리 힘든 사람이 있어도, 설사 귀신들이 장난을 쳐도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도리어 더 큰 주님의 평강을 얻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