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상을 이기는가?

날짜: 
2020/09/13
말씀: 
요일5:4-5
말씀구절: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설교: 

시편에 보면 종종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사는 시편 기자들의 탄식이 나옵니다. 시편10:1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즉 이 사람은 현실이 심히 괴롭습니다. 현재 너무 슬픕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묻어 있습니다.

왜요? 그 이유가 뭡니까? 그는 악인들이 설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심히 상했습니다. 더욱이 그런 악인들을 그냥 놔두고 방조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더욱 마음이 답답해지고 힘들어집니다. 비단 시편 기자들뿐만 아니라 말세의 그 보다 더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종종 이런 생각, 이런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의인보다 악인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성경은 아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사실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런 악인들의 모습에 너무도 지친 한 사람이 “그래도 교회에는 천사들이 있겠지!” 하고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받으려고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그는 거기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 드디어 여기가 나의 안식할 곳이구나!” 그렇게 그는 교회에 나와서 같이 예배를 드리며 한 동안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의 한 부서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서 신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멀리서 봤을 때에는 그렇게 아름다웠고 그렇게 좋아보였던 신자들의 허물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점차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다. 조그만 사건이 일어나면 그래도 믿음으로 인격으로 이겨내지만 큰 사건이나 쇼킹한 사건이 일어나면 번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근심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됩니다. 그리고 결국 목사님이 바라지 않고 하나님도 원치 않는 액션이 나오게 됩니다. 즉 예배를 빠지거나, 교회를 떠날 수 있고, 믿음이 후퇴할 수 있습니다. 늘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고백했는데 그만 시험이 들고 만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뒤로 물러가지 말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한다.”(히10:38)고 하셨고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고 했는데 웬일인지 후퇴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왜요? 그 사람 때문에 지쳤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심히 피곤합니다.

이때 때마침 COVID-19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 잘됐다. 그러지 않아도 교회에 나가기 싫었었는데...” 하면서 믿음의 후퇴를 당연시 하고 합법화합니다. 물론 바이러스로 인한 안전 때문에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 갔나요? 못 찾겠다. 꾀꼴 꾀꼴... 나는야, 술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COVID-19도 극복해야 하고, 환경도 사람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과일을 주겠다고 하셨고(계2:7),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고(계2:11),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계2:17)

또한 이기는 자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셨고(계2:26), 이기는 자에게 흰옷을 입히겠다고 하셨고(계3:5),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고(계3:12), 이기는 자에게 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계3: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자가 이기십시오. 그리고 힘을 합하여 이기십시오. COVID-19도 이기고, 환경도 이기고, 특히 사람으로 인한 고통도 이기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만약 우리가 악을 이기겠다고 그보다 더 큰 악으로 이기려고 하면 내가 더 악해져야 하고 더 독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혹은 “에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고 자꾸 사람을 멀리 하고 스스로 고립의 길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대인 기피증이 생길 수 있고 사회 부적응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도리어 그런 악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하고 올바르게 선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악이 무서워서 혹은 그들의 악이 너무 힘들어서 자꾸 후퇴를 하다 보면 결국 악에게 지고 맙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고로 악인을 대할 때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악보다 더 큰 선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가 나를 비난하고 모욕을 준다고 같이 비난하고 욕을 하면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그가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너무 열 받지 마십시오. 도리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떡 하나 더 줄 수 있는 용기와 지혜와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더 나아가 그에게 더 친절하고 더 따듯한 손길과 웃는 모습으로 대하십시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고, 꼬집어주고 싶은데 그런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려고 하니 더욱 답답해지고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아- 이러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상한 마음, 상한 감정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뢰십시오. “하나님, 제가 요즘 저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마음이 매우 상했어요. 기분이 아주 나빠요. 이렇게 나쁜 감정으로는 그 사람을 대하면 저도 그도 더욱 힘들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저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 주세요. 저를 위로해 주세요. 저에게 다시 그를 좋게 대할 수 있는 여유를 주세요.”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속에 있는 나쁜 감정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물리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싫어하게 하는 감정은 나에게서 물러가라. 미움과 증오는 나에게서 물러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평안할지어다. 기쁨이 임할지어다.”

여러분, 우리 한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역사를 보면 주위 나라들로부터 많은 침략과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때 나에게 피해를 준 상대방에게 복수할 힘이 있다면 쌓인 감정과 원한이 어느 정도 풀어지지만 복수할 능력도 없으니 혼자 밤에 처량하게 울어야 합니다. 신세한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 한국의 노래를 보면 한이 참 많이 서려 있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이런 한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노래, 찬송을 부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아- 내 맘 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 나쁜 감정으로 인하여 한이 서려 있다면 찬송으로 그 한을 푸십시오. 아무리 기분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대개 한 두 시간 정도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면 기분이 풀립니다. 마음이 좋아집니다. 같이 따라합시다. “찬송하자.” 일단 내가 먼저 마음이 좋아져야 그 다음에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가정주부가 마음이 상하면 밥하기가 싫습니다. 남편이 기분이 상하면 “내가 누구 때문에 돈을 버나?” 하고 일하러 나가기가 싫습니다. 학생이 마음이 상하면 공부하기 싫습니다. 성도가 마음이 상하면 교회 가기가 싫습니다. 목사가 마음이 상하면 목회하기가 싫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이 험악한 세상을 살면 항상 마음이 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상한 마음을 최대한 빨리 풀어버려야 합니다. 해가 지나도록 분을 품고 그대로 자면 안 됩니다. 마치 이를 딱지 않고 그대로 자다간 밤새 충치가 먹듯이 나쁜 감정을 가지고 그대로 자면 밤새 마귀가 역사합니다. 고로 마음이 상했으면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께 자기의 사정과 형편을 아뢰고 신속하게 마음을 치료받고 위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불행, 나의 질병, 나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고로 나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행복해질 수 있고 반드시 행복해져야 합니다.

일단 내가 행복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선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아- 기분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일단 내 마음이 좋아지니까 모든 것이 좋아 보입니다. 세상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람들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기쁜 거야?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예수님의 약속하신 성령, 기쁨의 영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그런 겁니다. 그 큰 기쁨이 있으니까 스스로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아- 모든 것이 재미있습니다. 하나님께 복도 받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가 생기고 근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 좋은 감정을 그때마다 기도로 진리로 찬송으로 풀지 못하고 쌓여만 갑니다. 결국 또 다시 인생사는 것이 지치고 맙니다. 교회 다니는 것도 피곤해집니다. 믿음이 후퇴합니다. 이때 COVID-19이 후퇴의 발판이 될 수 있고 후퇴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겨야 합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환경도 이겨야 하고, 사람으로 인한 고통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신 그 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우리도 그 분의 힘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5:4-5)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기 전에는 죄도 악도 원수도 세상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나도 이길 수 있다. 이겨야 한다. 이기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