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자유케 하는가?

날짜: 
2020/11/22
말씀: 
요8:32-36
말씀구절: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설교: 

퀴즈 하나 낼게요. 알아맞혀 보세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미국의 뉴욕에 있습니다. 이것은 1886년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전쟁 승리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것의 높이는 46m이고 총무게는 225톤입니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뭐지요? 답은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참고로 여신상 오른 손에는 횃불이 있고, 왼손에는 미국 독립 선언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관에 달린 7개의 뿔은 북극해 남극해, 인도양, 북태평양, 남태평양, 북대서양, 남대서양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여신상을 입고 있는 옷은 로마 공화국의 옷으로 민주주의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여신상이 발로 밟고 있는 쇠사슬은 노예 제도 폐지에 따른 자유를 상징합니다. 미국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8년간 독립전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 남북전쟁을 했습니다. 이때 노예제도를 지지하던 남부와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던 북부가 전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북부가 이김으로 미국 전역에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한국은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년도인 1886년 고종황제가 노예 세습제를 폐지했습니다. 혹시 자기 조상이 옛날에 노예(종)이었던 분이 있습니까?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것 잘 모를 겁니다.

어떤 남녀가 결혼을 하려고 양가 가족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 측에서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올라와서 신랑 측 가문에 대하여 이리저리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할아버지가 그 결혼은 절대로 안 된다고 파토를 놓았습니다. 그 이유인 즉 종놈의 집안하고 결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 그렇게 조상을 따지면 우리 모두는 옛날에 다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께 따집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요8:33)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라.“(요8:34)

즉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결국 다 죄의 종, 마귀의 노예라는 겁니다. 그렇게 죄를 짓고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서도 심판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한국이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되던 날 사람들이 모두 길에 나와 목청껏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우리도 예수님이 주신 독립과 자유에 감사하며 외칩니다. 뭐라고 외치지요? “할렐루야!” 하고 외칩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자유’라는 말에 그리 감격하지 않습니다. 자유의 가치에 대하여 그리 귀중하게 느끼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자유의 나라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설교 제목인 “누가 나를 자유케 하는가?”는 말도 솔직히 그리 와 닫지 않을 겁니다. 현재 너무나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유가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니까 “뭔 자유? 우린 종이 아니야. 자유 그런 것 필요 없어.”라고 반문하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응, 그런 것이 아니고 죄에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거야?” 하고 가르쳐줍니다.

여러분, 인류는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질병과 각종 저주가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사랑의 교제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답답합니다. 슬픕니다. 우울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불행합니다. 근심이 쌓입니다. 절망스럽습니다. 살기 힘듭니다. 이대로는 못삽니다. 탈출구가 있어야 합니다.

종종 뉴스에 보면 감옥에 있던 죄수가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려고 합니다. 왜요?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도 많은 분들이 북한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필사적으로 탈출합니다. 이름하여 탈북자입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애급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급을 탈출합니다. 이름하여 출애급기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탈출하고 싶은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왜 그럽니까? 힘듭니까? 외국 땅에서 사는 것이 좀 지칩니까? 그래서 이민 온 분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가 창살 없는 감옥이다.” 특히 노인분들이 “아- 살기 좋은 캐나다 땅이라고 왔는데 영어도 못하고, 차도 없고, 갈 데도 없고 그냥 집에만 처박혀 있으려니 힘들어요.”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도 뭔가 탈출구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현실은 탈출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COVID-19 때문에 탈출이 더욱 힘듭니다. 그리고 탈출을 해도 날씨도 추운데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요즘 너무 자주 듣는 말입니다. “Stay home. Stay safe" 즉 집안에 처박혀 지내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집안에만 있어도, 감옥에서 있어도, 골방에서 있어도 도리어 그곳에서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저기 온 세상을 돌아다녀도 마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고, 한 평 밖에 안 되는 골방에서도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큰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느 쪽입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눅4:18) 즉 내 안에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 분이 나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26살에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성령을 받으니 날아갈듯이 기쁩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물론 성령 충만 받아도 여전히 삶의 문제는 있습니다. 성령 받았다고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삶속에서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냥 기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뭐야- 이거? 마약 먹은 것도 아닌데... 여러분, 이게 바로 예수님이 영으로 오셔서 주시는 기쁨과 자유입니다.

그냥 일회성이고 찰나적인 세상 쾌락이 아니고 주의 영이 충만하면 계속되는 기쁨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와 행복을 빼앗기면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즉 다시 죄의 노예가 되지 말고, 그로 인해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자유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내 안에 주의 영이 있으면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는 그곳에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이 함께 하면 캘거리에서 23년간 짱박혀 살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거 누구 이야기 하는 겁니까? 예-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같이 따라서 해봅시다. “캘거리에 그렇게 오래 살아도 나는 전혀 답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 피곤하게 직장에 일하러 갈 필요 없고,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분은 하나만 알고 둘 셋은 모르는 분입니다. 그 많은 돈이 나를 도리어 속박할 수 있습니다. 즉 돈의 노예가 되어 돈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돈 때문에 타락하고, 그 돈 때문에 서로 싸우고, 그 돈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기도도 게을러집니다.

그리고 돈은 있지만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많은 돈이 도리어 원망스럽고 저주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돈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즉 돈도 나에게 알맞게 주심으로, 돈에 얽매이지 않고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결론입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COVID-19이 오거나가거나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