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날짜: 
2017/05/21
말씀: 
갈2:20
말씀구절: 

...

설교: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러분,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살기가 싫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의 경우 대개는 살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물론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 즉 의식주가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건강도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고,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컴퓨터도 있어야겠고, 연세 드신 분들은 텔레비전도 있어야겠고, 각종 취미나 오락도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겨울 날씨가 만만치 않은 이곳 캐나다에서는 차도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의식주나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평안과 행복도 있어야 하고, 영적인 존재인 만큼 하나님과 교통함으로부터 다가오는 영적인 만족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이든 최대한이든지 갖추어야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행을 느끼거나, 짜증이 나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살기 위한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지금 벼랑 끝에 와 있어요. 더 이상은 못살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그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전혀 느끼고 있지 않지만 만약 공기가 없다면 우리 모두는 죽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서면 우리는 모두 타서 죽고, 한 발자국만 후퇴해도 우리는 모두 얼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유인력이라는 법칙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우주의 미아가 될 것이요, 바다의 한계나 땅의 한계를 정하여 놓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는 물에 빠져 죽고 말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가 잠시라도 떠나면 인류는 전멸될 요인이 이 우주에 무한히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몸을 살펴보십시오.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린데 그 머리 부분에서도 우리가 가장 예민하게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바로 눈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7:8에도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주위에서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 우리의 뇌는 가장 먼저 눈동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꺼풀을 빨리 감을 수 있도록 전달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고를 당해 온 몸이 다 깨어져도 멀쩡한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동자입니다. 이렇게 눈이 잘 다치지 않는 것은 강한 보호 본능이 눈에 제일 먼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는 눈꺼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보호 장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눈썹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비가 오면 물이 우리의 눈으로 직접 흐르지 않고 옆으로 흐르도록 눈썹 주위가 볼록 나와 있고, 그 주위에 눈썹이 나므로 빗물이 눈썹을 따라 옆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경우 멋을 부린다고 눈썹을 싹 밀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의 주름살을 보십시오. 아주 특정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부분 사람들의 주름살이 가로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 직접 눈으로 흐르지 않고 옆으로 흐르도록 해서 눈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만약 주름살이 세로로 깊게 도랑처럼 파여져 있다면 눈에 물이 많이 들어가 애를 먹게 될 것입니다.
또한 속눈썹을 보십시오. 혹 티끌이나 먼지가 들어가다가도 그 속눈썹에 걸려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눈 속에 눈물샘을 만들어 놓으심으로 우리의 눈동자를 자주 세척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의 windshield water장치와도 같습니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windshield 물을 여름용 겨울용으로 늘 보충해주어야 하는데, 우리의 눈물샘은 평생 마르지도 않고 사시사철용으로 쓸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세척한 물을 코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눈 속에 배수구를 연결해 놓았는데 이것이 코가 마르지 않고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 배수구가 막히면 눈이 항상 짓물러 있고, 눈물이 항상 고여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설계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경을 쓰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고 활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스스로의 힘으로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개중에는 자기 힘으로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눈을 뜨고 보면 아무것도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자들 중에는 “아니, 무슨 소리를 합니까? 내 힘과 노력으로 뼈 빠지게 수고해서 돈을 벌었는데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니요? 누가 나한테 돈을 갖다 주었습니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즉 자기가 잘나서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8:17-18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즉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수고해서 돈을 많이 번 것 같지만 실지는 하나님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직장도 주시고, 사업도 주시고, 그에 따른 운영과 보호도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돈을 쥐고, 돈을 쓰고 살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아하, 돈도 은도 금도 다 하나님의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마치 목자와 양의 관계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양은 근시이기 때문에 스스로 푸른 초장도 안전한 길도 제대로 찾을 수도 없고, 또한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무기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리나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그대로 잡아먹히고 맙니다. 즉 양에게는 목자가 바로 생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목자 없이 양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15:5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사도 바울도 본문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 앞에 닥치는 모든 문제를 내 힘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말미암아 해결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즉 내 앞에 닥치는 모든 문제를 내 힘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말미암아 해결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인생을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당면한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게 되었다든지, 야이로의 딸이나 나사로가 죽었을 때라든지, 그리고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라든지, 혹은 양식이 떨어졌을 때라든지, 식구들이 병이 들어 고생하고 있다든지 등등... 모든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하고 고백을 합니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여러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죽겠다. 못살겠다.” 하고 탄식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이 외국 땅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신경을 쓰고 혼자 번민을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인생은 당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에 당하는 문제를 당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너무나 힘든 인생이 되고 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너희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1-2)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지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을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으로 각 사람에게 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도와주시기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 나는 당신이 필요 없어요. 내 힘으로도 잘 살 수 있어요.” 하고 말하고 있다면 주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먼발치서 바라만 보시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살 때 우리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면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살 수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 외국 땅에서 돈을 벌 수 없지만, 내 힘으로는 이 외국 땅에서 성공할 수 없지만, 내 힘으로는 이 외국 땅에서 행복할 수 없지만, 그리고 내 힘으로는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지만 주님의 힘으로는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하므로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