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늘의 본문인 창세기 1:28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축복이자 최초의 사명 선언문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이전, 가장 순수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조심하며 살아라‘ ’겨우겨우 버티며 살아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책임 있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 단어는 권력을 상징하는 언어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는 우리들의 삶의 방향이요 사명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충만은 탐욕이 되고, 정복은 경쟁이 되고, 다스림은 지배로 변질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네 마음대로 살아라, 네 욕심대로 살아라, 남들 위에 군림하고 이기적으로 살아라.”라고 권리를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준 최초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충만하라
이 말씀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충만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임재의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말하는 충만은 하나님의 생명과 임재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은 공허했습니다. 혼돈과 무질서 상태였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래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빈 공간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6일 동안 채우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하늘도 채우고, 땅도 채우고, 바다와 강도 채우는 창조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된 것, 채워진 것을 보니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즉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충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피조물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바라시는 충만의 상태가 깨진 것입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40년간 꾸준히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욕심으로 잔뜩 거두어 쌓아두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쌓아놓은 만나가 모두 상했습니다. 벌레가 끼었습니다.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즉 욕심으로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말하는 충만이 아닙니다. 도리어 남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충만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충만은 단지 겉으로 숫자만 많아지고, 겉으로만 나타나는 그럴듯한 모습을 가리켜 충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속이 좋고 내용이 좋아야 진짜 충만입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성탄절 행사 때에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제가 나누어주면서 ”우와- 이건 뭐지?“ 하고 좀 놀란 선물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Dior’ 상표가 붙은 선물 상자였습니다. 여러분, 크리스천 ‘Dior’ 상표는 알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프랑스의 럭셔리 명품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 상자를 보니까 너무도 아름답고 멋있는 흰색의 상자였습니다. 제가 그 비싼 선물 상자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나 궁금해서 살펴보니, 동그란 유리 안에 조그만 인형이 들어가서, 흔들면 눈이 내리는 풍경이 펼쳐지는 그런 예쁜 장식품이었습니다. 애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니, 이게 뭐지? 안에 들어 있는 내용보다 상자가 훨씬 더 비싸겠는걸! “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비싼 상자들을 어느 분이 후원했더라고요. 후원하신 분에게 감사합니다. 그 상자 너무 이뻐서 물건 담는 상자로 쓰면 좋겠습니다.
암튼 요즘은 포장은 그럴듯한데 내용이 별로인 것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한국의 과자들을 보면 포장이 빵빵합니다. 그러나 뜯어보면 푹- 하고 공기가 꺼지면서 내용은 아주 조금 밖에 없습니다. 그냥 질소만 가득 채운 것입니다. 즉 겉으로만 충만이 아니라 속으로의 충만이 진짜 충만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고 빵빵한데 속이 텅 빈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겉은 초라한데 속이 꽉 찬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같은 사람입니다. 믿음 충만, 사랑 충만, 감사 충만,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겉은 그럴듯한데 속이 욕심 충만, 불평 충만, 심술 충만, 마귀 충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충만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잘 나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는 겉으로는 초라해 보였지만, 이런 충만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2. 정복하라
여러분, 땅을 그대로 두면 가시, 엉겅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랍니다. 결국 땅이 못쓰게 됩니다. 그러나 땅을 갈고, 좋은 씨를 뿌리면 밭이 됩니다. 즉 정복하라는 뜻은 파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가꾸라는 뜻입니다. 관리를 잘하라는 뜻입니다. 개척과 개간을 하며 건설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마음의 밭을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각종 좋지 못한 것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각종 악한 생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곧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 나온다고 했습니다.(막7:21-22)
특히 세상의 잘못된 문화나 뉴스에 오래 접하다 보면 마음이 황폐해지기 쉽습니다. 세상을 정복할 사람이 도리어 세상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늘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 교만한 마음은 깨트려야 하고, 계속 돋아나는 부정의 잡초, 미움의 잡초, 욕심의 잡초, 음란의 잡초, 탐욕의 잡초는 보이는 대로 계속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정복입니다. 즉 정복은 파괴를 뜻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혼돈과 무질서를 질서와 회복으로 바꾸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복은 경쟁에서 이기라는 뜻도 아닙니다. 남을 때리고, 남을 못살게 굴고, 남보다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고, 남을 억압하고 통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죽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 캐나다에서 원주민 선교를 할 때 원주민들의 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중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캐나다 정부가 이곳 북미 땅에서 나라를 건설할 때, 그들은 좋지 못한 정복자였습니다. 원주민 기숙학교를 세워 원주민 자녀들을 부모와 강제로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겉으로는 그들에게 좋은 문명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빼앗고,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며, 그들을 학대했습니다. 특히 이 일에 정부와 가톨릭이 주축이 되고, 개신교회도 참여하여 원주민들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주었습니다. 수천 명의 많은 원주민 어린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캐나다 뉴스를 보았는데 원주민 기숙학교 근처 땅속에서 다수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이들 시신이 나왔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하라’는 말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문명의 우월함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정복은 제국주의적 발상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은 상대방을 회복시키고, 상대방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며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내가 희생해야 하고, 때로는 시간과 정성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며, 심지어 원수까지도 포용하며 사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정복의 개념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사랑과 복음으로, 희생과 죽음으로 세상을 정복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와 여러분도 새해에는 좀 더 많이 정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즉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에게 더욱 친절하십시오. 그래서 더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이끄시는 참된 정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다스리라
좋은 리더의 특징은 솔선수범으로 무리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돌봐주고 아껴주고 책임까지 져주는 사람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른 리더요 바른 다스림입니다. 반면 나쁜 리더는 무리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지배하고, 군림하는 사람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다스림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찍어 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제일 높다는 뜻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지라는 뜻도 아닙니다. 남들 위에 올라타라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 멋대로 살라는 뜻도 아닙니다. 도리어 남의 짐을 대신 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잘 인도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 할 당시에 20세 이상 군인들만 60만 명이 되었습니다. 전체인원을 합하면 200-400만 명까지 보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세 혼자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벅찹니다. 그래서 백성 중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각각 짐을 나누어 졌습니다. 즉 다스림은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건강, 물질, 믿음, 각종 은사를 더 많이 주신 이유는 맡겨준 그들을 더 많이 섬기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적 다스림은 각자 책임을 지고 돌보라는 겁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다스리는 모범적인 청지기가 되라는 겁니다.
요즘 한국도 그렇고 여기 캐나다도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아지의 주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아지를 때리고, 괴롭히고, 못살게 하고, 방치하는 것이 바른 다스림일까요? 아닙니다. 강아지에게 제때 밥 주고, 매일 산책시켜주고, 씻겨주고, 털 관리해주어야 합니다.
손톱 발톱도 너무나 빨리 자랍니다. 그거 정기적으로 깎아주어야 합니다. 내 손톱과 발톱은 관리를 못 하더라도 이 아이는 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아지가 아무리 똑똑해도 스스로 손톱과 발톱을 깎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일 눈곱도 떼어주어야 합니다. 귀 청소도 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강아지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사회성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나 짖거나 공격하지 않도록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즉 좋은 주인이란 책임을 지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바른 다스림으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내 말 잘 들어.”가 아니라 “내가 도와줄게.”라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충만하라‘는 말로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고, ’정복하라‘는 말로 남들을 괴롭히고, ’다스리라‘는 말로 자기만의 성공을 추구하는 아주 못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해석하고, 잘못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권리 선언문‘이 아니라 ’사명 선언문‘입니다.
다시 말해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라는 부르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바르게 충만하십시오. 바르게 정복하십시오. 그리고 바르게 다스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사명을 이 외국 땅에서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인정과 함께 더욱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여, 바르게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바르게 정복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바르게 다스리게 하시옵소서.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바르게 가꾸게 하시옵소서. 그들로 주님의 생명을 얻고,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나타내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