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날짜: 
2026/05/09
말씀: 
요15:5
말씀구절: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설교: 

여러분, 혹시 ‘한 끗 차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도박이나 게임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릴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한 끗‘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똑같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수고하고, 똑같이 땀 흘려 일하며, 똑같이 거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얼굴에 평안의 미소가 흐르고, 누가 봐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늘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진 채 한숨 섞인 불행의 인생을 삽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올까요? 돈이 더 많아서일까요? 건강해서일까요? 자녀가 잘되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명확한 대답을 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느냐(With God)?”, 아니면 ”나 혼자 하느냐(Alone)?”라는 한 끗 차이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삶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일상을 행복으로 바꾸는 그 신비로운 동행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나 혼자 하면 -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불행의 시작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내 힘과 내 지혜만 의지하며 혼자 인생의 무게를 버티려고 할 때 불행은 시작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고 말합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 “나는 이제 혼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어!”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분리하는 순간, 그 가지는 어떻게 될까요?

겉보기에는 잠시 푸르러 보일지 몰라도, 뿌리로부터 오는 생명력이 끊겼기에, 결국 말라비틀어져 나중에는 땔감으로 불에 던져질 뿐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라는 화려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급한 마음을 앞세웠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오네? 군사들은 무서워서 자꾸 도망가네? 에라, 모르겠다. 내가 혼자 제사를 드려야지!” 이렇게 ’나 혼자 하려는 교만‘이 결국 사울의 인생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을 하니까 결국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자꾸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떠난 사울의 일상은 악신에 시달리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지옥의 삶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찬란한 왕의 금관을 쓰고 있어도 하나님 없이 혼자 하는 인생은 결국 ’불행‘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고로 인생을 살 때 혼자 낑낑대며 인생의 무거운 바퀴를 굴리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2. 주님과 함께하면 -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행복의 완성

여러분, 행복은 단지 지금의 상황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은 선포합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즉 인생은 억지로 내 인생을 짜내고 결과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일을 만드시고, 그것을 지어서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면 됩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모세라는 거인이 떠나고 가나안 정복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섰을 때, 그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야, 네가 군사력을 키워라, 네가 전략을 잘 짜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여호수아는 이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발을 내디뎠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행복은 단지 내 실력이 좋아질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할 때 찾아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실패도 과정이 되고, 고난도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반면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면 될 것도 안 되고, 괜히 스트레스와 짜증이 나게 됩니다. 설령 자신이 혼자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자리에 하나님이 없으면 잠시의 기쁨은 있을지라도 결국 그 빈자리에는 공허와 허무가 자리잡게 됩니다.

3. 오늘의 일상 - 주님과 함께 걷는 소풍과 같은 하루

여러분, 주님과의 이 행복한 동행은 거창한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아주 작고 평범한 오늘의 하루 속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에녹’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았을까요? 대단한 기적을 일으켰나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저 그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만 기록합니다. 에녹은 우리와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고, 자녀를 기르고, 일터에서 땀 흘리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함께 걷는 일상은 마치 즐거운 소풍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주방에서 설거지하거나, 청소와 정리를 할 때, 혹은 복잡한 서류 뭉치와 씨름할 때, 혹은 운전대를 잡은 도로 위에서, 혹은 어떤 일상에서든지 “주님, 이 일을 같이합시다.” 하고 주님을 초청하십시오.

내 힘으로만 인생의 노를 저어 가려고 하면 금방 지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에 인생의 돛을 맡기면 우리는 노래하며 찬양하며 즐겁게 여행하듯 항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여러분,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추고 인생을 살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은 주님이 감당하시고, 우리는 그저 주님 곁에서 “할렐루야! 주님, 참 잘하시네요.” 하고 손뼉을 치며, 주님의 솜씨를 노래하고 주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나 혼자 살면 인생은 무겁고 지치고 힘듭니다. 반면 주님과 함께 살면 인생은 쉽고 행복해집니다.

4 결론 : 최고의 선택 - 주님과의 동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서 ‘혼자’ 잘해보려는 것이고, 행복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동행하는 겁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사울처럼 나 혼자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호수아와 에녹처럼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행복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부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고민하는 그 문제, 그 사건을 주님께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괴롭히는 그 상황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오십시오. 더 나아가 크고 작은 모든 일상을 주님과 함께하십시오. 주님과 함께하면 행복해지고 나 혼자 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주님과 함께 하는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25살 때 성령을 받고 나서 이 기도문을 다듬고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40년 이상 지금까지 저는 늘 이런 기도를 합니다. 총 21가지 조항인데, 여러분들도 같이 손가락으로 번호를 매기면서 따라서 해보십시오.

① 자고, 깨고

②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③ 씻고, 닦고

④ 정리하고, 정돈하고

⑤ 보고, 듣고

⑥ 읽고, 쓰고

⑦ 기도하고, 간구하고 /

⑧ 나가고, 들어 오고

⑨ 떠나고, 도착하고

⑩ 만나고, 헤어지고

⑪ 대화하고, 교제하고

⑫ 느끼고, 깨닫고

⑬ 먹고, 마시고

⑭ 대접하고, 대접받고 /

⑮ 타고, 내리고

⑯ 앉고, 서고

⑰ 사고, 팔고

⑱ 바꾸고, 고치고

⑲ 죽고, 살고

⑳ 전도하고, 심방하고

㉑ 선교하고, 지원하고

그리고 이 21개 조항을 7개 단위로 빠른 속도로 스캔합니다. 그러다가 뭔가 한 개가 딱- 걸리면 그 조항을 놓고 좀 더 세밀히 기도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21개 조항을 스캔하다가 ‘떠나고 도착하고’에 뭔가 영감이 딱- 옵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 좀 더 세밀히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 제가 오늘 8시 14분에 집을 떠나서 어디를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 정확히 시간 맞추어 도착하게 하시고, 도착하는 동안 사고 나지 말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그다음에 가려고 하는 장소는 이곳, 이곳, 이곳입니다. 이 장소도 정확히 시간 맞추어 주님과 함께 도착하게 하시옵소서.”

제가 이 21개 조항을 교회 홈피 설교란에 올려둘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쓰십시오. 그리고 때로는 인생 살면서 갑자기 비상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리미리 이렇게 기도를 해놓으면 좋습니다. “주님, 갑자기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 당황하지 말게 하시고, 그때에도 주님과 함께 그 상황을 잘 대처하게 하시옵소서.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솜씨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미리 기도해놓으면 그때 주님의 도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에 저에게 비상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부활절 먼데이(월요일) 아침 9시경인데, 한 중년의 여성이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영어로 말하는데 자기는 학교 교장이고, 교사인 제 딸이 학교에 아직도 출근을 안 했다는 겁니다. 제 딸에게 전화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비상 연락망에 적혀 있는 제 번호로 전화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오늘 Easter Monday인데 쉬는 날이 아닙니까?” 그러자 자기네 학교는 오늘 안 쉰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하- 내 딸이 오늘 쉬는 날인 줄 착각한 모양입니다. 제가 연락해보지요.”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급히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는 겁니다. 아마 딸이 청각이 예민하다 보니 귀마개를 끼고 자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에 직접 찾아가서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딸이 사는 아파트가 몇 호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급히 사위에게 전화했는데 사위가 일하는 중에는 전화를 안 받습니다. 전화녹음장치도 안 되어서 녹음도 할 수 없습니다. 아이고, 참- 난감합니다.

이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뭐지요? 예- 카톡입니다. 제가 카톡으로 비상 상황이니 빨리 연락을 달라고 하니까 사위가 5분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아파트 호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차를 타고 아파트로 가는데, 아뿔싸- 이번엔 아파트 현관에 들어갈 열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안이 아주 철저히 되는 아파트라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설령 아파트 현관에서 딸이 사는 홋수의 인터폰을 눌러도 딸은 귀마개를 했으니 들을 수도 없을 겁니다. 아- 참 난감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현관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이 때맞춰 현관에 들어가든지 나오든지 타임을 맞추어주십시오. 그리고 딸이 갑자기 제가 나타나더라도 절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신속하게 출근을 준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그 아파트에 도착해서 현관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때맞추어 한 사람이 현관에 막 들어가려고 합니다.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비상 상황이 발생해서 그런데, 같이 좀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아파트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이고- 이번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내가 누른 층수에 서지를 않는 겁니다. 알고 보니 거기도 카드가 있어야 엘리베이터가 작동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여성분이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비상 상황이라 급히 2층에 가야 하는데 카드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자기 카드로 대신 대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딸의 아파트 홋수에 도착을 했는데, 아뿔싸- 이번엔 딸의 아파트 홋수에 따로 벨이 없습니다. 더구나 딸은 귀마개를 했으니 현관을 아무리 두드려도 못 들을 겁니다. 이웃에게 심히 시끄럽기도 하고요.

혹시나 해서 문손잡이를 살며시 돌려보니까 와- 다행인지 뭔지 문이 스르르 열립니다. 사위가 일찍 출근하면서 딸이 깰까 봐 일부러 문을 안 잠그고 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집안에 들어가 아직 침대에서 귀마개를 하고 행복하게 자고 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주희야, 학교 안 가? 교장이 방금 전화 왔는데, 오늘 쉬는 날이 아니래.”

딸은 갑자기 제가 나타나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한동안 멍하고 있다가… 귀마개를 빼고 “그래?” 하고 담담히 말하며, 전혀 서두르지도 않고, 아주 느긋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출근을 준비했습니다. 나중에 딸이 학교를 마치고 우리 집에 와서 말합니다. “아- 그때, 아빠가 나타나서 말할 때, 내가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아주 평안해서 참 이상했어.”

제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혼자 말했습니다. “애야, 내가 미리 그런 기도를 했단다.” 자-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제가 그런 비상 상황에서도 여호와 이레의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고, 나의 사정과 형편을 알고 있고, 때를 따라 나를 도와준다는 겁니다. 물론 주님과 동행하면서 사시는 여러분들도 이런 일들을 많이 겪으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면 이런 데서 오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리마인드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면 행복하고, 주님과 떨어져 혼자 살면 불행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주님과 함께 살므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 지금도 주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주님과 늘 함께하므로 계속 행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많이 행복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 : 주님여 이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