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내 인생, 어찌할꼬?

날짜: 
2026/09/13
말씀: 
창27:30-45
말씀구절: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설교: 

믿는 사람이든 불신자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은 동일합니다. “내 인생이 꼬이지 않고 제발 평탄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성도들의 삶에도 어김없이 인생의 꼬인 실타래가 찾아옵니다.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치고, 생각지 못한 실패도 당하고, 엉뚱한 사고도 터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을 피 말리게 하는 ‘인간관계의 꼬임’이 우리를 덮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캘거리와 같은 좁은 이민 사회, 그리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야 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관계가 꼬이고 틀어지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이민 사회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이곳은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관계가 꼬이면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우울증이 찾아와 숨조차 쉬기 힘든 고립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가정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삭, 리브가, 야곱, 에서, 이 네 사람 모두 인생이 심하게 꼬였습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거룩한 가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꼬여 있습니다. 먼저 이 집안의 가장인 이삭을 보십시오. 쌍둥이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아내의 배속에서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즉 형 에서보다 동생 야곱이 더 뛰어나게 된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은 마마보이 같고, 기집애 같은 야곱보다 용맹하고 우람한 장남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가정의 모든 축복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기 뜻대로 안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장남 에서를 축복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속았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들어 눈이 멀고 영적 분별력마저 어두워진 틈을 타서 동생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모의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사실을 안 이삭은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아- 노년에 인생이 심하게 꼬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리브가를 보십시오. 엄마의 입장에서는 만날 사냥한다고 밖으로만 쏘다니는 장남 에서보다 집안에서 부엌일을 도와주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뭐- 그거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을 사랑하고, 어머니는 동생을 사랑하고, 오히려 균형이 맞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집안에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조용히 기도하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둘째 아들 야곱과 모의하여 인간적인 편법과 거짓말로 남편을 속이고 장남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형 에서가 축복을 빼앗기자 분노와 배신감에 사로잡혀 동생을 죽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분위기를 파악한 리브가가 부랴부랴 야곱을 자신의 오빠, 즉 야곱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시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가 며칠이면 풀릴 줄 알고 야곱에게 ‘며칠만 외삼촌 집에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리브가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 그것도 참으로 인생이 심하게 꼬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야곱의 입장에서도 그리운 어머니를 보지도 못하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참으로 통곡할 일입니다. 즉 한 집안의 가족 네 사람 모두가 자신의 욕심과 기교로 인생을 풀어보려 했으나, 결과는 더 깊게 인생이 꼬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장 놀라운 반전은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이 속아서 야곱에게 내린 축복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 과정은 속임수와 편법으로 얼룩졌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적인 삐걱거림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나중에야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려 했음을 깨닫고 야곱에게 내린 축복을 취소하지 않고 인정했습니다. 즉 자신의 고집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보다”, “내 실수가 너무 커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구나.” 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실수가 하나님의 계획보다 클 수 없고, 우리의 꼬인 인생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복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꼬여버린 이 가족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긴 세월의 맷돌 속에서 그들을 빚어 가시고, 결국 그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셨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자기가 속였던 것 이상으로 자신도 속임을 당하며 비로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매를 맞고 깨어났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인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고관절)가 위골되어(삐어서) 다리를 절뚝이며 살아야 해씁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그는 사기꾼 야곱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원한으로 가득 찼던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이셔서 두 형제가 눈물로 화해하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꼬인 매듭을 무작정 싹둑- 잘라서 내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인내하시며, 마침내 그 꼬인 매듭을 은혜로 풀어내시는 반전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펼쳐보면 의외로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꼬였던 인물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와 가족관계가 꼬인 거로 치면 요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배다른 형들로부터 지독한 미움과 시기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배다른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지고, 마침내 인신매매를 당하여 외국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외국 땅에서 노예로 지내며 10년간 충성을 다했더니 웬걸- 주인집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서 또 3년간 큰 고생을 했습니다.

“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인생이 이렇게 꼬이나?” 인간적인 마음이라면 그는 형들에 대한 복수심과 억울함, 하나님에 대한 원망, 심각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걸려 마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꼬여버린 수년에 걸친 절망의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과 계속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외국 땅에 머문 지 어언 13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자,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급에 찾아와 요셉을 보고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던진 이 한 마디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꼬인 인생을 푸는 성경 최고의 명언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20-21)

와- 이 말씀 진짜 저와 여러분이 본받아야 할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이 꼬였을 때, 요셉처럼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자신의 인생도 요셉처럼 심하게 꼬이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심히 억울합니까? 아직도 그 일을 떠올리면 분통이 가시질 않습니까? 이때 요셉처럼 이 고백을 해보십시오. 그냥 한 번만 고백하지 말고, 이 말씀이 나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의 이성조차 완벽히 설득하고, 나의 의지도 이 말씀에 순종할 정도로 깊이 묵상하고 계속 반복해 보십시오.

또한 성경에서 인생이 꼬인 대표적인 사람을 뽑으라면 역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가장 지독하게 꼬였던 인생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어머니인 마리아가 혼전 임신이라는 오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출생 자체가 꼬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다가 한 여관의 냄새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곳마저도 안전하지 못해 헤롯 대왕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부랴부랴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 요셉이 동생을 6명(혹은 그 이상)이나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살림에 목수 일을 하며 어머니와 함께 자기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본 동생들마저 형인 예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미쳤다’라는 소리를 하며 조롱했습니다. 또한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눅4:29).

그리고 3년간 가르친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 30냥과 맞바꿔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모함과 불법 재판을 받았으며, 가장 잔혹한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운명하셨습니다. 그것도 한창 젊을 때 33살의 나이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처절하고 꼬인 인생의 순간들을 세상적인 방식인 분노와 복수, 좌절과 회피함으로 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꼬인 인생을 푸는 해결법은 오늘 우리에게 완전한 정답을 제시합니다. 그 해결법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1. 겟세마네 해결법

억울하게 잡히시기 직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소연하거나 무력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과 독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며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쏟아놓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과의 대화가 막히고, 상황이 절망으로 계속 치달을 때면 사람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억울함을 하나님께 통곡과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 인생이 심히 꼬이고 억울할 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비통함을 쏟아내는 기도가 꼬인 인생을 푸는 첫 단추임입니다.

2. 십자가의 해결법

인생이 더욱 꼬이는 이유는 내 계산, 내 자존심, 내 뜻대로 상황이 풀어져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꼬인 인생의 실타래는 내 뜻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푸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모욕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실 때, 예수님이 던지신 첫 마디는 복수의 다짐이 아니라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은 나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꼬이게 만든 사람들을 향해 ‘악한 원수’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사과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십자가에서 용서를 선포함으로 나를 짓누르는 상처와 미움의 사슬을 즉시 잘라내셨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십자가는 완벽한 실패이자 꼬일 대로 꼬인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라는 극단적인 꼬임을 통해 ’인류 구원과 부활‘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지금 네 눈앞에 보이는 꼬여버린 현상이 끝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인생의 꼬임은 당장은 아프지만, 결국 부활의 영광과 축복으로 바꾸시는 거룩한 과정(Process)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꼬인 인생의 해결 공식은 명확합니다. 사람을 향해 싸우지 마십시오. 겟세마네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신뢰하십시오.

또한 상처 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즉시 용서함으로 영적 자유를 얻으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뒤에 반드시 찾아올 부활의 날을 기대하며 참고 견뎌내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이 길을 따라갈 때, 우리의 삶에 엉켜있는 모든 꼬인 실타래가 은혜와 치유의 역사로 풀어지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꼬여버린 저와 여러분의 인생과 모든 관계가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의 작품으로 풀려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얻으시고 자유함을 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꼬인 내 인생, 때로는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풀어나가게 하시옵소서. 인내할 줄 아는 마음도 주시옵소서. 결국, 너도나도 모두 행복해지며, 하나님은 더욱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