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37-38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여러분, 혹시 ‘황금률’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황금이 다른 모든 금속보다 우월한 것처럼 여러 가지 다른 규범보다 우월한 규범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황금률은 마태복음 7장 12절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 이 황금률은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윤리원칙입니다. 그리고 황금률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많은 민족들의 도덕적, 종교적인 교훈들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즉 황금률은 온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할 도덕적 규범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 황금률을 지켜야 상호간에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러한 황금률을 좀더 세밀히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37절에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을 마태복음 7장 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헤아린다’는 말은 헬라어로 ‘메트로’란 단어인데, 그 뜻은 곡물 등을 넣고 측량하는 되나 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장사꾼이 손님을 속이려고 작은 되나 말을 사용하여 손님에게 불이익을 끼치면 나중에 자신도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에게 상처와 해를 끼치면 자신도 상처와 해를 당하게 되고, 남을 비판하면 자신도 비판을 당하게 되고, 반면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 자신도 이해 받고 용서받고 사랑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는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즉 인생은 자기가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6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보응 받는 인생, 이것은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법칙입니다. 남을 비판하고도 자기 자신은 비판을 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남을 정죄하고도 자기 자신은 정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간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오게 됩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은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다간 땅을 치며 통곡하게 됩니다.
자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 주어야 자신도 배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늘의 본문 3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즉 우리 자신들이 어떤 잣대를 가지고 이웃을 대하였는가에 따라 똑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남을 비판하는 잣대를 가지고 보는 사람은 자신도 그러한 잣대로 평가를 당하게 되고, 남을 사랑과 용서의 잣대로 대한 자는 자신도 사랑과 용서의 보응을 되돌려 받게 됩니다.
물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그 사람을 비판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더 나아가 나를 중상모략을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큰 죄와 허물을 용서했는데 그 사람은 나의 작은 허물조차 용서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죽이려고 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아낌없이 좋은 것을 주어도 그 사람은 내게 조금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로 목사님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성경 구절은 세상의 이치와 맞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과연 이 성경 구절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단순한 상황윤리에 불과합니까?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100% 절대 진리가 아닌 상황에 따라서 적용이 되기도 하고 적용이 되지 않는 80-90%
정도만 맞는 불완전한 인간의 가르침에 불과합니까? 오늘날 이 말씀에 입각하여 살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결코 현명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 말씀을 단지 현재의 상황만 생각하거나, 짧은 시간과 협소한 장소에 국한시키고, 혹은 인간 세계만 바라보면 그렇게 생각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비판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나를 비판하고, 나는 그를 사랑해도 그는 나를 미워하고, 나는 그에게 아낌없이 주어도 그는 나에게 도무지 주려고 하지 않는 일이 이 세상에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즉 우리의 행한 것에 그대로 갚아주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나의 선을 악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선을 반드시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그것도 30배 60배 100배의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처럼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주십니다.
고로 남에게 선을 베풀 때 사람을 보고 하면 자칫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밥을 열 끼 대접했는데 왜 저 사람은 나에게 밥을 한 끼도 대접하지 않는가 하고 섭섭함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는데 왜 저 사람은 나를 돕기는커녕 나를 자꾸 힘들게 하는 것일까 하고 원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로 우리는 이 법칙 즉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법칙을 적용할 때 인간이 아닌 반드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만 바라보거나, 현재의 상황만 바라보면 이 법칙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는 불완전한 진리가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 이 법칙을 나의 삶에 적용시키고, 이 법칙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법칙대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성경의 법칙을 좇아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면
누가 칭찬해 줍니까? 물론 목사님이 칭찬해 주시겠지요. 그러나 때로는 목사님이 알아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도리어 목사님이 자신을 무시하면 어떡합니까? “에이, 성경에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네! 열심히 하나님 일 해보았자 목사님이 알아주지도 않고 말짱 도루묵이네!” 하고 하나님의 일을 때려치웁니까?
노우,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나의 선행을 갚아주시고 나의 헌신을 갚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나의 선행을 갚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신다.”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욱 헌신하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열두 번도 더 넘어지고 열두 번도 더 시험에 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선행은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교회는 선교사님 다섯 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기에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교회에도 매달 들어가야 할 물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거리 교회 연합으로 지원하는 북한 선교사님에게 선교비를 전달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교회 재정과 형편상 큰 부담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캘거리에 있는 다른 교회보다 선교비를 더 드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바보 같은 일을 하는 것일까요?
노우, 아닙니다. 그러한 선행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전파는 예수님의 최대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북한 지역에 가서 복음은 전하지 못해도, 우리를 대신해 그곳에서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을 물질과 기도로 돕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헤아려주십니다.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하나님이 아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의 행위에 그대로 갚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혹 당신이 이웃에게 선을 행하셨습니까? 그러나 그 이웃이 당신의 선을 악으로 갚았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선을 반드시 되돌려 줍니다. 그것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웃에게 냉수 한 컵 대접한 상도 결코 잊지 않고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오해를 당하고 욕을 먹기도 합니다. 부당한 대우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반드시 좋은 것으로 후하게 갚아주십니다. 정확하게 갚아주십니다. 공평하게 갚아주십니다. 고로 이웃을 대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을 행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되돌려 주십니다. 기왕이면 풍성한 됫박으로 좋은 것을 많이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풍성한 됫박으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되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헌신하거나 우리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때, 이것저것 따지면서 인색하게 헤아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인색하게 헤아리지 말고, 그렇게 좁은 마음으로 따지지 말고, 정성을 다해서 도와주고, 또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우리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옛날 어떤 나라에 한 임금님이 변장을 하고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한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그 거지는 변장한 임금님에게 와서 무엇인가 구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임금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얻어먹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먼저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 대가로 더 좋은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거지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그의 주머니에는 구걸해서 얻은 옥수수 알갱이가 한 움큼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 주려고 하니까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부스럭 부스럭거리다가 다섯 알을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다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변장한 임금님에게 주었습니다. 임금님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내었습니다. 그 속에는 조그마한 금덩이들이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가운데서 자기가 받은 강냉이 알갱이 수만큼 금덩이를 끄집어내어서 그것을 거지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 내게 주었으니까 나도 약속대로 이것을 당신에게 줍니다."
거지는 임금님에게 강냉이를 두었는데 임금님은 거지에게 더 좋은 금덩이를 주었습니다. 물론 거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 얼마나 원통한 생각이 들었겠지 않습니까? "아이고, 이까짓 강냉이! 다 주었더라면 저 금주머니를 통째로 내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러분, 우리가 도움을 베풀 때, 친절을 베풀 때, 사랑을 베풀 때, 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베풀 때, 이것저것 헤아리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넉넉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오늘은 본문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 혹시 당신에게 사랑이 부족합니까? 더 많은 사랑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풍성한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혹시 시간이 부족합니까?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주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시간을 주십니다. 지금 당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먼저 하나님과 이웃에게 드려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풍성하게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오늘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여기 캐나다에서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성취되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이 외국 땅에서 후히 되고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는 축복에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날짜:
200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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