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2:15-17 세상을 사랑치 말라
“아니 목사님, 오늘의 설교 제목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예 다름이 아니라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왜 오늘의 본문은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도 이처럼 사랑한 세상을 우리도 이처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신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해줍니다. “형제님,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은 세상의 죄악을 사랑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죄악에 사로잡혀 고생하고 신음하고 마침내 멸망에 빠지는 죄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죄악에서 죄인들을 건져내려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을 믿는 백성들마다 의의 나라인 천국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악된 세상을 끊지 못하고 또다시 계속하여 죄의 습성을 끼고 생활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종의 타락한 크리스천입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죄악이 너무도 가까이, 그리고 너무도 세게 다가와서 세상의 죄악에 적당히 파묻혀 사는 것이 편한런지도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죄악을 이기지 못하고 그 죄악에 파묻히면 결국 우리 크리스천은 죽고 맙니다. 교회는 물에 떠 있는 배와도 같습니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뜨지 못하지만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배는 파선하고 맙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죄악이 들어오면 신앙은 파선하고 맙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먼저 세상의 죄악의 물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세상의 죄악을 다시 사랑하면
하나님은 섭섭해 하고 슬퍼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자꾸 세상의 죄악에 물들면 성령님의 은사가 소멸됩니다. 기도가 막힙니다. 신앙의 열정이 식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행복이 사라지고 맙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6)
여러분,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애급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으로 노예로 팔려가지만 그곳에서 아주 성실히 일하므로 주인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요셉이 하는 일들을 모두 형통케 하시므로 요셉은 노예의 신분으로 보디발 장군의 모든 재산을 다스리는 가정총무가 되어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한창 잘나가는 요셉에게 세상이 시험을 합니다.
다름 아닌 이성의 시험이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마나님이 요셉의 용모가 준수한 지라, 요즘 말로 하면 요셉은 얼짱이요 몸짱이요 꽃미남이었는지라 그를 연애하여 날마다 눈짓합니다. 영어로 하면 한쪽 눈을 감고 애꾸눈처럼 하는 것 있잖아요? 무어라고 그러지요? 예- 윙크를 징그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 윙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디 가서 차나 한 잔 같이 하자는 것입니까? 아니면 있다가 바둑이나 한 게임 같이 두자는 것입니까? 아니면 있다가 컴퓨터 채팅이나 같이 하자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동침하기를 청하는 “으휴- 징그러워!” 하는 윙크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청년 요셉이 얼마나 그 주인 마나님을 피해 다녔겠습니까? 혹시 마나님이 저기서 오면 요셉은 다른 길로 미꾸라지처럼 요리저리 피해 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길이 한쪽 밖에 없으면 아마 눈을 땅으로 깔던지, 아니면 “어허- 날씨가 좋네!”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어찌하든지 주인 마나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 마나님도 끈질겼습니다. 그녀도 당대에 인물이 잘생긴 얼짱이요 몸짱이었는데 별것도 아닌 노예 요셉에게 아무리 데이트 신청을 해도 요셉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주 냉정하게 자꾸 차이다보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녀는 결심합니다. “내 반드시 너를....” 그리고 그녀는 요셉에게 날마다 칭얼댑니다. 젖 달라고 칭얼대는 것이 아닙니다. 안마 좀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동침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하여 오늘도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나름대로 우리의 약점을 노려서 공격하려고 합니다. 정욕이 불타는 사람에게는 이성이란 약점으로 공격합니다. 돈에 약합니까? 반드시 돈으로 유혹합니다. 명예에 약합니까? 반드시 명예로 유혹합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약점이 없는 것이 약점입니까? 교만으로 유혹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이 지은 최고의 걸작품이었습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와에게 다가와 유혹합니다. “하와야, 너 저기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보았지 않느냐? 그것 먹으면 너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단다. 먹어봐- 끝내줘!” 이때 하와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하며 사탄과 관계를 빨리 끊었어야 하는데 하와는 사탄의 말장난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 보니 진짜 눈이 밝아졌는데 이상하게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신의 모습이 괜히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 자신의 몸을 가립니다. 하와를 유혹하는 데에 성공한 사탄은 더 이상 아담을 유혹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와의 말을 너무도 잘 듣는 남편이기에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니 “안되는데...” 하면서 꼴깍 먹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남편을 통하여, 아내를 통하여, 혹은 자녀를 통하여,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를 통하여 나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그 유혹에 넘어가 같이 죄를 짓고 나면 같이 사망에 빠지고 맙니다. 그때서야 후회하면서 “하나님, 재가 그랬데요. 나는 재 말만 들은 것 밖에 잘못이 없어요.” 하고 변명한들 그대의 이름은 어리석은 자여- 영어로 말하면 이디어트(idiot)! 같이 따라합시다.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다시 장면이 바뀝니다. 요셉은 동침하자고 칭얼대는 주인 마나님에게 단호하게 말을 합니다. “마나님, 주인님이 가정 제반 소유를 다 내 손에 위임하셨지만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주인님의 아내가 아니십니까? 어찌 내가 당신과 동침하여 하나님께 큰 악을 저지르겠습니까?“ 그러나 마나님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보디발 장군이 출장을 갔었는데 그때를 이용하여 마나님이 육탄돌격을 해대는 것입니다. 요셉의 옷을 잡고 ”요셉아- 나와 동침하자!“ 하고 졸라댑니다.
요셉은 화들짝 놀라서 옷을 그녀의 손에 버리고 도망을 갑니다. 그러자 마나님이 외칩니다. “아이고, 거기 누구 없느냐? 이 히브리 종 요셉이 나를 강간하려고 한다.” 이런 비명 소리를 듣고 집 사람들이 달려와 보니 진짜 요셉은 벌거벗고 도망을 가고 있으며, 요셉의 옷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락없이 현행범으로 잡히게 되고 말았습니다. 출장 간 보디발 장군이 돌아오자 요셉은 괘씸죄로 몰려 수없이 얻어터지고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는 동안 요셉이 혹시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괜히 잘났다고 뻐기다가 이렇게 실컷 얻어터지고, 옥살이까지 하고 엉엉... 내 팔자야! 그때 적당히 타협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건데... 에이, 너 좋고 나 좋고 서로 좋은 일이었는데...이 바보야 쪼다야!” 요셉은 이런 식으로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의를 추구하다가 얻어터지고 감옥에 갇힌 것이 낫지 남의 여자와 간음을 하는 죄를 저질러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기를 원치 아니했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는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을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더욱이 한국을 떠나 이곳 외국 땅에 온 청년유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스승님, 혹은 친척 분들이나 이웃 분들이 없으므로 청년의 정욕에 빠져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청년 여러분들이여, 사랑이란 달콤한 명함을 내밀고 다가오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같이 죄악을 멀리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청년들에게 반드시 좋은 배필을 주십니다. 쓸데없이 나는 이 외국 땅에서도 연애도 못한다고 초조해하거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곳 살기 좋은 캐나다 앨버타 캘거리에도 사탄은 존재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세상의 죄악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너무도 달콤하고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 미끼를 물면 안됩니다. 귀중한 영혼이 도적질 당하고 맙니다. 특히 시간이 많을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나라가 서고 평안이 다가오자 그만 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옥상 위에서 보니 한 젊은 여자가 은은한 달빛에 목욕을 합니다. 이때 다윗이 요셉처럼 “으휴!” 하고 도망을 가야 되는데 자기가 무슨 하나님이라고 “어허- 보기에 좋았더라!" 하면서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봅니까? 그렇게 여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결국 성인군자인 다윗도 선악과를 뚫어져라 쳐다 본 하와가 결국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그 여인을 탐하게 되고 동침을 하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윗의 가정에는 재미없는 일들이 터지고 맙니다. 집안의 배 다른 자녀들끼리 강간사건과 살인사건이 터집니다. 자기의 큰 아들이 자기를 반역하여 다윗은 백발을 휘날리며 처량한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차라리 다윗이 전쟁터에 있었더라면 죄악을 짓지 않았을 텐데... 차라리 다윗에게 다급한 문제가 있었더라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고 죄악을 짓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그의 평안함과 안락함이 그를 죄짓는데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많을수록, 평안할수록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평안하다고 시간이 많다고 세상을 쫒아 가다보면 결국 기도와 말씀을 멀리하게 되고, 교회는 다니지만 마당만 밟게 되고, 결국엔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파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미워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버리시겠습니까? 이 일에 크리스천은 단호히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과 하나님사이에서 방황하며 뜨뜻미지근한 사람에게는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기 보단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을 품고 이 땅을 정복해 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을 사랑치 말라
날짜:
2006/05/07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