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함께 가자.

날짜: 
2007/03/18
설교: 

아2:10-13 일어나 함께 가자.
바이올린을 만드는 명장들은 일부러 차가운 북풍을 맞은 나무를 재료로 선택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진 북풍과 추운 겨울밤을 견뎌낸 나무가 보통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따뜻한 봄날보다 차가운 겨울을 만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1. 겨울은 우리를 성숙시킨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할까요? 일반적으로 아무 일이 없을 때 기도합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합니까? 물론 이 자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늘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시련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도하는 기회를 부여해줍니다.
또 한 가지 질문할까요? 일이 잘 풀릴 때, 겸손해집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겸손해집니까? 일이 잘 풀릴 때도 겸손한 분들은 진짜 겸손한 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이 잘 풀릴 때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겸손해집니다. 그러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겸손하게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즉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물설고 낯 설은 가나안 땅에서 고통스러운 이민생활을 하다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일만큼 사기꾼이었던 야곱은 20년 동안 객지에서 힘들고 어려운 양치기를 하다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의 종살이와 옥살이 끝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고 난 후 수백만을 이끄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은 한결같이 고통과 시련의 찬 바람을 통과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19편 71절에서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밤을 통해 새롭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시련의 찬바람이 우리 인생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2, 봄날은 반드시 온다.
과거 한때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네기에 대한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네기는 평생 동안 그의 사무실 한 가운데 벽에 커다란 그림 하나를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골동품과 같은 값비싼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 그림은 썰물(Low Tide) 때에 바닷물에 밀려서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아름답기는커녕,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씌어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그 그림을 평생 동안 사무실에 걸어놓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 그림에 대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가난하고 못살던 청년 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러 다닐 때,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 그림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가 그림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해서 그 노인으로부터 그 그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그 그림을 평생 동안 소중하게 보관했고, 그 그림 밑에 쓰여 있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닷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닷물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밀물(High Tide)‘과 ’썰물(Low Tide)‘이라고 부릅니다.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많은 돈으로도, 엄청난 권력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로도 밀물과 썰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밀물 때가 있으면 반드시 썰물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썰물 때가 있으면, 반드시 밀물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낮과 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이 되어도 지구가 돌면서 생기는 남과 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계절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막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적도 부군의 무더운 지역이나 남극과 북극 근처의 추운 지역과 같은 곳에서는 사계절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세상 어느 누구도 변화하는 계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지나면 반드시 무더운 여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반드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지나면 반드시 추운 겨울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법칙이 우리 인생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에도 따뜻한 바람 부는 봄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의 인생이 겨울날씨처럼 찬 바람 부는 인생일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날이 반드시 올 줄로 믿습니다. 지금은 소망이 없는 겨울 날씨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소망이 넘치는 봄날이 분명히 올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혹독한 겨울과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닥친 어려움들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인생의 디딤돌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봄날은 반드시 옵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힘내세요. 봄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3대 왕이었던 솔로몬 왕이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보면 이 아가서를 ‘노래 중의 노래’라는 의미의 ‘Song of Songs'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노래들 중에 최고의 노래‘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는 솔로몬 왕과 시골 처녀 술람미 사이에 있었던 사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이 목동의 복장을 한 채 한 포도원을 방문하였다가 거기에서 새까맣게 햇볕에 탄 술람미 여인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솔로몬은 그녀를 예루살렘 궁궐로 데려갈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난 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결국 가마를 보내 술람미 여인을 예루살렘 궁궐로 불러들인 후, 자기의 왕비로 맞이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가서를 읽다보면 남여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아가서 2장 2절을 보면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눈에는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검게 보이지 않고 백합화처럼 하얗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결혼하신 남성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내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다른 여인들은 가시나무처럼 보이는 반면, 여러분들의 아내는 백합화처럼 보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다른 여인들은 백합화처럼 보이는데, 여러분들의 아내는 가시나무처럼 보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입을 열어 대답을 하면, 당장 집에 가서 부부싸움이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속으로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비록 피부가 검지만, 그녀를 향하여 ’백합화와 같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가서에 나타난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은 단지 남여간의 사랑만을 묘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은커녕 오히려 단점 투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3.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솔로몬은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Arise my darling, my beautiful one, and come with me)."(10절) 한 미디로 말하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기에 있지 말고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부터 13절을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11절부터 13절을 보겠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우내 내리던 비도 그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그 속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떠났던 각종 새들이 다시 돌아올 때가 되어 어느새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화과가 맺히기 시작하고 포도나무가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권면을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권면하는 이 말씀은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말씀으로서 우리 각자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김목사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김집사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형제야 박자매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함께’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이 ”애야, 일어나 함께 가자“하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래요. 주님, 일어나 같이 가십시다.“하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일어나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편과 사랑하는 아내가 일어나 함께 가야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자녀가 함께 가야합니다. 친구들과 교우들이 일어나 함께 가야합니다. 그런데 일어나서 함께 가야하는데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미움, 시기, 질투, 고집, 교만 등이 함께 가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 가도록 미움, 고집, 교만 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남편은 아내를 향하여 “여보, 우리 일어나서 함께 갑시다!”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친구 간에도, 교우간에도 “이제 봄이 왔으니 일어나 함께 갑시다.”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합니다. 샘물이 마구 솟아오르듯이, 용수철이 튀어오르듯이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의 기운들이 마구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계절인 봄날에 다시 한번 개구리처럼 한 단계 도약(Jump)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새봄을 맞이해서 지나간 과거는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절로 삼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겨우내 묵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낙심의 자리, 절망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주위에 있는 아내, 남편, 친구, 부모님 등과 함께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