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4:7-11 사랑 받고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어린 자녀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엄마,(아빠),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났어? 나는 내가 태어난 이유를 잘 모르겠어? 엄마(아빠)는 그 이유를 알아?” 이 질문에 여러분들이 부모님이라면 뭐라고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쪼그만 것이 그런 것까지 물어보니? 더 이상 묻지 마! 엄마도 잘 몰라.”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태어난 이유가 어디 따로 있니? 그냥 태어난 거야.”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표현한 시가 있어 소개를 드립니다. 제목은 <당신께 드리는 생일선물입니다>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이 한마디 당신에게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미역국을 먹으며 예쁘게 장식된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그리고 더 귀중한 또 한마디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당신이 사랑 받은 만큼
그보다 더 많이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
당신이 태어나서 오늘까지
또 영원히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
그 중에 당신을 섭섭하게 한 사람들까지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
이 한마디 진정
당신께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1.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대학가에 한 때 이러한 유머가 있었습니다. 잘 생긴 남학생과 조금 생긴 여학생이 함께 지나가면 사람들이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여자네 아버지가 재벌인가 봐!” 반대로 잘 생긴 여학생과 조금 생긴 남학생이 함께 지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쟤, 고시 패스했나 봐!” 또 조금 생긴 여학생과 조금 생긴 남학생이 함께 지나가면 뭐라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쟤네들 진짜로 사랑하나 봐!”
여러분, 이 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사랑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돈 많은 재벌이든, 하늘의 별따기라는 고시를 패스했건, 얼굴이 예뻐서건,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이건,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받을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구절 상반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다른 곳에는 사랑이 없다. 여기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사랑이 없고, 십자가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희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 채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여성들이 주로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다녔지만, 요즈음에는 남성들도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다닙니다. 운동선수들 중에도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 의미도 모른 채, 십자가를 단지 부적처럼 차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목에는 버젓이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손목에는 불교도들이 차는 염주를 차고 다니기도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고사 지내기 위해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돼지 머리에 넙죽넙죽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무슨 표시입니까? 십자가에 무슨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십자가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십자가에는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관광버스가 손님을 싣고 관광지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 지쳐 잠에 빠져 있었는데, 마지막 내리막길에 들어선 순간, 운전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당황한 운전사의 눈앞에 경사가 급한 다섯 개의 급커브 길이 보였습니다.
버스에 점점 가속이 붙자, 잠을 자던 승객들이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 잠에서 깨어나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게 커브 길을 하나, 둘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커브 길을 통과하자, 승객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좋아했습니다. 눈앞에 마을이 보였습니다. 이제 마을 모퉁이에 버스가 멈추어 서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마을 입구의 길 한 가운데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울리며 피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놀라 피하는데, 유독 한 아이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승객들을 살려야 할지 그 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그 아이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간신히 건너편 언덕에 멈추어 섰습니다. 운전사는 차에서 뛰어내려 그 아이에게 뛰어 갔습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품에 안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살인자야, 살인자!”하며 운전사를 향해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어느 젊은 청년이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만둬요. 저 아이는 바로 운전사의 아들이란 말이에요.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친 거예요. 저 분은 살인자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장소가 바로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입니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위한 액세서리로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사랑 한단다’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로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하며 10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말씀에서 놓쳐서는 안 될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는 구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편지 한 장 쓴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그토록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사랑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사랑하사’라는 말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말씀하신 ’사랑하사’와 같은 ‘에가페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 달리, 세월이 흘러도 환경이 변하여도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악 투성이였던 우리를 과거에도 사랑하셨고,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고, 내일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이 아가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시므로 자기의 사랑을 이미 확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혹시 살면서 인간의 변질된 사랑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지는 않습니까? 그로 인하여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마음이 우울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비록 가문이 좋지 못해도, 비록 키가 작다 할지라도, 어떤 열악한 모습,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누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호화 여객선을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서 드디어 배 삯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비싼 배 삯을 지불하고 나서 보니 자기 수중에 여행 중에 사용할 여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행 기간 동안 먹을 치즈, 과자 부스러기, 캔 몇 개 등을 준비해서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배 안에 있는 호화 뷔페식당에서 고급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즐길 때, 그는 자기 선실에 들어가서 자기가 준비해 온 과자 부스러기와 치즈 등을 아껴가면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 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배고픔도 참았습니다. 드디어 모든 여행을 마치고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일일이 배 아래에서 승객들을 배웅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손님, 즐거운 여행이 되셨는지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절말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돈이 좀 모자라서 여행기간 내내 치즈 조각, 과자 부스러기, 캔 몇 개로 식사를 하느라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 말은 들은 선장은 깜짝 놀라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여행하는 동안 손님의 배 삯에 모든 음식 요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티켓에는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풍성한 사랑과 축복과 행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2.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왜 부르셨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을 받고, 그 풍성한 사랑을 누리며,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여기서 ‘마땅하도다’라고 했는데,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니까 “We ought to love”라고 되어 있는데, ‘ought’라는 단어는 ‘must’라는 조동사와 같은 강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있을 때는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경험한 크리스천들에게는 마땅히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방울도 나누어주지 않고 움키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하게 사랑을 베풀어주셨는데 계속 달라고만 하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부탁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을 전해줄 사명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사랑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한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시 한번 조금 전의 시를 들려주면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이 한마디 당신에게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미역국을 먹으며 예쁘게 장식된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그리고 더 귀중한 또 한마디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당신이 사랑 받은 만큼
그보다 더 많이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
당신이 태어나서 오늘까지
또 영원히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
그 중에 당신을 섭섭하게 한 사람들까지
"당신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 "
이 한마디 진정
당신께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