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좋아하시면

날짜: 
2008/02/23
설교: 

삼상15:22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를 키울 때 부모는 자기 자녀가 공부를 아주 잘하여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 같은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지만, 그 자녀는 부모와 다르게 공부를 싫어하고 스포츠나 미술, 혹은 음악 같은 예체능계 분야를 좋아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데 남이 싫어하면 거기에는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이 심하면 다툼이 나고, 그러다 보면 같이 있기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일들을 공통분모로 하는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듭니다. 여기 캘거리에도 보면 축구 동호회, 야구 동호회, 등산 동호회... 등 많은 동호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의 경우에는 한달에 한 번 혹은 매주 모여 운동을 합니다. 요즈음은 겨울철이라 저희 교회에서 배드민턴을 합니다. 이전에는 제가 배드민턴의 절대 지존이었었는데 이제는 실력 평준화가 되어 아슬아슬한 승부가 되곤 합니다. 거의 모든 담임 목사님들이 운동을 참 좋아하다 보니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기에 경쟁으로 인한 서로 간의 긴장이 있을 수 있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같이 하다 보니 오히려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그 사람의 장래도 좋아질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그 사람의 장래는 나빠질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고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아마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한 두 가지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떤 대답을 할까요?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할까요?”
아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떠들지 않고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친구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엄마 아빠 말씀 잘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러나 가끔 보면 이렇게 말하는 엉뚱한 어린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는 어린이도 가끔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욕하는 것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도둑질하는 것을 좋아해요.” “하나님은 싸우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어린이들의 내면에는 반항심이 있어서 그렇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고 있기에 그런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시면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십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을 좋아하면 피가 터지도록 싸워보십시오. 천국이 저들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양심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계시해 주셨습니다. 특히 말세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무엇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시고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만 예배에 가기가 참 싫었습니다. 더구나 주일 아침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생중계를 하면 예배는 뒷전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성령 체험을 하고 난 후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예배가 좋아지고, 기도가 좋아지고, 성경 읽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밤에는 매일 철야 예배도 다니고, 낮에는 서울에 있는 삼각산에 가서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체험을 하기 전에는 담배를 꽤 피웠었는데 성령 체험을 하니까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 피우던 것도 하루아침에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전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도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 마음 속에는 때때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보다 타락한 모습의 것을 하라고 유혹도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의 피!”를 외치며 “물러가라.” 하고 처절한 기도도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마 이곳 캐나다에 오시기 전에 이런 기도를 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족이 어디 가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캐나다입니까? 한국입니까? 아니면 어디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족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응답하시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족들이 이곳 캐나다에서 살기를 원하시면 여기 캐나다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어떤 가족이 여기 캐나다에 이민을 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가족의 아내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그곳에 가서 어떻게 살래?” 물론 캐나다가 한국보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되어 있고, 공기도 좋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캐나다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할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요즘 앨버타 주의 경기가 좋아서 다른 캐나다 도시보다 더 선호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곳도 천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의 좋은 경기가 언젠가 나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곳도 외국이기에 고향 떠난 나그네 설움이 있는 곳이요, 이곳도 살기가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족들 중에 남편은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고, 아내나 자녀들은 캐나다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과연 이 식구들은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에서 살고, 아내와 자녀들은 역시 자기들이 좋아하는 캐나다에서 산다면 이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가족 식구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장소가 다를 때에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 우리 가정은요 남편인 제가 왕입니다. 제가 가족 식구들에게 ‘야, 모두 나를 따르라. 우리 가족은 내가 좋아하는 캐나다에서 산다.’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목사님, 우리 가정은요 제 아내가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아내가 ‘우리는 한국에서 산다.’ 하면 우리 가족은 모두 한국에서 살아야 하고요, ‘우리는 캐나다에서 산다.’ 하면 우리 모든 식구들은 캐나다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모든 결정은 제 아내가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족 식구들끼리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의견이 잘 맞지 않을 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오늘의 정답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가족 식구들에게 “너희들은 여기서 살아라.” 하고 말씀하시는 그 장소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족 식구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누구는 여기에서 살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저기에서 살기를 좋아하는데, 하나님은 우리 가족 식구가 여기에서 살기를 좋아하신다. 그러니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이 장소에서 살도록 하자.”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야만인들이 사는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갈 것인가 유럽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때 바울은 주저함 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유럽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따라 산다는 것은 후회 없이 인생을 살 수 있는 인생의 성공 비결이요, 행복 비결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살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나요? 혹시 이 물음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주저주저 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곳에다가 인생의 채널을 맞추십시오.
이곳 캐나다에 와서 교회를 정할 때에도 이런 법칙이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교회보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가라고 하는 교회에 가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결혼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자보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안좋은데 인간이 보기에 좋아하는 것을 좇아가면 결과는 고통입니다.
선악과의 경우를 보십시오. 이브가 보니까 선악과는 참 좋습니다.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보기에도 좋고, 더구나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습니다. 과연 이브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어도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갔더라면 인류는 에덴동산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꾐에 빠져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좇다보니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 인간이 극도로 타락하던 시절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배우자를 택하여 결혼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의 쾌락에 따라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노아의 시대는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진짜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이곳 캐나다 땅까지 왔습니다.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곳 타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행복하게 하고, 이웃들도 행복하게 하며, 우리들도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참으로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여러분, 이 유명한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짐승까지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뒤에 처진 이스라엘의 노약자들을 괴롭힌 족속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질이 나쁜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언젠가 손을 보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제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다고 아말렉 사람들의 살찐 짐승을 가지고 왔습니다. 물론 그렇게 짐승을 가져온 데에는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을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이 어찌 짐승의 소리가 들립니까?” 그러자 사울왕이 대답합니다. “아- 이 짐승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바로 이 유명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방법대로 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런지 참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괴로움 때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8:24)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말세에 사는 우리들은 잘 순종하지 않습니다. 말세에는 순종의 영보다 거역의 영이 세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거역하고, 학생은 선생을 거역하고, 백성들은 지도자를 거역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거역하는 것을 똑똑하다고 하며 그 길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에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맞추기를 원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한 어린이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무얼 원하는지 다 아시는데 왜 기도를 해야 하나요? 그래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기도할게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