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지라. 도로 찾으리라.

날짜: 
2008/04/21
설교: 

전11:1-2 던지라. 도로 찾으리라.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11:1-2) 이 말씀은 성경 말씀 중에서 가장 해석하기 힘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이 말씀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심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솔로몬은 애급을 잘 알고 있었던 왕입니다. 나일 강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이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나일 강은 홍수 철이면 상류로부터 물이 세차게 흐르면서 흙들을 날라 쌓아서 하류에다가 비옥한 옥토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 나일 강에 씨를 던지면 나중에 그 비옥한 나일 강의 삼각주 옥토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물 위에 식물을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없어지는 것 같지만 엄청난 소득을 올렸습니다.
오늘의 본문 중 ‘던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라흐(Shalach)’라고 합니다. 이는 씨를 심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던져 버린다.’라는 의미입니다. 낭비같이 보이는 말입니다. 도저히 거둘 가망성이 없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식물을 물 위로 던지면 반드시 도로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분이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1. 나쁜 땅이라도 던져라.
2. 좋지 못한 계절이라도 던져라.
3. 내게는 지금 당장은 희생이 되더라도 던져라.
4. 거두는 데 세월이 오래 걸릴 지라도 던져라.
5. 계산적이고 근시안적인 사람들이 비웃을 지라도 던져라.
6. 보상이나 칭찬받을 만한 가능성이 없어도 던져라.
7. 깨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아도 던져라.
8. 계속 실패하며 소득이 없을 지라도 던져라.
여러분, 물 위에 식물을 던지면 무모한 것 같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실히 우리들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던지면 도로 찾을 수 있을까요?
1. 기도
우리가 기도하면 허공을 치는 것 같고,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도로 찾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인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400년 간 종살이 할 때 태어났습니다. 다행스럽게 궁중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40살에 민족을 돌아볼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모세는 민족을 해방시키는 인물이 되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3)
모세는 40살의 나이에 그렇게 기도하고 궁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때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애급 사람을 주먹으로 쳤더니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그 시체를 모래 속에 파묻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그 장소에 또 나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왜 같은 민족끼리 싸우느냐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모세에게 말합니다. “네가 어제는 애급인을 죽이더니 오늘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모세는 마음이 덜컹했습니다. 자기가 애급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애급 왕이 자기의 정적인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급히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40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모세의 나이가 80살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40살에 하였던 기도를 하나님은 40년 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민족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면 물에 던져 버리는 것 같아도 도로 거두게 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
여러분, 일단 기도하여 놓기만 했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저희 어머님 권사님이 이전에 이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은 빌딩을 주셔서 월세를 받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물질을 나누어주며 베풀어주며 전도하면서 살게 해주세요.”
저희 가족 식구들은 그 기도를 들으면서 웃었습니다. 당시 우리의 환경으로 도저히 그 기도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핀잔도 주었습니다. “에이, 욕심도 참 많네!” 그런데 그런 기도가 나중에 신기하게 진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물질로 나누어주며 베풀어주며 전도하면서 참으로 풍족하게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기도 같아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집 사람에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기도를 해 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가능성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가 식물을 물에 던지면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도로 찾을 가망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고 말씀합니다. 기도도 처음 할 때에는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여러 날 후에 그 기도는 응답이 됩니다.
2. 헌금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물 위에 던지는 것 같습니다.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까지 와서 힘들게 돈을 벌었는데 그것을 헌금으로 많은 액수를 드리면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드리고 나면 나는 무엇을 먹고 사나?” 하고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께 드린 헌금은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성경에 보면 30배 60배 100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려줄 때에 그렇게 풍성하게 돌려줍니다. 그래서 이런 체험을 한 분들은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이곳 캐나다 땅에까지 와서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돈이 많아서 하나님을 떠나며 사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또한 하나님께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고 여유롭고 풍성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물질을 물에 던져 버리십시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질을 찾을 때에는 입이 크게 벌어지도록 많이 찾게 됩니다.
3. 선행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을 도로 다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갔을 때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보았습니다. 다비다라는 여자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알고 보니 살아 있을 때에 동네 사람들을 위하여 선행을 많이 베푼 여자였습니다. 특별히 당시에는 옷이 귀한 시대였는데 옷을 많이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들을 그렇게 사랑하던 여자가 죽었다고 그렇게 슬퍼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비다가 선행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은 다비다를 위하여 기도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행9;40)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다비다가 남에게 옷을 지어주는 선행을 베풀 때에는 그것이 낭비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비다는 그 선행으로 목숨을 도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 캐나다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히 차가 고장이 나서 도로에 서면 여러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려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이 깊습니다. 어찌 보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괜히 시간 낭비하고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리라.”(잠19;17)
4. 복음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하다 보면 “도저히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고 기분만 상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듣던지 아니 듣던지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그 복음의 씨앗에 대한 열매를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전도사로 있다가 33살의 나이에 지금의 저희 집 사람을 만나서 장가갈 때였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축하객들이 주신 축의금을 가족들과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저희 어머님이 “어- 이 여자 전도사님도 축의금을 주셨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 전도사님 아세요?” 하고 물으니까 저희 어머님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구역장으로 있으면서 날마다 열심히 전도를 하다가 길에서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보고 이렇게 전도를 했습니다. “이봐요. 내가 돈 버는 법 가르쳐 줄까?” 이 말에 그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귀가 쫑긋하여 물었습니다. “뭔데요?” 저희 어머님이 그분의 귀에다가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예수 믿어!” 그러자 이 분이 획 토라지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지나쳐 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이 여성분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여자 전도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님이 전도해 준 것에 감사하여 제가 결혼할 때 축의금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 지 알지 못 함이니라.” 기도와 헌금, 선행과 복음은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됩니다. 끝으로 간단한 이야기 하나를 해드리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안에서 미이라 옆에 놓인 말라비틀어진 씨앗을 발견하였습니다. 자그마치 3,000년이 된 씨앗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자들이 그 씨앗을 심어 보았습니다. 싹이 났을까요? 안 났을까요? 대답은 “싹이 났습니다.” 그 꽃의 이름이 뭐라고요? ‘다알리아’입니다. 오늘의 교훈입니다. 이 외국 땅에서도 심으면 됩니다. 버리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