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날짜: 
2012/01/08
설교: 

눅15:11-32 돌아온 탕자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설교는 성탄절에 관련된 설교와 제목이 어울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의 설교 제목은 '돌아온 탕자'입니다. 성탄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교 제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목으로 설교해야만 하는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반 전에 새벽기도를 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청년 총동원 전도주일을 12월 25일 성탄절, 2011년 마지막 주일로 정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그날 청년들이 많이 오늘 날입니다. 100명의 청년들이 그날 모이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날 오는 청년들 중에는 아직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청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청년들이 그날 한 번 교회에 구경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날이 되면 안됩니다. 이 청년들이 그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인생이 험난해집니다. 사랑과 축복의 하나님을 떠나 산다면 너무나 억울하고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그날 오는 청년들을 꼭 붙잡아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저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종아, 너의 마음을 내가 안다. 나는 그날이 성탄절이라고 내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경배하는 동방박사들 보다, 이 세상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지치고 고난한 몸과 영혼을 이끌고 오는 그들에게 더 간절한 마음이 간다. 그들이 동방박사처럼 예물을 안가지고 와도 좋다. 그들이 동방박사처럼 고귀한 신분이 아니어도 좋다. 그들이 동방박사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지 않아도 좋다. 나는 그들이 돌아온 탕자처럼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온 탕자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그렇게 거지꼴을 하고 와도 나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반길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절에 우리 하나님께 바칠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성전을 환상적인 분위를 만드는 데커레이션이 아닙니다. 바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특히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4-7)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할렐루야! 여러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아십니까? 자녀를 잃은 부모의 애절한 슬픔을 아십니까? 먼 산을 바라보며 잃은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눈물과 통곡을 아십니까? 자식 잃은 부모의 아픈 심정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자식을 잃었는데 어찌 기쁘고 즐거운 성탄절이 되겠습니까? 자식을 잃었는데 어찌 즐거운 성탄절 파티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자녀를 잃어버린 애비의 간절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아버지,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십시오." 여러분, 유산이라는 것은 죽은 아버지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둘째 아들은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몫의 유산을 얻으려면 아버지인 당신이 지금 죽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의미입니다. 보통 아버지 같으면 "이런 호래자식아!" 하며 뼘을 때렸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이런 무례하고 모욕적인 아들을 향해 별 말없이 유산을 내어줍니다. 아마 어머니가 일찍 죽어 어미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둘째 아들이 불쌍했을는지 모릅니다.
이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의 유산을 받자마자 바로 아버지 집을 떠납니다. 지루한 시골에서 벗어나 충분히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도시로 갑니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을 곳입니다. "여기가 신천지다. 신나게 즐기자." 하며 허랑방탕하며 향락에 빠져 삽니다. 그러나 어느덧 수중에 돈이 떨어져가고, 자기 주변에서 같이 즐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두 떠나갑니다.
급기야는 한 푼도 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돌아봐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지역에 심한 흉년이 들어 그는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구걸을 하러 다녔습니다. 결국 가장 천하고 모욕적인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쥐엄열매도 주는 자가 없어 배고픔에 잠을 설쳐야만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자신의 인생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집에 있었으면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에서 호강하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매우 몹쓸 짓을 행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난 당장 쫓겨나겠지? 그 많은 재산을 몽땅 탕진했으니... 그리고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보고 유산을 달라고 했으니... 차마 날 용서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도시에 남아있으면 그냥 굶어죽을 것 같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이 있는 마을이 아직 저만치 멀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어귀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분이 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누가 알려주었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이렇게 먼데까지 나와서 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들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상거지입니다. "아이고, 불쌍한 녀석!"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자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말합니다. "아버지여,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난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수많은 하인 가운데 하나로 봐주십시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말합니다. "내 아들아, 잘 왔다. 돌아와 주었구나! 너를 하인이라 불러달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다.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내 기뻐하는 아들이다." 아버지는 연신 아들을 쓰다듬고 기쁨에 겨워 아들과 함께 집에 갑니다. 그리고 아들의 몸을 씻기고, 가장 좋은 새 옷으로 갈아입히며, 자기 손에서 가락지를 빼어 아들의 손에 끼우며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하인들을 명합니다. "여봐라. 내 잃었던 아들이 성탄절에 돌아왔다. 동네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이자."
여러분,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 돌아온 탕자를 비유로 한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여전히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찬송가 317장 '어서 돌아오오.'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18번 곡입니다.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잃었던 자녀들이 오늘 성탄절, 20011년 마지막 주일에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다시는 아버지 집을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온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를 위해 파티를 마련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위한 파티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마련한 음식을 맛있게 드십시오. 그리고 제발 부탁입니다. 집 나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맏아들이 나옵니다. 종일토록 밭에 나가 수고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풍악소리가 들립니다. 한 종을 불러 묻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예,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뭬야? 송아지를 잡았다고?"
맏아들은 기분이 상당히 나빴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아버지를 향해 삐쳤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쏘아댑니다. "아버지, 제가 이제까지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하- 참!"
여러분, 만약 이런 집안 분위기를 돌아온 탕자가 감지했다면 그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 정말! 괜히 집에 왔네! 다시 집나가고 싶네!" 하며 다음 날 슬며시 집을 나가서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는지 모릅니다. 즉 돌아온 탕자가 거지가 돼서 아버지 집에 자존심 버리고 돌아왔는데 별로 반갑게 쳐다보지도 않고 "거지새끼, 밥이나 먹고 가라." 하는 식으로 대한다면 탕자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아- 괜히 왔네!" 하며 얼마나 후회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아버지의 마음은 돌아온 탕자가 맏아들 때문에 다시 집을 나갈까봐 노심초사 염려가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돌아온 탕자입니까? 여기에도 맏아들 같은 사람이 혹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이 자기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다고, 형님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다시 집 나가면 아버지는 어떡합니까? 제발 부탁합니다. 아버지를 보고 다시 집 나가지 마십시오. 다시는 아버지 마음에 못을 박지 마십시오. 당신이 다시 집 나가면 아버지는 슬퍼서 울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있기에 참으로 즐거운 날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있기에 성탄절 파티도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가 있기에 오늘 우리는 송아지도 잡고, 갈비찜도 마련했습니다. 당신이 이날 올 줄을 알고 우리는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오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대단히 기쁩니다. 아버지 집에 올 때에 선물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온 것으로 만족합니다. 할렐루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