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55:8
(삼상 16: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삼상 16: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삼상 16: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삼상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하7:8
(삼상 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6:6-13 하나님은 사람을 잘 보신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잘 보시는 편입니까? 사람을 잘 못 보시는 편입니까? 물론 인생경험이 많으신 분들은 사람 보는 눈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잘 본다 할지라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을 정확히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 한 대기업에서는 사원을 뽑을 때, 특히 면접을 볼 때 점쟁이를 옆에 면접관으로 앉혀놓고 사원을 뽑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뽑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데, 인간의 힘으로는 사람 보기다 쉽지 않아서 귀신의 힘을 빌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사람을 택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특히 처녀 총각들은 좋은 배우자를 택하여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미래의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좋은 배우자입니까?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고린도후서 12:1-3에 사도 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즉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안 좋은 사람인지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고로 좋은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도 가르쳐 줍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안 좋은 사람인지 가르쳐 줍니다.
본문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둘째 왕을 뽑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 왕은 사울인데,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를 하지 하므로 하나님이 그를 왕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무엘이 첫 번째 왕을 잘못 뽑은 실패를 거울삼아 두 번째 왕은 사울보다 더 좋은 사람을 왕으로 뽑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앞에 7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이새의 아들들입니다. 과연 누가 왕이 될 사람일까요? 먼저 사무엘이 그들 중 장남인 엘리압을 보자마자 무릎을 치면서 "과연 여기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있구나!" 하며 그를 즉시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너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보느냐? 너 왜 용모와 신장만 보고 사람을 결정하느냐?" 즉 그렇게 기도를 쉬지 않고 많이 했던 사무엘도 사람 볼 줄을 몰랐습니다. 그만큼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사무엘처럼 외모와 신장을 보고 결정하기 싶다는 것입니다.
만약 외모와 신장이 그 사람의 됨됨이라면 사람 보는 것은 참 쉬워집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아름다운 외모가 그 사람의 본질이라면 인물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술집 여성들은 모두 일등 신붓감이 될 것입니다.
처녀 총각 여러분들이여! 부탁합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제발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고 중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안 좋다고 하니까 사무엘이 머쓱해졌습니다. 앞서 사무엘은 첫 번째 왕인 사울을 뽑을 때에도 사울이 남들보다 신장이 크고 잘 생긴 것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꽝이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키가 크고 잘 생긴 분이 있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키 크고 잘 생긴 분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외모와 신장이 아니고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사무엘이 사람을 고를 때 자기가 고르면 또 실패를 할 것 같아 하나님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이새의 둘째 아들 아비나답이 사무엘 앞을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이 애도 아니다." 셋째 아들 삼마가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또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이 애도 아니다."
그렇게 일곱 아들들을 다 살펴보았지만 하나님은 모두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고개를 꺄우뚱합니다. 이거 뭡니까? 참 난감합니다. 왕은 뽑아야 하는데 왕이 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든지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습니다. "네 아들이 이게 다냐?"
이새가 대답합니다. "막내가 있는데요. 게는 지금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 게 한번 데리고 와 보아라." 드디어 막내아들 다윗이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애다. 애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아라." 할렐루야!
처녀 총각 여러분들이여! 사무엘처럼 이런 응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애다. 애를 너의 신부(신랑)로 삼아라." 할렐루야! 여러분! 괜히 외모나 신장만을 쳐다보다가 아까운 세월이 가고, 또 가고... 그래서 노처녀 노총각이 되면 부모님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러니 심사숙고하여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좋지만 부모님도 좀 생각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을 이스라엘 두 번째 왕으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 사람 다윗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도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좋아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왜지요? 다윗은 중심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를 최고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좋은 대학 나오고 많이 배운 사람입니까? 노,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입니까? 노, 아닙니다. 인물이 좋은 사람입니까? 노,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라고요? 중심이 좋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일평생 동안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혹 그가 인생의 큰 고난에 빠졌어도 그는 하나님께 원망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고난 속에서 더욱 더 자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고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출세를 하고 잘 나가도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윗이 밤중에 우연히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쳐다보다가 그만 음행의 죄를 저질렀지만, 그 외에 그는 평생에 하나님만을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중심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서 수많은 금은보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재물을 하나님 성전 짓는데 바쳤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역사상 하나님께 가장 많은 건축헌금을 드린 사람이 누구일까요? 록펠러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다윗왕입니다. 그가 드린 건축 헌금을 요즘 돈으로 계산하면 수십조 원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편의 시들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온통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지키다가 늙어서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의 소원도 이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 잘 믿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출발은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훌륭하게 짓고,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 보시기에 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 물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말해 보아라."
그가 대답합니다. "저는 왕이 되었지만, 아직 어리고 부족합니다. 그러니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재판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다른 사람들처럼 재물이나 원수의 목숨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으니 내가 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지혜를 주겠노라. 그리고 네가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도 모두 주겠노라." 할렐루야!
그래서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 다음에 누굽니까? 공자님도 아니고, 맹자님도 아니고,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솔로몬 왕입니다. 그런데 이랬던 그가 어느덧 세월이 지나자 그의 마음의 중심이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특히 솔로몬은 아내가 300명이요, 첩이 700명, 도합 1000명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솔로몬의 마음의 중심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도 나이가 먹으니 여자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신상을 세우고 그 우상에게 절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솔로몬에게 몇 번 말씀하셨습니다. "애야, 그러지 말아라. 너 왜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죽을 때, 즉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좋은 사람일까요? 끝이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아멘입니까? 아무리 처음에 믿음이 좋을지라도 끝이 안 좋으면 그 믿음은 안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비록 믿음이 불완전하더라도 끝이 좋으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그 중심이 견고해서 끝이 좋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고 폭풍 쳐도, 변치 않고 진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말세에는 이런 중심이 좋은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말세가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봅니다. 외모와 신장을 바라봅니다. 돈을 바라봅니다. 명예와 출세를 바라봅니다. 당장 눈앞의 세상적인 유익을 바라봅니다.
적어도 믿는 사람만큼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고,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고, 중심이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데 너무나도 쉽게 중심이 무너집니다. 반석 같은 믿음의 베드로가 되어야 하는데 갈대와 같은 믿음인 시몬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조그만 여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하고 욕을 합니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죽는 데까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잠시 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굳건한 반석이 아니라 흔들리는 갈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갈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너무도 많은 사람이 갈대와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에 음악선생님이 늘 우리들에게 가곡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은 찬송가만 부르느라고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첫 머리만큼은 가끔 기억이 납니다.
그때 배운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베르디의 <리골렛토> 중에서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입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로 흔들린다오.(La donna e mobile, qual piuma al vento, muta d'accento, e di pensiero.) 여성주의자들이 혹시 오해할까봐 다시 개사하여 노래를 불러봅니다. "남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 저리로 흔들린다네."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 시몬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시몬'이란 '갈대'라는 의미입니다. 바꾸어준 이름은 '베드로' 즉 '반석'이란 뜻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는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로 흔들리는 사람이 세우지 못합니다. 반석과 같은 변치 않는 사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세웁니다. 마귀와 음부는 중심이 좋은 반석과 같은 성도들을 결코 흔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갈대와 같은 사람은 조그만 바람만 불어도 알아서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런 갈대를 가지고 집을 세우는데 기초나 기둥을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반석 같은 사람을 택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들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했지, 갈대 같은 사람이 교회를 세우고, 그들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말세의 시대에는 겉모양은 그러듯하나 중심이 좋은 사람이 많지 못하다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그래서 쉽게 배반하고,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쉽게 가정이 깨지고, 쉽게 우정이 깨지고, 쉽게 사랑이 깨지고, 쉽게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믿는 사람들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결혼했으면 일편단심 민들레야, 같이 살아야합니다. 왜 툭하면 이혼을 생각하고, 왜 툭하면 별거를 합니까? 왜 산다, 안 산다, 그런 엉뚱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말을 자주 합니까? 그렇게 중심이 흔들리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어찌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성도가 됩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인생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 저는 며칠 전 저와 가까이 지냈던 분, 이곳 캘거리에 살고 있는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 의사가 그러는데 이게 암이래요." 그 말을 듣고 우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암이라고 하는 부위가 굉장히 안 좋은 부위입니다.
그렇게 암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아하-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하는구나!"라는 것입니다. 이런 짧은 인생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중심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아무쪼록 죽음의 순간까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좋은 사람,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중심이 좋은 사람이 되어서 가정을 지키며, 이 땅에 교회를 세우며, 천국 열쇠도 받아, 너와 내가, 우리 모두가 행복을 가꾸며, 그 행복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