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캘거리에는 한인교회가 몇 개나 되나요?” 여러분 생각에는 몇 개나 되는 것 같습니까? 제가 25년 전 1997년 여기 캘거리에 처음 왔을 때 한인 교회가 8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2년에는 30개가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윗동네인 에드먼턴의 경우는 25년 전에 캘거리와 비슷하게 한인 교회가 8개 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에드먼턴의 한인 교회는 15개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캘거리가 에드먼턴보다 교회가 배가 증가가 되었습니다. 25년 전에는 캘거리나 에드먼턴이 서로 교회 수가 적고 또 비슷하다보니 목회자들 간에 매년 한 두 번 씩 만나서 운동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약 15년 전부터는 양쪽 지방간에 교회 수와 목회자 수가 많이 차이가 나다보니 서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모임이 중단되었습니다. 요즘은 그 분들, 그리고 거기 교회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중 최근에 그쪽 에드먼턴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 한인 교회가 캐나다 교단과의 동성애 문제로 마찰이 생겨서 교단 소유인 교회 건물을 비워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쫓겨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교회에 큰 시련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동성애 문제가 대두되곤 했지만 이렇게 교회가 직격탄을 맞고 큰 시련을 겪는 것을 보니 아- 참! 말세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실 날이 심히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노아의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처럼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그 때는 죄악이 극도로 성행하고 특히 동성애가 사회에 만연한 시대입니다. 여기 캘거리의 모 한인 교회도 캐나다 교회의 성전을 렌트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포스터를 성전에다 붙이고 그러니까 자녀들 교육상 심히 좋지 못해 최근에 렌트 교회를 옮겼습니다. 물론 렌트 교회 얻는 것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는 자체 성전을 보유하고 있어서 누가 나가라 말라 하지 않으니 그건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에드먼턴 한인 교회도 그렇고 여기 캘거리 한인 교회도 각각의 지역신문에 서로 연합하여 교회 광고를 내고 있습니다. 그 광고를 보면 ‘000교단, 000교회’ 이런 식으로 광고를 냅니다.
일상적으로 하면 저희 교회도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좀 파격적으로 문구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아- 참! 지금 생각해도 이 문구 참 괜찮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슬로건(표어)입니다. 교회는 사람만 만나는 곳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사실 그 교회가 어느 교단에 속한 것은 때론 중요하기도 하고, 때론 그리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님들의 경우는 교단을 분별할 때 장로 교단. 침례 교단, 감리 교단, 성결 교단, 순복음 교단, 이 정도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어느 특별한 이단 교회가 아닌 이상 그 정도 구분만으로 그 교회의 특징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오늘날도 초대교회 때처럼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각종 은사와 치료와 기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순복음 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입니다.
제가 지난 주 설교 때에도 잠깐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모여서 한 분이라는 겁니다. 이를 시대별로 구분하면 구약시대 때에는 성부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신약시대 때에는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역사하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을 만났고, 신약의 예수님 시대에는 성자 하나님을 육신으로 만났고, 예수님이 승천 후에는 성령 하나님을 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시대별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구분을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그냥 하나님을 만났다 하면 누구를 만났든지 간에 그 세 분의 인격과 사상이 서로 충돌되거나 모순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 성부 하나님이 우리가 성자 예수님을 만났다고 혹은 성령 하나님을 만났다고 서로를 질투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만난 것이 곧 성자 하나님을 만나 것이고, 또한 성부 하나님을 만난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시면 그것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이고, 또한 성부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아니,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하늘나라에 가시면 제자들에게 “안녕! Bye Bye! 나중에 또 보자. See you again."라고 말씀하셔야 하는데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always)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니 이건 또 무슨 뜻인가요?
도대체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신다는 거예요? 만나는 거예요? 혹 어떤 분은 “아-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것은 그냥 하늘나라 천국에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겠다는 뜻이겠지요.” 하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 이 뜻은 실지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 안에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 영, 즉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으로 내 안에 오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요,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 육신으로 있으면 예수님은 내 안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와 24시간 같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잖아요. 친구나 부부가 아무리 친해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데까지는 같이 있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이 영으로 내 안에 오시면 나와 일체가 되기 때문에 어디든지 어느 때든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여기 캐나다에 와서도 같이 있을 수 있고, 내가 산골짜기에 있거나 높은 산 위에 있거나, 깊은 바다 속에 있거나, 사막 가운데 있어도 항상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주여’ 하거나 ‘아버지’라고 부를 때 내 안에 계신 그 분이 감동을 줍니다. “그래, 내가 여기 있다. 너와 항상 같이 있다. 너무 염려하지 마라.” 이때 내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이 내가 ‘주여’ 하거나 ‘아버지’라고 할 때 “아-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성령님이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좀 어려운 설교를 하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알아듣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한번 체크해봅시다. “아- 목사님! 지금 하신 말씀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하신 분들은 한번 손들어 보세요.
그리고 “아- 목사님! 지금 하신 말씀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대충 50% 정도 알아듣습니다.” 하는 분들은 손들어보세요. 그리고 “아- 목사님! 저는 도대체 지금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감이 안 옵니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하신 분들은 솔직히 손들어보세요.
제가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여러분들 수준을 알아야 그에 맞게 설교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러잖아요. 모르는 것 자꾸 말하면 저도 힘들고 여러분들도 힘들어지잖아요. 저는 어려운 설교로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려운 설교로 내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저는 어찌하든지 어려운 것도 쉽고 재미있게 설교를 하려고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암튼 지금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시대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통해서 위로도 받고, 기쁨도 얻고, 사랑의 힘도 얻습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가 “으샤 으샤! 전도하자.”고 외치는데 그렇게 이 외국 땅에서 전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과 항상 동행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요14:18) 즉 예수님이 승천 후 바로 성령님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나와 늘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본문 16절에는 성령님을 한자어로 ‘보혜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도울 보, 은혜 혜, 스승 사’ 자를 써서 도와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신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이 성령님을 우리 곁에, 우리 안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고, 가르치신다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사람들을 만나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주셨고, 오늘날에는 성령님으로 친히 내 안에 오셔서 날마다 나를 만나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나와 동행하며 같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워하면 그 분이 나를 도와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갈 때까지 늘 나와 함께 하면서 영혼구원 및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그 분이 주시는 힘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분과 함께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아버지 집에서 칭찬과 영원한 행복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