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배 때 대표기도나 헌금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자칫 당황하여 기도를 마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깜빡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못하고 기도를 마치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자가 깜빡하고 기도를 마치면 듣고 있는 분들이 “아이고, 주여!”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속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대신 기도를 하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맨 끝에는 반드시 같은 말이 나와야 합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아니, 기도는 내가 실컷 해놓고 왜 맨 끝에 예수님의 이름을 갖다 붙입니까? 그렇게 남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고 갖다 붙이는 것은 범죄가 아닐까요? 차라리 내가 기도했으니 내 이름을 붙이면서 “김원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맞지 않을까요?
얼마 전 한국에서 이상한 민중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면서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기도를 하고 난 후 마지막에 “예수님, 공자님, 부처님, 마호메트님, 세종대왕님, 이순신 장군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아니 왜 당신은 그렇게 기도를 하냐?”고 물으니까 “아- 예수님 한 분보다 여러 위인들의 이름을 붙이면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실 것 아니냐?”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가톨릭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면 오히려 더 잘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윗, 바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어떨까요? 오히려 더 잘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듣지 않으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만 하나님은 들어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전통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드디어 기도가 끝났다고 하는 신호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살펴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거듭해서 여러 번 말씀합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의 특권 중에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겁니다. 좋은 것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 기분이 되게 좋습니다. 아-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와- 이것 너무 좋다. 할렐루야! 그렇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서 좋은 것을 받으면 “아니, 이 좋은 것을 왜 내가 여태까지 몰랐지!” 하면서 스스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8, 11)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즉 기도할 때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기도해야만 하나님이 들으시고 역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의 피를 이어받은 죄인입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계속 죄를 짓고 맙니다.
고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의롭다고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기에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의 피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그 분에게는 처음부터 죄인의 피가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전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평생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의 삯은 사망 곧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죽었습니다. 왜요? 바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죄인이 자기 죄로 벌을 받고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로우신 예수님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천국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이름입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들으면 두려워 떱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낸다.“(막16:1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건 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데 그냥 예수님의 이름을 도깨비 요술 방망이처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거야 말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법으로 도용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겁니다. 마귀는 그런 가짜 신자가 외치는 예수 이름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자를 조롱하고 공격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술을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외칩니다.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그러자 마귀가 대답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러면서 악귀 들린 자가 그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때리니 그 두 사람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벗은 몸으로 황급히 도망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 이름을 적극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거기서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그러자 그 앉은뱅이가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을 본 모든 백성들이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베드로가 설명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했느니라.“(행3:16)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겨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좋은 것이 주어집니다. 기도가 응답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는 쫓긴다.”
여기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추천 문화가 있습니다. 즉 누가 그 사람을 추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아무래도 직책이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보니 그런 추천서를 자주 써주게 됩니다. 그렇게 추천서를 써줘서 결과가 잘 나오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제 이름으로 써준 추천서가 잘 안 통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저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특히 기억이 나는 것은 여기 ‘캘거리 한인 장학회’에서 장학생을 뽑을 때 이런 저런 서류와 함께 추천서를 요구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두 번 추천서를 써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두 분 다 장학생으로 선발이 안 되었습니다.
저도 기분이 참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애들 장학금 준다고 해놓고 왜 안주는 거야? 도대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왜 안주는 거야?” 아- 물론 그 분들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신청해도 받지 못한 학생은 물론, 그 부모나 추천서를 써준 저 역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아- 추천서에 쓴 내 이름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 추천서에 누구나 다 아는 세상 권세자의 이름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게 통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돈이 좀 더 있으면 적어도 우리 교회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남들에게 장학금 달라고 손 벌리지 말고, 차라리 우리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암튼 김원효 제 이름으로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장학금도 주고, 구제금도 주고, 상금도 주고, 비상금도 주고, 각종 좋은 것을 더욱 풍성히 줄 것입니다. 도리어 사람이 주는 것보다 더욱 풍성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그 분의 뜻을 좇아 구해야지, 자기의 정욕과 욕심을 채우려고 구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를 향한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듣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하면서 갈등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돌리시옵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아닌 줄을 아시고 곧바로 돌이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분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분의 뜻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로 기도하고 난 후 응답이 안 되었다고 불평하기보다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했는지 체크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나 무슨 말을 할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골3:17)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자존심을 걸고, 예수님의 인격을 가지고, 예수님처럼 진실 되게 최선을 다하여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에게 그 귀한 예수님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할 때 사용하시고, 귀신을 쫓을 때도 사용하시고, 병든 자를 고칠 때도 사용하시고, 매사에 범사에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고, 그 이름을 높이는 중에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복되고 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