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가 새해 1월 1일 주일예배 때에 ‘리즈시절(전성기)’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2023년 올해를 기점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의 전성기를 이루기 위해 각자 힘과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각자 신앙의 전성기를 잘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작심삼일’이라고 벌써부터 신앙의 전성기는커녕 신앙의 방황기 혹은 신앙의 혼란기 혹은 신앙의 암흑기로 접어들지는 않았습니까? 새해에는 보다 하나님을 잘 믿어보겠다고, 주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생각한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좀 당황스럽거나 낙심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비관하거나 누구를 탓하지도 마십시오. 인생이 어찌 자기가 계획하고 마음먹은 대로 한 번에 다 성취가 되겠습니까? 분명 굴곡이 있을 겁니다. 여러 번 골짜기를 통과할 겁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전성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즉 신앙의 전성기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넘어져도 계속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투지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같이 따라 해봅시다. “나는 또 일어난다.” “나는 계속 일어난다.”
제가 새해 첫 주일 예배 때에 소개했던 ‘리즈시절(전성기)’란 말은 축구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축구 때에 제가 또 이상한 단어를 하나 보고 들었습니다. 영어로 ‘GOAT(염소)‘라는 말입니다. 혹시 이 단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이 단어를 이렇게 사용합니다. “Messi is goat.(메시는 염소다.)”
아니, 메시가 염소라니? 뭔가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GOAT(염소)’라는 말은 약자라는 겁니다. 무슨 약자냐? ‘Greatest Of All Time'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특정 분야에 있어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Messi is goat.” 하면 “메시는 염소다.”라는 뜻이 아니고 “메시는 역대급이다.”라는 뜻입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축구에서 누가 역대급인지... 아마 호날두 선수는 “Messi is goat.”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메시가 펠레나 마라도나 선수보다 더 뛰어난 역대급 축구선수일까요? 아- 그런 것 몰라도 됩니다. 우리는 축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이 더 중요합니다. 전도가 더 중요합니다. 아멘입니까? 노멘입니까?
이번에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 나라를 보니까 경제가 완전히 파탄이 나서 인플레이션 비율이 연간 75%라고 합니다. 경제가아주 망한 겁니다. 그런데 그 나라 국민들은 경제가 회복되는 것보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이고, 주여- 굶어 죽을 판인데 축구가 뭔지? 하여간 우리는 축구보다 전도가 더 중요합니다. 아멘!
오늘은 제가 ‘염소’라고 하는 ‘GOAT(Greatest Of All Time)’에 영감을 받아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역대급 인물’ 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나요? 예-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그런데 “Jesus Christ is goat.(예수 그리스도는 염소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아니- 목사님!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지, 어찌 염소입니까? 그건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에 보면 염소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인으로 상징됩니다. 그리고 양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의인으로 상징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보면 ‘아사셀 염소(떠나는 염소)’가 나옵니다. 제사장이 두 마리의 염소를 택하여, 그 한 마리는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대신 죽입니다. 즉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염소 한 마리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고 홀로 광야로 보내집니다.
이렇게 광야로 떠나는 염소를 ‘아사셀 염소’라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고 홀로 죽으로 가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Jesus is goat.(예수님은 염소다.)”라고 말하면 구약성경의 관점에서는 정확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관점에서는 “Jesus is goat.(예수님은 염소다.)”라고 말하면 좀 부정적인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GOAT(Greatest Of All Time)' 즉 역대급 인물들이 각 분야별로 있습니다. 복싱하면 ‘무하마드 알리’ 선수가 GOAT 이고요. 농구하면 ‘마이클 조던’이 GOAT이고요. 발명왕 하면 ‘에디슨’이 GOAT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역대급 인물‘ 하면 구약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GOAT입니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GOAT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시대, 모든 분야,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GOAT는 누구이지요? 뭐-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입니다. 그분만이 인류를 죄와 사망과 저주 가운데서 구원할 분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행복과 참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있기에 내가 있고, 그 분이 있기에 내 삶의 의미와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위대한 역대급 인물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가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단지 추억 속에서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대가 가고 세월이 가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제가 성령의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에는 이 말의 뜻을 그냥 “아- 예수님이 죽어서도 그 사상과 가르침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저 공자의 가르침이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 뭐- 예수님의 말씀도 다른 종교가들처럼 좋은 말씀을 하신 거니까, 그거 배우고 실천하면 착한 사람도 되고 좋은 거지 뭐!“ 이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령의 은혜를 받고 보니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진짜로 예수님이 인격자로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인생을 100% 동거하며 같이 사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20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나? 어떻게 그 분이 나와 연합해서 나와 같이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고 납득이 잘 안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전도하다 보면 이런 분들 참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제가 이런 식으로 쉽게 예를 들어 설명을 해줍니다.
보세요.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신내림을 받잖아요. 그리고 신이 임하면 그 신의 능력으로 예언도 하고, 점도 치고, 여러 가지 기적도 행하잖아요. 그리고 그 신과 동행하잖아요.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저 그 분의 사상과 가르침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신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과 같이 인생을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했잖아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러니까 예수님이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식사를 해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하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 보면 밖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을 좀 부끄럽게 생각하고 처량하게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절대 처량한 신세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혼자가 아니고 항상 둘이니까요.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외롭지가 않습니다. 왜요? 항상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분이 내 안에 같이 있잖아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에게 계속 힘을 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혹은 예수님을 오래 믿었어도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그냥 자기 혼자 외롭게 사는 줄 압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겁니다. 외국 땅 캐나다 캘거리에서도 예수님은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어요. 아멘이시지요?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성령ㅇ르 받기 전에는 잘 몰랐어요. 저도 그랬어요. 성령님이 내 안에 인격적으로 들어오시기 전에는 이 말씀이 그저 “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지 뭐! 그럴 거야. 아마도.” 이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신 말씀은 그 정도가 아니라 실지 내 바로 옆에서보다 더 가까이 아주 내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나와 같이 지낸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GOAT되신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한 가지 명령을 우리들에게 하셨는데 그것을 가리켜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본문 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한 마디로 전도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전도한 사람 좋은 신자 되도록 계속 모범을 보이며 잘 돌아보라는 겁니다. 아- 그런데 이거 누가 모릅니까? 전도하라는 거 그거 유초등부 아이들도 다 아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전도를 못합니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역사가, 스파크가, 불꽃이 안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서 열심히 전도하려고 하는데 내가 예수님을 계속 깔아뭉개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핑계를 댑니다. “아- 예수님! 여기는 캐나다에요. 좀 창피하게 그러지 마세요. 그냥 믿을 사람은 알아서 다 믿어요. 그렇게 전도한다고 뭐가 됩니까?” 하면서 그렇게 그냥 신앙이 굳어진 겁니다.
아닙니다. 이걸 갈아엎어야 됩니다. 신앙의 전성기를 맞이하려면 내 안에서 전도하려고 하는 예수님과 보조를 맞춰야 됩니다. 아- 전도하면서 좀 창피를 당하면 어때요? 핍박을 받으면 어때요?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조롱도 당하고, 고통도 당했잖아요?
지금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이곳 캘거리 땅에서도 전도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빨리 나서야지요. 나- 내가 필요할 때에만 예수님 찾고, 예수님께 필요한 것이나 달라고만 하고, 예수님의 최대의 명령인 전도는 싹- 무시하면 이건 바른 성도가 아니잖아요? 그치요?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캐나다 캘거리 추운 땅에서도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신 그 분은 우리들에게 가장 위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다름 아닌 전도입니다. 그 분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전도의 일을 하면서 저와 여러분들도 역대급 신앙인인 GOAT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날에 큰 칭찬과 상급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