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70-80 추억의 노래 중에 가수 김상희 씨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아마 옛날 분들 중에 이 노래 모르시는 분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막상 불러 보려고 하면 기억이 아른아른 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같이 한번 불러보고 싶은데... 불러 볼까요.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여러분, 한국에서 봄에 피는 꽃 중에 대표적인 꽃이 개나리와 진달래입니다. 혹시 여기 캐나다에서 개나리와 진달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꽃들을 보면 고향 땅 한국 생각이 나고 추억이 새롭습니다. 저의 경우 개나리는 여기 캘거리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데 진달래는 아직 못 보았습니다. 혹시 여기 캘거리에서 진달래 보신 분 있나요? 한번 손들어 보실래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을에 피는 꽃 중에 코스모스가 있는데 캘거리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제가 코스모스를 보았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 월례회가 제일 장로교회에서 있어서 갔는데, 거기 식당 앞에 보니까 “어머나!”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여- 그렇군요.”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미리 몇 주 전에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을이 다 지난 간 것 같고, 캘거리에 이미 코스모스도 다 지고, 이제 곧 눈이 올 것 같은데, 이 설교가 과연 때에 맞는 설교인지, 이번 주에 해야 될 설교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오늘의 설교는 좀 학문적이고 깊이가 있는 설교이기 때문에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괜히 어려운 설교로 성도님들을 헷갈리게 하고, 괴롭히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쉬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가 과연 주일예배에 합당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월요일에 코스모스를 보면서 “주여, 이게 오늘의 설교가 맞군요.” 하고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코스모스 꽃은 8개의 꽃잎이 서로 질서 있고 조화롭게 마주하고 있는 국화과에 속한 꽃입니다. 그런데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이 써진 헬라어(다른 말로 그리스어)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영어가 되어서 'cosmos'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조화와 질서가 갖춰진 ‘우주’를 뜻합니다.
왜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뜻할까요? 그것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이 우주를 그렇게 질서 있게 조화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볼 때 그 크기에 놀라지만, 한편 그 큰 우주가 질서 있고 조화롭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또 다시 놀랍니다. 그리고 그런 우주를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 186회나 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할 때에 ‘세상’이 영어로 하면 'world'인데, 헬라어 원어로 하면 바로 ‘코스모스’입니다. 이 코스모스란 단어는 요한복음에 78회가 나오고, 요한서신에 24회가 나옵니다. 즉 사도 요한이 총 186회 가운데 102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화와 질서의 우주인 코스모스에 반대되는 개념의 헬라어 말이 있는데 바로 ‘카오스’입니다. 영어로 하면 ‘chaos(케이오스)’라고 합니다. 이 뜻은 정형화 되지 못하고 질서가 갖춰지지 않은 ‘혼돈’이란 뜻입니다. 교실을 예로 들면 모든 책상 걸상이 잘 정돈이 되어 있고,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잘 갖춰진 상태를 코스모스라고 하면, 카오스는 책상이고 걸상이고 모든 물건들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입니다.
창세기 1:2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상태가 바로 이런 카오스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질서와 조화가 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고로 헬라어 원어에서는 이렇게 질서 있게 창조된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하며, 한국어 성경에서는 ’세상‘이라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에서는 ‘world’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래 세상은 조화와 질서가 깨지고 난장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지금의 세상보다 훨씬 조화와 질서가 잡힌 완벽한 코스모스 세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낙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피조물들이 모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조화와 질서가 깨졌습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의 소리가 들립니다.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들도 서로 싸우고 죽이는 카오스의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코스모스 세상이 아니라 혼돈의 카오스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이 세상(world)을 ‘코스모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이 혼돈스럽고 많이 파괴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계를 보십시오. 지구가 저 태양을 중심으로 아직도 질서를 이루며 정확히 돌고 있습니다. 달도 여전히 지구를 중심으로 정확히 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이 세상을 파괴한 것은 맞지만, 그래서 세상에 혼돈이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만물을 조화롭고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즉 좁은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그 혼돈으로 말미암아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보십시오. 세상에는 전쟁, 살인, 가난, 질병, 간음, 전쟁, 미움,... 등 여기저기에서 혼돈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면 그 와중에도 이 세상이 아주 멸망을 당하지 않고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악하고, 너도 나도 악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도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희망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인생의 모습들은 종종 아쉬움이 남고,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 내 인생이 뭔가 뒤틀려진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질서와 조화보다는 어찌 보면 혼돈과 고통의 카오스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17살에 예기치 못하고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배다른 형들의 미움으로 말미암아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으로 끌려가 10년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려 3년간 감옥생활도 했습니다. 누가 봐도 그의 인생은 혼돈의 카오스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의 인생은 조화와 질서가 잡힌 코스모스 인생이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나이를 묻는 바로 왕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야곱처럼 요셉처럼 여러 가지 고난과 문제로 인해 험악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까? 혼돈의 카오스 인생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야곱과 요셉의 인생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되는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좁은 관점으로 보기에는 내 인생이 혼돈의 카오스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넓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코스모스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보십시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세상을 조화롭고 질서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잠언 16:4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이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면 우리는 카오스의 세상, 카오스의 인생 중에도 코스모스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즉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고로 불평은 어느새 감사로 바뀔 수 있고, 절망의 탄식은 하나님께 향한 찬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할렐루야!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cosmetic(화장품)‘ 이란 단어가 유래되었습니다. 즉 화장품은 질서와 조화가 갖춰지지 않은 얼굴에 조화와 질서를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성 여러분, 어때요? 화장품을 마구마구 쓰니까 얼굴에 질서와 조화가 갖추어져 좀 예쁘게 보입니까? 싸구려 화장품이라 효과가 별로입니까?
나이가 먹고 늙으니까 아무리 좋은 화장품으로 떡칠을 해도 얼굴에 조화와 질서가 잘 안 잡히나요?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노년이 되어서 나타나는 백발과 얼굴의 주름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조화와 질서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나 “아- 나는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 하고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기필코 자신의 얼굴에 질서와 조화를 다시 재창조하려고 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거 어떻게 생각합니까? 뭐-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지만 저의 경우는 “그것도 잘 되면 좋기는 하겠다.“라는 생각이 쪼금 들기는 하지만 아주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3:3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이 구절에서 ‘단장’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원어로 살펴보면 ‘코스모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단장 다른 말로 화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조화와 질서를 잡아가는 코스모스 행위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주특기가 포병입니다. 포병은 포를 정확히 쏘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정확해야 합니다. 정확하지 않으면 적군에게 떨어져야할 포탄이 아군에게 떨어질 비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로 포병에서는 질서와 순서를 따집니다. 1mm의 정확성을 따집니다.
어찌 보면 사내자식들이 너무 깐깐하고 정확하니까 좀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지 않으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만드신 우주의 질서와 조화도 보십시오. 너무나도 정확합니다. 오차가 없습니다. 그 정확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카오스 같지만 코스모스입니다.
결론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혼돈의 세상을 질서와 조화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마귀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카오스의 힘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다시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고로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얻으시고, 낙심 중에도 용기를 얻으시고, 탄식이 변하여 찬양으로,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