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구글 검색창에다가 ‘동물도 웃나요?’라는 문장으로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나오는 글이 이렇습니다.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 정보 통신부‘에서 제공한 매우 신뢰성 있는 자료입니다.
“동물들도 미소 짓는 표정뿐만 아니라 웃음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릴라는 서로 간지럼을 태우고 놀면서 사람과 비슷한 웃음소리를 냅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부엉이, 개, 미어캣, 펭귄, 낙타와 돌고래에 이르는 다양한 동물들을 간지럽힌 후 소리 반응(긍정적인 발성 신호)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침팬지와 유인원, 개, 쥐의 웃음소리가 밝혀졌습니다.”
“또한 동물행동학자인 Patricia Simonet(패트리샤 사이먼)의 연구에 따르면 개의 웃음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줬더니 다른 개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개의 웃음소리가 다른 개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도 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웃음을 이해하고 느낍니다. 감정과 교감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동물도 행복하면 웃습니다. 앞으로 동물들과 대할 때, 우리의 웃음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저도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동물들이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었는데 지금까지 강아지를 8년간 키워보니 “아- 강아지를 비롯해 다른 동물들도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동물들과 인간의 감정 표현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 그들에게도 분명히 감정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희로애락의 감정 중 웃음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웃음에 관한 옛날 말이 있습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으면 만복이 온다는 겁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웃음에 관한 명언도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명언은 바로 이겁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은 그대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그대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엘라 윌러 윌콕스- 또 다른 명언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이다.” -존 반드로 경-
여러분,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동물들은 슬프고 괴로워서 엉엉- 우는 것보다 기쁘고 행복하여 환하게 웃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 웃는 편입니까? 저희 교회에 보면 ‘잘 웃는 분’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 진의량 집사님이 아주 호탕하게 잘 웃는 것 같습니다.
반면 잘 웃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크게 웃어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어린 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반면 장년은 평균 15-20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을 살아보니 힘든 일을 많이 겪기 때문일 겁니다.
각 나라마다 잘 웃는 나라가 있고, 무뚝뚝하거나 잘 웃지 않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잘 웃는 나라 순서 5위 오- 캐나다, 4위 호주, 3위 코스타리카, 2위 태국, 1위 핀란드입니다. 한국은 몇 등일까요? 등수에 없는 것을 보니까 잘 웃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웃음 치료법’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일부러 웃음을 짓게 하여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시키는 치료법입니다. 제가 그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 사람들이 단체로 막- 웃습니다. 계속 웃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저도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웃음도 전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웃음 치료법은 특히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궁금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니 이런 연구 자료가 나옵니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감마의 분비를 증강시켜 바이러스와 각종 질병의 면역력을 높인다. 웃음은 모르핀보다 300배 이상 강력한 효과를 갖는 ‘엔케팔린’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또한 암을 잡는 자연 살상 세포인 NK 세포의 힘을 증강시켜준다.“ 여러분, ‘동의보감’에도 ”웃음은 보약보다 좋다.“고 합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good medicine)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그리고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1.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겨서 웃는 밝고 건강한 웃음 2.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허탄하게 웃는 웃음, ‘실소’라고 합니다. 3. 다른 사람을 비웃고 조롱하는 냉소적인 웃음, 비웃음, 코웃음이 이에 해당됩니다. 4. 마지못해서 억지로 웃는 웃음, ‘썩소’라고 합니다. 5. 전혀 웃을 때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정신병자의 웃음입니다.
6. 신령한 웃음 : 일명 ‘하박국 웃음’이라고도 합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도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웃음입니다. 이에 대한 구약성경 하박국 3:17-18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4:4)고 했는데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기쁨을 주시므로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과 내가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극도의 최상의 행복한 웃음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도 ‘희락(joy)'의 열매가 있습니다.
제가 25살 때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입가에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길을 가다가도 혼자 실실 웃고,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약을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예-‘라고 대답하시는 분은 좀 수상합니다. 암튼 성령 충만할 때에 얻는 기분에 비하면 마약은 세발의 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의학적 표현으로 하면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 등이 솟아나서 얻는 기쁨보다 성령 충만함에서 오는 기쁨이 더욱 강력합니다.
아-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천국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면 참으로 억울하고 크게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쁨을 우리들에게 이 땅에서 맛보게 하시므로 저 영원한 나라인 천국을 사모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그러한 기쁨이 계속해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세 사람이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자기 집안으로 영접해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렇게 극진히 대접을 받고 난 후 이들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을 줍니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텐트 뒤에서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이 이제 나이가 99세 영감님이 되었고, 자신도 89세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생리가 끊어진 것은 이미 오래 전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좋지만,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피식- 하고 웃은 겁니다.
24년 전 남편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그리고 아내인 자신이 65세 때에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했지만 벌써 2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가능성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씁쓰레한 웃음, 자포자기의 웃음, 불신의 웃음을 지은 겁니다. “에이, 하나님 웃기지 마세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라가 텐트 뒤에서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네 아내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사라가 텐트 뒤에서 이 말도 듣고 있다가 좀 겁이 나서 부인하며 말합니다. “하나님, 저 안 웃었는데요.” 그러자 하나님도 굽히지 않고 말씀합니다. “아니다. 네가 분명히 웃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 하나님도 우리 보통 인간처럼 느끼고, 보통 인간처럼 대화를 하시는구나. 이거 어째 좀 하나님 같지 않고 애들처럼 유치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때요? 여러분, 하나님이 좀 유치합니까? 아- 그게 아니고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유치하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수준에 맞추느라고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인간처럼 유치해지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자녀와 대화를 할 때, 애가 하도 유치하게 구니까 부모가 슬며시 웃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자존심이 상하여 묻습니다. “엄마, 아빠 왜 웃어?” 이때 부모의 마음이 덜컹- 합니다. 잘못 대답하면 애가 삐져서 화를 내거나 혹시 앵- 하고 울 수도 있습니다.
아- 이때 잘 둘러대야 합니다. “응- 나 안 웃었다.”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면 애는 도끼눈을 하고 말합니다. “아니야, 분명히 웃었어. 앵-” “아이고, 주여! 애가 또 우네.” 자- 지금 하나님과 사라의 대화가 대충 이런 식입니다. 사라가 웃으니까 하나님이 “너 왜 웃니?”라고 따지고, 사라가 “안 웃었어요.”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겁니다.
여러분, 이 대화에서 우리는 귀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지금 내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다 아시고 있다는 겁니다. 분명히 사라는 텐트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웃었습니다.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다 아시고 있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 외국 땅에서 하도 슬퍼서 혼자 눈물을 질질 짜며 울었는데, 그걸 다 아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눈물을 흘리시며, 나의 그 눈물을 큰 웃음으로, 행복한 웃음으로 돌려주시려고 움직이실 겁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나니”(전3:4)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 “하나님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라.”(욥8:21)
반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대충 웃고 있습니다. 그냥 표정 관리를 하는 겁니다. 속으로는 울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습니다.”(잠14:13) 연예인이나 유명인들 중에 그런 분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마냥 웃고 떠들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탁- 닫으면 그때부터 남몰래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때로는 통곡을 합니다. 사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가 웃기는 웃었지만 진짜 기쁘고 즐거워서 웃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허탈하고 처량하여 웃은 겁니다. 이제 나이가 먹어 어느덧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도 여자로서 아들을 나서 젖먹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 웃음 속에 담긴 사라의 소원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허탈한 웃음을 진짜 행복한 웃음으로 바꿔주고 싶었습니다. 한편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라만 웃은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도 웃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나타나 말씀합니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17:15-16)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창17:17)라고 자기 속으로만 말하고, 하나님 보지 않게 엎드려서 웃었습니다. 아-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다 아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스스로 다짐을 하며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이제 내가 조만간에 내 실력을 보여주마. 지금은 네가 나 몰래 허탈하여 웃었지만, 네가 내년 이맘때면 아들을 안고 진짜 좋아서 웃을 것이다.” 즉 사라도 허탈하여 웃었고, 아브라함도 허탈하여 웃었는데 하나님이 그 허탈한 웃음을 진짜 행복한 웃음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5-6) 보세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일 년 전의 그 허탈한 웃음이 진짜로 행복한 웃음으로 바꿔졌잖아요. 그리고 그 아들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즉 이 아들로 인해 진짜 기쁘고 행복해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겁니다. 이웃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와서 묻습니다. “아기가 참 귀엽네요. 이름이 뭐에요?” “웃음이에요.” “예- 웃음이요? 하하하- 호호호- 이름이 참 특이하네요.” 하면서 그들도 함께 웃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이름이 ‘이삭’이란 분들이 있습니다. 초등부에 최이삭이 있고, 함이삭도 있고, 청년부에 김이삭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히브리식 이름이고 이를 한국말로 번역해서 이름을 ‘웃음’으로 지으면 어떨까요? 최웃음, 함웃음, 김웃음, 아마 이 이름으로 학교에 다니면 친구 애들한테 “웃음아- 하하하- 호호호- 뭐가 그렇게 웃기냐?” 하며 꽤 놀림을 당했을 것 같은데...
암튼 아브라함 100세에 사라의 90세에 아들을 낳으니까 너무 행복합니다. 매우 기쁩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꿈과 소원이 이루어져서 인생 최대의 행복한 날이 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행복의 노래가 저절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드디어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기적적으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1-3)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기쁨과 행복의 웃음이 입가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반드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웃고 살아야 할 사람이 슬프게 울고 살면 어떡합니까? 하나님, 당신의 자녀들에게 기쁨과 행복의 웃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울증의 원인도 치료해주시고, 그 증세도 모두 사라지게 하시옵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