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얼마 전 성탄절에 저희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이 열두 분이 있었습니다. 권혁정 집사님 차동진 집사님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신 손녀딸 ‘차은’ 아기가 엄마 아빠와 함께 교회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리고 비씨(BC)에서 이곳 캘거리로 새로 이사 온 최현웅 성도님 가정도 있었고, 여기 캘거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멀리 떨어진 북서쪽 선드리(Sundre)에서 모텔을 하시는 김광윤 박미선 집사님 가정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청년 중에 김지선 자매님이 같은 아파트(×2)에 사시는 청년 백해민 자매님의 전도를 받아 처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중에 좀 인상 깊었던 세 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세 분의 남편들입니다. 이 분들의 아내와 자녀는 먼저 교회에 나왔는데, 남편이신 이 세분들은 주일에 일을 하시느라 그동안 교회에 못나오다가 성탄절에 직장이 쉬므로 처음 교회에 나왔습니다.
이들 세 분의 남편 분들이 성탄절 며칠 전에 교회에 처음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가 그 전날 밤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세 분들은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주일에 쉬는 분들이고, 또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인데, 내일 있을 성탄절 이 한 번의 예배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반드시 내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을 꼭 붙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성탄절이 되어 제가 이 분들이 나왔나 못나왔나 예배 전에 살펴보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내와 자녀와 함께 세 남편 분들 모두가 나타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 제 가슴이 벅찹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수영 목사님이 오래 전부터 많은 성탄절 선물을 준비해주셔서 이들 새로 오신 분들에게도 작은 선물이나마 줄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제가 이 세 남편 분들을 보았습니다. 아내의 손길에 이끌려 교회에 와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같이 강당에서 식사도 하며 지내는 것을 보며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스라엘의 민간 교훈집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몇 달 동안 성을 공격하고 마침내 그 성을 점령한 한 적장이 성안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 성 안의 남성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부녀자와 어린이에게는 내가 자비를 베풀겠다. 너희들은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만 가지고 오늘 자정 안으로 이 성을 빠져나가라” 이 명령을 들은 부녀자와 어린이는 아끼는 보물 하나씩만 들고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 남편이, 자기 아빠가 적의 칼에 숨질 것을 생각하면서 통곡을 하며 성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집의 보물이 아니라, 크게 부상을 당하여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자기 남편을 부축하며 힘들게 성문을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적장은 그 여인을 보고 호령합니다. “네 이 년! 담도 크구나. 어디라고 사내를 데리고 나가느냐? 너마저 죽고 싶으냐?” 그러자 그 여인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께서 약속하시기를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를 들고 나가라고 하셨지요? 제가 가지고 나가는 이것은 장군에게는 비록 하찮은 것이오나, 제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장군은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그러자 적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기 부하에게 말합니다. “이 여인에게 말 한 필을 주어 그 부상당한 남편과 함께 가게 하라.”
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 전 성탄절에 자기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오신 아내들의 모습이 마치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내 분들이여, 여러분이 이 외국 땅 캐나다에서 가장 잘하신 일이 있다면 자신과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신 것이고,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교회에 오실 수 없는 여러분의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왔다는 겁니다.
그 남편들은 가족들과 함께 이 외국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치열한 삶의 전쟁을 치루시던 분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처음 온 모습을 보고 제가 느낀 것은 “아- 그래, 부상당한 자기 남편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부축하여 교회에 찾아온 아내들이 참 기특하구나! 하나님, 이들이 이 외국 땅에서 잘 살 수 있도록 계속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당신은 가장 귀한 보물 한 가지 중에 어떤 것을 가지고 성을 빠져나가겠습니까? “아-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족 중에 죽을 처지에 놓인 나의 식구가 있었구나.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해 잠시 후 인생이 끝나는 날, 지옥의 심판에 처해질 나의 식구가 있었구나. 이 귀한 나의 식구를 데리고 이 성을 빠져 나가야겠다.“ 아멘!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창세기 19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았습니다. 그 성의 사람들은 어린이나 노인이나 모두 동성애에 빠진 큰 죄인들이었습니다. 천사 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롯의 집에 방문하자 그 모습을 보고 밤중에 롯의 집에 몰려와 천사의 모습으로 온 그 남성들과 동성애를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들이 롯에게 말합니다.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19:12-13)
이 말을 듣고 롯이 일단 자기의 식구들인 두 딸과 자기 아내를 부릅니다. 그리고 두 딸과 정혼한 자기 사위들에게도 말합니다. “이보게 사위들, 이제 이 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 멸망을 당할 텐데, 같이 이 성을 빠져 나가세.” 그러자 사위들이 장인인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할 수 없이 롯은 자기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황급히 그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너무나 급히 빠져 나가야 하므로 그 동안 자기가 모은 재물이나 보물을 하나도 가지고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자기 가족들의 생명이 일단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만 급히 챙겨서 그 성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화산을 터트려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시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완전히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때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롯의 아내가 그 동안 자기가 살면서 그 성에 모아두었던 재물들과 보물들을 생각하며 머뭇머뭇 거리고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화산재와 그 열기에 휩싸여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 그까짓 보물이 뭔데... 그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자기 목숨을 잃고 마는 겁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입니다. 즉 사람의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나와 같이 사는 동물들의 생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람처럼 영혼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고 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죽지만 그 후에는 영혼이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고, 나중에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못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은 형벌의 장소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육체도 나중에 사망의 부활로 일어나 다시 한 번 영원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만이 영생의 존재이고 영벌의 존재입니다. 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너와 나, 사람의 생명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한 소년을 구해주었습니다. 소년은 그 사람에게 “선생님, 저를 구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소년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천만에! 다만 한 가지만 언제나 기억하고 살기를 바란다. 너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도 구해낼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고 살아다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구해주실 만큼 가장 귀중한 사람입니다.
19세기의 유명한 전도자 무디 목사님이 탄광촌을 방문하여 책임자에게 구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책임자는 믿기지 않는 듯 말했습니다. “그거 구원이 너무 싸군요.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니... 값이 너무 싸단 말입니다.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뭔가 큰 값이 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무디 목사님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오늘 갱도에 들어갔습니까?” “네,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깊이 내려갔습니까?” “수백 피트나 되지요.” “어떻게 내려갔습니까?” ”그건 간단하지요. 버튼만 누르면 승강기가 자동으로 올라오고 내려가니까, 그걸 타고 내려갔지요.“ ”아- 그것 밖에 하신 일이 없습니까?“
“그럼요. 석탄 회사가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저는 그저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걸요.”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이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저 그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십자가의 승강기를 놓으셨으니 주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기독교의 진리는 너무도 간단하지만 절대로 싸구려가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귀한 것이기에, 값으로 따질 수가 없기에, 그냥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 뒤에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해야만 하는 고귀한 희생의 대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한 젊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 찾아오신 나이 많은 신사 한 분을 성도님들에게 소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노신사 분이 잠시 인사의 말씀을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강단에 올라간 그 노신사 분은 인사 대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그만 둘 다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즉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한 아버지의 손에는 오직 한사람만을 건질 수 있는 구명튜브 밖에는 손에 없었습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누구에게 그 구명튜브를 던져서 구원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친구를 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들의 친구를 죽게 놔둘 수도 없고...
그때 아버지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아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 가지만,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아들의 친구는 불신자라서 영원히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하여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외치고 구명튜브를 아들의 친구에게 던졌습니다.
결국 자기 아들은 죽고 아들의 친구는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도 그의 독생자 아들을 죽이고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그 노신사 분은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예배를 모두 마치고 젊은이들 둘이 노신사를 찾아와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아까 들려주신 그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이론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 중에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그 노신사는 젊은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교회의 젊은 목사님이 바로 그 옛날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그 친구였고, 죽은 것은 내 아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의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자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친구가 아닌, 아들의 원수인 너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나를 살리셨으니, 도대체 그 분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 분 앞에서 꼬꾸라집니다. 그 분의 사랑을 깨닫고 때로는 눈물로 통곡을 합니다. 그 분의 사랑을 깨닫고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사랑 앞에서 내 모든 생명을 바치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 분의 사랑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감도 얻게 되고, 나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의 각오도 새롭게 하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귀한 너와 나의 생명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계획하시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에 마침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귀한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구원이 완성되고 비로소 우리가 살았습니다. 아무쪼록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늘 저와 여러분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매순간 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그 귀한 사랑을 이전에도 주셨고, 오늘날도 그 사랑을 주시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 사랑을 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찌 그리 사랑이 많으신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들도 그 사랑을 본받아서 그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