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잔이 넘치나이다.

날짜: 
2008/07/12
설교: 

시23;1-6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참으로 기분 좋은 고백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올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외치고 싶은 고백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보 뒷면에 보면 올해 우리 교회의 합심 기도제목은 ‘여유’입니다. 이 외국 땅에서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 물질의 여유, 환경의 여유를 하나님께 구하며, 그 여유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려는 것이 올해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하나님께 합한 사람 다윗의 생애를 보면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 일약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리고 그는 형제 8명 중에 막내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장남을 중요시하는 사회였었는데, 막내인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 뽑혔습니다. 참으로 과분합니다. 그는 또다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생애 속에서도 이렇게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계속 터져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내 잔이 넘쳐나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잔까지 넘치도록 채워주는 신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근에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요즘 생활이 어떻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자라서 쩔쩔 맵니다.(14%) 그런대로 근근이 살아갑니다.(75%) 남아서 저축합니다.(11%) 즉 한국사람 중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11%라는 것입니다. 이 11% 안에 저와 여러분들도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남의 잔까지 채워주는 여유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오늘 다윗의 시를 보면서 그 비결을 같이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잔이 넘치는 분을 따라가면 됩니다.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다윗은 스스로를 양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목자를 참 잘 만났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그의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이 양인 다윗을 풍성한 꼴이 있는 곳,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니 다윗은 기분이 좋아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기꾼 말을 듣고 따라가 보십시오. 그 후에 고백이 무엇이겠습니까? “아이고, 내가 죽겠나이다.” “아이고, 망했나이다.” 라는 고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깡패나 도둑의 말을 듣고 따라가 보십시오. 아마 유치장이나 감옥에서 한숨을 쉬며 고백할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여기서 인생 썩네!”
여러분, 사람은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오기도 하고 “아이고, 죽겠네!”라는 고백이 나오기도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지식과 경험을 따라갔을 때에는 밤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쳤습니다. 허탈했습니다.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고, 이게 뭐냐! 피곤해 죽겠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이 어부인 베드로에게 이렇게 훈수를 두었습니다. “깊은 데에 가서 고기를 잡으라.” 이러한 예수님의 훈수를 듣고 베드로가 이렇게 대꾸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저는 이곳 갈릴리에서 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수잖아요. 어찌 목수가 어부한테 물고기를 이렇게 잡으라 저렇게 잡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 무시하지 마세요. 나도 알만큼 안다고요.”
물론 목수인 예수님이 어부인 베드로에게 물고기 잡는 것에 훈수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너무 지나치신 참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 분이 보통 목수가 아니구나! 이 분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리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놀랐습니다. 이제껏 어부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이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배는 순식간에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의 배까지 넘치도록 채워주었습니다. 내 잔이 넘쳤습니다. 남의 잔까지 넘치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는 사람은 잔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뱃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사건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5천명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모였는데 점심때가 지났습니다. 저녁도 지났고 어느덧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헤어져야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기져서 집에 돌아가는 동안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주여, 여기는 빈들입니다. 날도 저물었습니다. 200 데나리온의 떡도 모자랍니다.” 한 마디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고기 5마리와 떡 2덩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잔이 넘쳐났습니다. 우리도 이곳 외국 땅에서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따라가면 내 잔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분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뉴욕 맨하탄 슬럼가의 벽에 이런 낙서가 있다고 합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마약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약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여러분, 죽어라고 돈을 좇아가면 돈은 나를 실망시킵니다. 언젠가는 나를 배신합니다. 술과 담배와 마약도 건강을 해치며 결국 나를 고통 속에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면 내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곳 외국 땅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중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혼이 잘되면 잔이 넘치게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양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순복음 교회에서 아주 좋아하는 말씀 구절이 있습니다. 요한 삼서 1장 2절입니다. 다같이 암송해 보십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즉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내 잔이 넘쳐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빈 배를 빌려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옆에서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영혼이 소생되었습니다.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배는 넘치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배도 넘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들으면 영혼이 소생합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을 따라 순종하며 살면 결국 우리의 입술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넘치는 것만 욕심을 내고 바라보지,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는 법칙을 무시합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며, 예배를 드리기를 싫어합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잔이 넘치지 않습니다. 혹 운 좋게
잔이 넘친다고 해도 그 잔을 마실 때가 되면 그만 엎질러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더욱 열만 나고 속만 상하게 됩니다. 내 잔치 넘쳐나서 그것이 온전하게 누리는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영혼이 소생되는 일을 좋아해야 합니다. 예배를 좋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찬양하며 전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이곳 외국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므로 내 잔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두려움이 없어야 잔이 넘치게 됩니다.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곰이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죽음이 다가와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즉 두려움이 없어야 잔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각자 두려움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고위층은 누가 나를 테러하지 않을까, 암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스타들은 인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들은 누가 내 돈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 욥도 그랬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재산을 다 빼앗기고 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여러분, 두려움이 있으면 잔이 넘쳐나지 못합니다. 혹 잔이 넘쳐나도 금방 쏟아지고 맙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혹시 암이 아닐까?”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리의 행복이 깨지지 않을까?” “비자가 안나오지 않을까?” “돈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두려움이 임하면 그 두려움의 통로를 타고 마귀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의 넘치는 잔을 쏟아버리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 잔의 밑바닥에 구멍을 내고 틈을 내어 넘치는 축복을 새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조, 하나님의 역사는 담대함입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응답이 찾아옵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수도 없이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담대함에 대하여 생각나는 성경 구절을 찾아볼까요?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일서 5장 14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다윗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잔이 넘치게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병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병이 물러갑니다. 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암이 물러갑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난이 물러갑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가 물러갑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내 잔이 넘치게 채워질 것을 믿고 바라보십시오.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다윗과 같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내 잔을 넘치게 채워주실 하나님을 따라 가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먼저 영혼이 잘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근심과 두려움을 떨쳐 내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시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