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12-19 부활이 없다면 이것도 없다.
프랑스에 야심찬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명이 되는 것을 알고 심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자신도 종교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성직자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도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목사님이 정중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예.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시오. 그리고 3일 만에 살아나십시오. 그러면 기독교와 같은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새로운 종교 만들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메시야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문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요. 나를 신문에 내주시오." 그는 신문사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났다고 깜짝 놀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데 왜 신문에 안 내줍니까?"
그러자 신문 편집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살인을 하거나 세상을 놀라게 하는 범죄를 하면 신문에 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소!" 그래도 그가 자꾸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신문에 내달라고 부탁을 하자 신문사에서 말했습니다. "여러 이야기할 것 없소!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시오, 그러면 신문에 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진정 인류의 메시아냐 아니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느냐 부활하지 못하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그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주는 될지언정 인류의 구세주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에게 있어서 부활은 중요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1.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13절) 미국에서 명문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은 바로 리랜드 스탠포드입니다. 그가 대학을 설립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당시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출신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잘생기고 수재였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극도의 슬픔에 잠겨서 아들의 장례식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슬픔 속에 잠을 못자고 있었는데 그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 스탠포드는 이 환상을 보고 인생관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
스탠포드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년 교육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당시 거액인 2천만 달러를 바쳐서 오늘의 명문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재산은 일 페니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
여러분, 사람이 죽은 후 다시 산다는 것, 즉 부활은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으로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것도 다시는 죽지 않는 부활체를 입고 영원토록 산다는 것은 마치 공상소설에서나 나오는 꾸며낸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부활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2.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부활도 없습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은 장례식 설교를 부탁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장례식 설교를 어떻게 하였는가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장례식 설교를 단 한 편도 이 땅에 남기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날 사람에게 죽음의 설교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죄수가 하루하루를 초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체 면회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면회 오게 되면 그 사실을 간수가 죄수에게 알려주는데 간수가 나타나 "아무개, 면회 왔다." 하면서 사형장으로 끌고 갈까봐 면회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도 그는 사면이 되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낮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면장을 든 간수가 그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형수는 쌍소리를 지르면서 간수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는 간수가 미처 기쁜 소식을 알릴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간수는 사형수가 잠잠해지자 사면장을 내려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사형수가 아니요. 당신의 형이 감면되었다는 사면장이오."
그 사형수는 처음에는 자기 눈을 의심했습니다. 분명 자기 죄로 비추어볼 때 도저히 사면을 받을 만한 여지가 없었던 아주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사면장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사면장을 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이리저리 뛰고 뒹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어야 할 사형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셨기에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부활합니다.
3.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믿음도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자주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믿습니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믿습니까? 649복권 당첨 되는 것을 믿습니까? 카지노에서 러키세븐이 무더기로 뜨는 것을 믿습니까? 진짜 중요한 "믿습니다."는 우리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어찌 우리가 "믿습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즉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천국도 믿을 수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짝퉁이 되고 맙니다.
몇 년 전에 미국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멕시칸이나 흑인들이 한국인들 점포에 불을 지르고 물건들을 약탈한 사건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멕시칸 아이가 그날따라 예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얘! 너 이 옷 누가 사주었니?" 아이는 좋아서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아빠가 한국 옷가게에서 훔쳐 온 거예요."
교장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학교를 돌아보는 데 한국 학생들이 나무 밑에 모여서 눈을 감고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너희들 뭐하는 거니?" 한국 아이들은 말했습니다. "예. 우리는 한국 점포를 불태우고 도적질하여 간 흑인들과 멕시칸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이예요." "왜 한국 사람들을 공격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니?" 아이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모두 하나님 앞에 갈 터인데 가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야단맞으면 안되니까요?"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들은 죽어서 하나님께로 갈 것을 믿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허무한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날이요, 부활을 기대하는 날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남을 용서하고 사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으면 믿음의 삶의 토대가 무너지고 맙니다.
4. 부활이 없다면 수고에 대한 보상도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모두가 아닙니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십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고 해보십시오. 상을 받을 사람이 죽고 없는데 누구에게 보상을 해줍니까? 그래서 부활이 없으면 보상도 없습니다. 만약 보상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사도 바울은 본문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19절)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발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불타버려도 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블랙박스입니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블랙박스입니다. 블랙박스는 어떤 강력한 불덩어리 속에서도 결코 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뜨거운 불속에 시체를 넣고 몇 시간이 지나면 시체가 다 타버리고 하얀 뼈 몇 조각이 남게 됩니다. 이것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보관하게 됩니다.
그 가루마저 바람에 날려 가면 사람의 존재는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남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에 우리는 다시 찬란하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그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줍니다. 사도 바울은 그 보상을 기대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결론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부활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믿음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수고에 대한 보상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들의 짧은 인생의 끝에는 보람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부활을 통하여 주시는 그 영원한 행복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것도 없다.
날짜:
200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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