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날짜: 
2010/02/22
설교: 

단10:18-19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한국처럼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갈라진 두 왕국 중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고, 남왕국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많은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 포로 중에 한 사람이 다니엘이란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머나 먼 외국 땅에 포로로 끌려왔지만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늘 기도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다니엘을 하나님이 사자굴 속에서도 보호하시고 그를 크게 높이시어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 나라에서 국무총리를 지낼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였습니다.
하루는 다니엘이 음식을 줄이면서 21일간 기도를 마칠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그에게 나타나시었습니다. 천사는 그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이 말을 들은 다니엘은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외국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다니엘에게 주님이 천사를 통하여 하신 말씀은 이곳 캐나다 땅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우리들에게도 응하는 말씀이요 필요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하여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천사는 다니엘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자신은 머나 먼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다니엘은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그리고 자신의 운명도 바람 앞에 촛불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생명을 사자굴 속에서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지혜와 지식과 모든 학문과 재주를 익힐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고 해석할 줄 아는 은혜도 주시어 그가 포로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에서 국무총리까지 지낼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더 나아가 말세에 될 비밀까지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을 향해 천사가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당연할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나타난 천사가 오늘날 이 자리에서 나타나면 그 천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부를까요? '이 지지리 못난 사람이여'라고 말할까요? 아니면 한국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자주 사용하는 말처럼 '이 빌어먹을 녀석이여'라고 말할까요? 천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자신의 인생을 각자 뒤돌아보며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죄로 인해 마땅히 멸망을 당하고 저주의 깊은 웅덩이에 빠져야 할 처지였었는데 어쩌다가 구세주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일을 하며 보람 있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곳 캐나다 땅, 캘거리에까지 와서도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도록 특별히 뽑혔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들에게도 천사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은총을 크게 입은 사람이여' 옆에 있는 분들에게 서로 이렇게 인사합시다. '은총을 크게 입은 사람이여' 천사는 은총을 크게 입은 다니엘에게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요일4:1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딤후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국 땅에 살면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며 괜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과 두려움은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복만 파괴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과 교회에도 불안과 두려움을 끼치게 되고 결국 자멸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싸움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한 병사의 두려움은 또 다른 병사의 두려움을 야기하고 나아가 한 나라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에서도 남편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 아내나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결국 그 자녀도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그 아내도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그만 그 가정이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믿음의 선진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야곱아, 두려워 말라. 모세야,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야, 두려워 말라. 바울아, 두려워 말라" 즉 그렇게 믿음이 강한 사람들도 때로는 두려움이 생길 만한 상황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옛날 믿음의 조상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외국 땅에서 사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여러분,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캐나다 땅에서의 삶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합니다. 혹은 자기 주먹을 불끈 쥐며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은 정녕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우리들에게 와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천사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2. 평안하라.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평강의 왕이십니다. 고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하고 있고(사53:5), 골로새서 1:20에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0:36)
즉 하나님 믿으면, 예수님 믿으면 반드시 평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마음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시대입니다. 즉 사람들의 마음에 참 평안이 없습니다. 더구나 크리스천이 되었으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큰 특권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특히 이 이국땅에 와서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아무리 좋은 나라에서 산다고 해도 우리의 외국 생활은 결코 성공적이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법은 '살롬'입니다. 즉 '평안하세요.'라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인사법도 '안녕하세요.'입니다. 즉 상대방의 평안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적인 좋은 인사법입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셔서 여자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평안하뇨?"
오늘을 이 외국 땅에서 사는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불안하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렘29:11) 또한 시편 29:11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오늘의 본문도 천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평안하라."
3. 강건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은 것이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이 외국 땅에까지 와서 건강을 잃어버리면 참으로 난감해집니다. 건강을 잃으면 좋은 부모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주님의 일도 마음은 원이지만 못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인생의 고달픔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건강을 잃으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에 와서 보니 훼밀리 닥터 제도가 있어서 각 가정의 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훼밀리 닥터라도 내 가족들의 건강을 완벽하게 돌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완벽하게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는 훼밀리 닥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라파'라고 소개합니다. 즉 '치료하시는 의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급을 탈출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당시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대략 3백만 명 가량 추정이 됩니다. 그들 중에 환자가 몇 명이 있었을까요? 성경 시편 105편 3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세상에 3백만 명 중에 환자가 하나도 없었다니 이게 기적이지 않습니까? 쉽게 비교해보면 캘거리의 인구가 약 백만 명인데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만 계산해도 상당한 숫자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환자가 너무 넘쳐나서 의사와 간호사가 모자라고 병실이 부족하여 제대로 입원치료를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훼밀리 닥터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데 병이 들면 안되기에 아주 완벽하게 모든 식구들의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
즉 메시아로 오신 주님은 분명히 우리들의 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문둥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은 우리가 질병에서 놓여나 건강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채찍을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요한삼서 1장 3절의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더욱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생겼습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천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강건하라. 강건하라."
결론입니다. 다니엘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이 말을 들은 다니엘은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이 자리에 은총을 받은 성도님들이여, 아무쪼록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고 강건하여 주님의 시키시는 일을 계속 추진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