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오늘 밤에 죽는다면

날짜: 
2010/05/03
설교: 

눅12:13-21 만일 내가 오늘 밤에 죽는다면
1938년 10월 30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미국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 대 혼란이 있었습니다. CBS 라디오에서 갑자기 음악 프로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막 국방부가 발표한 긴급 뉴스입니다. 화성의 괴물들이 침입했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화성의 괴물들을 방어하려던 국인들은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다리와 선박이 파괴되고 모든 교통이 두절되었습니다.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마십시오. 지하로 들어가십시오."
이것은 오손 웰스(Orson Wells) 머큐리 극단이 연출하는 새 연속 방송극 <세계 전쟁>을 선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규 프로그램 도중에 너무 실감나게 선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날 약 1백만 명의 뉴욕, 뉴저지 주민이 정신적 장애를 받았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수 만 명이 완전 탈진 상태에 빠지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방송국의 지나친 광고 표현을 억제하는 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죽음은 갑자기 닥치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70억 명이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일 년에 1억 명 정도가 죽고 있습니다. 한 달에 800만 명이 죽고 있습니다. 한 주에 70만 명이, 하루에 24000명이, 한 시간에 1000명씩 죽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한 시간 동안에 1000명이 어느 곳에선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죽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세."
여러분, 죽는 연습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어린이들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합니다. 그 가운데 엄마 아빠 놀이도 있고, 신랑 신부 놀이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병원놀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 장례 놀이도 하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한술 더 떠서 하는 시체놀이도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빈 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관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는 자신의 죽음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도 각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오늘 밤에 죽는다면..,"
한국에는 공동묘지가 주거지와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여기 캐나다는 공동묘지가 바로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런 공동묘지를 볼 때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 장의사에서 편지가 옵니다. 갑자기 죽으면 장례비가 많이 필요하니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편지입니다. 여러분, 인생 50은 죽음을 생각하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60은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70은 장례식 순서를 미리 짜놓는 나이입니다. 80은 베옷을 하루에 한 번씩 입어 보며 죽음을 준비하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 농사가 잘되었습니다. 소출이 많고 곡식이 풍부하였습니다. 미처 쌓아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중얼거림을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오늘 본문의 부자는 오늘 밤 죽을 지도 모르는데 크게 지을 창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먹고 즐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좀 기분 나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만일 오늘 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지금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어차피 한번 죽어야 할 인생이라면 죽는 날을 한번 생각하여 볼만하지 않습니까?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면 꼭 생각하여야 할 4가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1.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한 번 죽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결코 부인하지 못하는 진리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왕이 안 늙고 안 죽으려고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후에는 반드시 누구에게나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네프(Felix Nef)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앞에 자기 친구가 걸어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친구의 어깨를 치면서 물었습니다. "친구! 자네는 죽으면 자네 영혼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나? 영혼이 갈 곳 준비를 하였나?" 그런데 뒤를 돌아다보는 친구를 보니 친구가 아니라 친구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네프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반가워하면서 네프의 손을 잡았습니다. 네프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당신이 길거리에서 내 어깨를 치면서 영혼이 갈 곳을 준비하였느냐고 물었지요? 그때 이후 내 머리 속에는 영혼! 영혼! 이 말이 맴돌았습니다. 곰곰이 미래를 생각하다가 나는 영혼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는 드디어 교회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내 영혼을 맡아줄 분을 찾아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고 현명한 사람은 심판을 대비합니다. 만일 오늘 내가 죽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서도록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범한 죄, 사람에게 범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혹시 남의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것은 없는가, 남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불성실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죄를 청산하며 죽음 후에 있을 심판을 준비하는 모습이 현명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2.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만일 오늘 내가 죽는다면 내 영혼은 어디로 갈까요? 여러분, 성경은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지금 죽는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꼭 이렇게 대답하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죽어봐야 알지요?"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우리가 비록 가난해도, 유식하지 않아도, 못났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확증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구세군의 창설자 부스(Booth) 장군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 앞에서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내가 만일 내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여러분을 여기서 몇 년 동안 훈련받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여러 분을 24시간만 지옥에 집어넣겠습니다. 그래서 지옥의 고통과 형벌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느끼게 할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이를 갈며 슬피 울며 통곡하는 소리를 듣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받는 영원한 고통을 보게 하고 그리고 나서 여러분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경고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지옥이냐 천국이냐 갈라지게 됩니다. 영원한 행복이냐 영원한 불행이냐가 결정이 됩니다. 고로 우리는 죽음의 폭풍이 일기 전에 안전한 항구로 들어와서 정착해야 합니다. 오늘 밤 죽는다면 천국과 지옥을 생각해 보고 천국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영국에서 한 노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두려웠습니다. 평생 죄만 짓고 살아 온 나날이었습니다. 지옥에 갈 것 같은 불안감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죄책감에 견딜 수 없어 미칠 지경이 된 어느 날 전도자가 오더니 말했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세요." 노인은 이웃에 살고 있는 손녀딸을 불러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손녀는 성경을 읽다가 요한1서 1:7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 노인은 갑자기 자기의 죄사함의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그런 말씀이 거기 있니?" "예 있어요." "다시 읽어 봐." 다시 읽었습니다. "그 아들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정말 있니?" "정말 있어요." "그래? 다시 읽어 봐."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노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얘야! 내 손가락을 그 말씀위에 짚어다오."
손녀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노인은 그 성경 구절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믿고 죽었다고 전해다오." 그리고 그는 행복하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운명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면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3. 전도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만일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나 혼자만 천국에 갈 수 없기에 내 주변에 천국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전하여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천국으로 인도하려고 발버둥 쳐야 합니다.
한 자매님이 남편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남편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식사를 준비하며 남편과 목사님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그 남편이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 믿는데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친척들이 예수교를 다니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천주교를 다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비용이 들면 믿으시렵니까?" "담배 값 정도만 괜찮겠습니다." "왜 담배 값 정도를 생각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담배를 끊을 테니까 그 돈을 예수님께 바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넉넉합니다." "비용이 별로 안드네요?"
그 다음 주일부터 그 남자는 착실하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인들과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이 잘 인도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헌금 액수가 조금 올랐습니다. 목사님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비용이 올랐습니까?" "예수 믿고 술까지 끊어서 술값을 더 보탰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는 것을 보고 목사님이 세례를 받을 때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거절하였습니다.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이 무슨 말을 들어서 세례를 안받습니다." "그래요. 무슨 얘기인데요?" "세례 받으면 십일조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안 바치려고 세례를 안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3년이 흘렀습니다. 이 남자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십일조를 바치려면 수확의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다 제하고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제하고 바쳐도 되고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도 되는데 믿음대로 하면 됩니다." 그 남자는 "비용을 다 제하고 나면 얼마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 해 비용을 제하고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해 세례를 받고 몇 년 후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이 분이 추수감사주일에 쌀 20가마니를 바쳤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니, 예수 믿는 비용이 어떻게 10배나 올랐습니까?" "목사님! 예수 믿는 비용을 많이 올렸습니다. 자식도 공부 잘 시키려면 유학비용이 많이 들고, 옷도 좋은 옷을 사 입으려면 비용을 많이 들이는데 내가 천국 백성이 되어서 어떻게 비용을 값싸게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비용을 비싸게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전도의 사명은 예수님이 남긴 유언의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이 죽기 바로 전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시기 바로 전에 땅 끝까지 전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죽기 바로 전에도 생각하여야 할 것은 생명을 살리는 전도라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면 누구의 영혼을 구원할까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어느 의사는 밤만 되면 문을 잠그고 간호사와 그 날 번 돈을 세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돈을 셀 때면 하루의 피곤이 싹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즐겁게 돈을 세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돈을 세면서 오늘 너의 병원을 찾아 온 영혼을 얼마나 구원하였는지 세어 보았느냐?" 그는 돈을 세다 말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는 열심히 전도하고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고 늘 기도하였습니다. 만일 오늘 내 영혼을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구원할 영혼을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4. 하나님께 보고할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네게 준 일생을 무엇에 쓰다 왔느냐?" 이는 대학 입시 예상 문제보다도 더 정확한 예상 질문입니다. 이때 무엇이라 대답할지 준비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보고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행함으로 면류관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자본금을 나누어 주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한 종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한참 후에 그 주인은 돌아와서 종들의 한 일들을 점검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한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주인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자본금을 분실할까 두려워 땅속에 파묻어 두었었습니다. 주인은 그 게으른 종을 야단치셨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리고 주인은 그 종을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즉 우리 각자는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떳떳하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면 하나님께 보고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전도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밤 죽어도 후회 없는 아름다운 죽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