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3-16 더욱 착해져야 하리!
어린이 복음성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잘 생겨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런데 그 다음의 구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맘 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제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 이 가사를 들었을 때 좀 이상했습니다. "아니, 맘이 착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야지! 맘이 착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못가면 누가 하나님 나라에 가느냐?"
이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착한 일을 내게 묻느냐? 착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이 청년은 착한 행실로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예수님의 대답은 착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착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3:10에도 이같이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나 이 같은 성경의 진리에 대하여 우리는 이같이 반문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 착한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요? 한국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은 착한 사람이 아닌가요? 그리고 안중근 의사나 얼마 전에 돌아가신 테레사 수녀 분은 착한 분이 아닌가요? 누가 그런 분을 감히 착하지 않다고, 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나 테레사 수녀 같은 분들은 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그 착하다는 것이 절대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착하다고 하는 것은 누구와 비교해서 혹은 그 시대의 윤리와 도덕적 관점에서 착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일생동안 착한 일을 다섯 가지나 했습니다. 첫째, 불쌍한 거지를 도와주었습니다. 둘째 불쌍한 노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셋째, 불쌍한 고아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넷째, 불쌍한 과부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섯째, 불쌍한 노처녀를 구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노처녀를 구제해 준 것은 칭찬할만한 착한 일인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구제한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면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첫째, 반찬을 못한다고 구박했습니다. 둘째, 얼굴이 못생겼다고 구박했습니다. 셋째, 몸매가 형편없다고 구박했습니다. 넷째, 과거를 들추어내면서 구박했습니다. 다섯째, 범사에 구박했습니다.
자- 여러분, 이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착한 일을 할 때는 착한 사람이지만 나쁜 일을 할 때는 나쁜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살면서 착한 일도 하지만 나쁜 일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일보다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착한 일보다는 늘 나쁜 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것은 100% 착한 일만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주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을 참 좋아합니다. 캐나다 이민을 위한 영어 시험을 치룰 때에 Speaking 시간에 시험관이 묻습니다. "누구를 가장 존경합니까?" 뭐- 목사이니까 당연히 대답합니다. "Jesus Christ who died for us."
그리고 또 시험관이 묻습니다. "한국 역사에 존경할만한 인물은 없습니까? "General Lee Soon Shin!" 그런데 저는 그 후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일기인 '난중일기'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난중일기는 어린이용이 있고 어른용이 있습니다. 그 어른용 중에서도 무삭제본이 있습니다. 저는 그 무삭제 본을 읽고 참 쇼크를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이순신 장군은 충신 중의 충신이요, 군인 중의 군인이요,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쓴 그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은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했습니다. 너무나 술을 많이 마셔서 위장에 탈이 났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아내가 있는 데에도 기생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군법을 얼마나 무섭게 적용을 했는지 역사가 중에는 이순신 장군 밑에서 전투를 하다가 죽은 아군의 숫자보다 이순신 장군의 손에 죽은 아군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냉정했습니다.
즉 그렇게 위대한 인물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 착한 사람이요. 그러니 천국에 당연히 들어가겠지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착하기에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구원이 믿음이 아닌 착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된다면 우리 모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이미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쥐었으니 아무렇게나 개망나니로 악한 행실을 하면서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의 행실과 마음이 믿지 않을 때보다 더 악해지고 못되게 되는 것은 비정상적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세상의 귀신이 달라붙은 것입니다.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혹시 믿지 않을 때에 방탕하고 음란했던 사람은 믿고 난 후에 방탕을 그치고 음행을 그쳐야 합니다. 물론 당장 선을 행할 힘이 없어서 당분간은 괴로울 수 있습니다. 친구와 더불어 술을 즐겨하던 사람이 술을 끊자니 친구가 옵니다. 그렇다고 계속 술을 마시자니 양심이 켕깁니다. 혹시 술을 마셔도 양심이 전혀 켕기지 않고 음행을 저질러도 양심이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이는 양심이 마비가 되었거나 양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했다고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 선한 양심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합니까?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합니까? 좋은 학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리새인처럼 기도를 잘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꾀꼬리처럼 찬송을 잘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예배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까?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예배도 나오게 되고, 헌금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본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 자신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신분적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악인이 선인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루아침에 악인이 천사가 되기는 힘이 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당장 술과 담배와 각종 중독된 생활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즉 예수님 믿고 난 후 착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난 후에도 착해지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됩니다. 크리스천이 되었으면 착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착하고 선해지기 위한 몸부림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깨달은 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즉 인간은 아무리 착해지려고 노력해도 얼마나 전적으로 타락했는지 선을 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로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착해지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모든 나라마다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도덕을 가르치며, 착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 정도 교육을 하면 인간이 착해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렇게 착하게 살라고 교육하는 사람도 나중에 보면 나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인간은 참 못말립니다. 나도 못말리고, 너도 못말리고 우리 모두도 못말립니다. 그렇다고 착해지는 것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하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못되면 부모가 욕을 먹는 것과 같이 우리가 못되면 하나님이 욕을 먹습니다. 나는 욕을 얻어먹어도 괜찮은데 누가 내 부모 욕을 하면 상당히 기분이 나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내 욕을 하면 참을만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 욕을 하면 기분이 더욱 나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착하고 좋은 하나님입니다. 마귀는 악하고 나쁜 마귀입니다. 가끔 보면 '나쁜 남자' 좋아하는 여성분들이 있는데 진짜 나쁜 남자에게 당해보지 않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진짜 나쁜 남자에게 당해보면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나쁜 마귀 좋아하지 마세요. 나쁜 친구 사귀지 말라고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예수님도 선한 목자, 착한 목자입니다. 나쁜 목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했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에서 착한 종은 칭찬했고, 악한 종은 책망했습니다. 착한 것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만한 것이지 어리석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을 가려주고 용서해주며, 남을 세워주려고 하는 것이 착한 것이지, 남을 비난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리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착한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겠다고 '두고 보자.'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엡2:10) 즉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지으신 목적은 착한 일을 하도록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교회는 착한 사람이 많아야 부흥되나요? 나쁜 사람이 많아야 부흥되나요?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요즘 우리 보면 교회 살살 부흥됩니다. 매주 새로운 분들이 오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주에 매월 마지막 주일에 실시하는 대청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양심껏, 정직히, 성실히 청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보기에 참 좋습니다. 착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늘 땡땡이치는 마음, 나쁜 마음입니다. 나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5:9)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말세가 되면 성령을 많이 부어주십니까? 성령이 오면 떼돈을 벌고 대박이 터지도록 해주기 때문입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즉 성령을 부어주시는 목적도 착한 사람 만들어서 착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줍니까? 이에 대하여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돈 많은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말만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착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흐뭇해하십니다. 반면 악한 자녀는 하나님의 근심이 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착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꾸며, 그 착한 마음과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욱 착해져야 하리!
날짜: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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