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참 제자인가?

날짜: 
2012/06/03
설교: 

눅14:25-27 누가 참 제자인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제자'라는 말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히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의 12제자만을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70인의 제자'를 비롯해 모든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교인도 많고, 신자도 많은데 제자는 적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교인은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일 년에 교회에 한 번을 다니든, 두 번을 다니든 그저 교회에 적을 두고 있으면 교인입니다. 반면 신자는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경을 믿습니다. 그런데 잘 믿는 신자가 있고, 제대로 못 믿는 신자가 있습니다. 신실한 신자가 있고, 날라리 신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과 '신자'를 넘어 '제자'라고 하면 그 의미가 좀 더 비장해집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모습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신자훈련'이나 '교인훈련'이라고 안하고 '제자훈련'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특히 YWAM(Youth With A Mission), 한국말로 '예수전도단'이라는 단체에서 즐겨 사용하는 단어가 '제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12주 강의와 12주 전도여행으로 이루어지는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한국말로 '제자 훈련 학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예배, 중보기도(영적전쟁), 내적치유와 다림줄, 아버지의 사랑, 영적성숙, 성령으로 사는 삶, 재정(권리포기), 충성과 위탁, 영적권위, 성경적 세계관, 전도 및 선교... 입니다. 여기 캘거리에도 예수전도단 밴프 오아시스 베이스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 '제자훈련'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예수전도단과 함께 우리 교회에 맞게 제자훈련을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여기 예수전도단에서 하는 DTS(제자훈련학교) 강의가 모든 교단과 모든 교회에 다 맞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국적 교단의 상황을 볼 때 교회마다 다르지만 장로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 있고, 잘못하다가는 영적 혼란을 초래해 성도 간에 위화감과 분열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교단인 우리 순복음 교회에서는 그 강의 내용이 교리적으로 충돌이 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단지 조금 염려가 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서로 의논을 하므로 바람직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세상의 모든 교회나 선교단체가 나름대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이란 단어가 좀 생소하신 분은 이런 단어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구역장 및 조장 훈련, 목자 훈련, 새신자 훈련, 지도자 훈련, Cell Leader Training... 등등. 아무튼 모든 교회의 목표 중 하나는 하늘나라 확장입니다. 즉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극대화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입니다.
예수님도 12제자를 불러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제자가 되는 과정이 좀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사부님, 제발 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저를 제자로 받아주기까지 저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간청을 하고, 스승은 마지못해 허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그들을 찾아가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즉 주님은 직접 우리를 일일이 부르시고 열매를 많이 맺는 좋은 제자로 만들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좋은 제자고, 누가 참 제자일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이 성경 구절은 기독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예로 드는 전형적인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비난합니다. "자- 이 성경 구절을 보아라. 기독교는 어미애비도 모르는 후레자식들 아니냐? 예수 믿고 제자가 되려면 부모든 아내든 자식이든 형제든 모조리 미워하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몇 문장 떼어서 문자적인 것만 들여다보고 이런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 말씀을 그들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집안싸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시콜콜하게 집안 싸움하는 것도 마치 자기가 예수님을 대단히 잘 믿기 때문이라고 착각합니다.
성경에 대한 이런 단편적이고 문자적인 이해는 교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즉 이 말씀을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가족이고 뭐고 다 버려야 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의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족이든, 친구든, 부모든, 자녀든 다 미워하고, 돌보지 않고, 버리고, 싸우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잘 돌보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말씀이 가득히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문맥 내용은 보지 않고 부분 부분만 따서 "기독교가 왜 이리 비도덕적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본문의 가족이나 심지어 자신까지도 미워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신명기 13:6-9를 보겠습니다.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제 막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만 섬기라고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이슬람교도 구약성경 중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이슬람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종교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합니다. 누구든 그를 죽여도 됩니다. 방금 읽은 신명기의 말씀에 '그를 죽이라'고 하는 명령을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 사랑의 길로 새롭게 해석되고 완성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약 성경의 문자 그대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배교하면 가족이 가족을 죽이기까지 하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 신명기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도록 강요받을 때, 혹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받을 때에 성도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명기 말씀을 인용한 것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표현된 '미워하라'는 말은 무턱대고 원수같이 대적하고 멀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그것을 좇지 말라, 따라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족이든 누구든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막는다면, 그가 아무리 중요하고 사랑스럽고 피를 나눈 형제와 같더라도 그들의 말보다는 더 높고 큰 가치를 좇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가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 아닙니까? 즉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들의 길, 제자들이 선택해야 할 올바른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란 한 마디로 스승을 닮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할 때에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훈련을 받는 제자가 있고, 가르치는 스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자신이 가르친다고 예수님이 차지해야할 스승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스승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 사람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즉 제자훈련을 하면서 어떤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이 구절에 대하여 마가복음 8:34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 멋에 산다." 우리가 보기에는 저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좋습니다. 즉 내 생각과 스승인 주님의 생각이 다를 때, 내 생각을 포기하고 주님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참 제자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까요. 주일입니다. 각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신구를 달고 교회에 옵니다. 어떤 옷을 입고 와야 스승인 주님의 마음에 들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옷보다 스승인 주님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오는 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특히 교회에 올 때에는 예배를 드리러 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고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집중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가 너무 튀는 옷을 입고 장신구를 달고 오면 사람들이 주인공이신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스포트라이트를 본의 아니게 빼앗게 됩니다. 제자가 스승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됩니다.
스승을 따르기 위해 내 생각, 내 방식, 내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 참 제자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즉 고통입니다. 싫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좋아도 스승이 싫으면 스승을 따라가야 참 제자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일 수 있습니다. 순교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처참히 순교를 당해야 하는데, 나는 폼 나게 좀 더 오래 살겠다고 하면 참 제자가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늘 주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이고,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초신자 때에는 주님의 뜻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목사가 가르쳐주면 순종을 잘합니다. 그런데 머리가 좀 크게 되면 순종을 잘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를 내 세우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스승인 주님의 생각보다 자기의 주장, 자기의 생각을 내 세우면 참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성도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고난에는 될수록 동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일곱 길로 도망갑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졌는데 왜 내가 십자가를 또 져야 하느냐? 나는 편하게 축복만 받고 예수님을 믿겠다 말합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있고, 내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있고, 내가 당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스승인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을 보였는데, 제자는 자기가 지고 갈 십자가를 팽개쳐 버리고 가면 참 제자가 아닙니다. 영어로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No Cross, No Crown." "고난 없이 축복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나를 부인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내 뜻대로, 내 힘대로 됩니까? 베드로는 분명 "다른 이는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주님을 버렸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큰 고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충만을 받자 자신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모두 순교의 길, 참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지 교회를 다니는 교인으로서, 신자로서 만족하지 말고 참 제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자기 방식을 부인하고, 더 나아가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이곳 캘거리에서도 묵묵히 지고 가는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눅14:25-27 누가 참 제자인가?(2)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부를 때 이런 명칭들을 씀 : 교인(교회 다니는 사람), 신자(믿는 자), 성도(거룩한 무리, saint : 성인, 성물, 성령) / 제자(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자) :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자 : 다윗이 군대장관들에게 명하여 몇몇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수금, 비파, 제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음. : 이들을 가리킬 때 '제자'라고 하였음.
역대상 25:8 :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 하고 일례로 제비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 여기에 나오는 '제자'란 히브리어 탈미드(talmid)로써 학생(pupil)으로 번역되었음. / 이사야 8:16 :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중에 봉함 하라" : 여기에 나오는 '제자'란 히브리어 라맛(lamad)으로써 제자(disciple)로 번역됨. :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라는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어졌음.
신약성서에서 제자 : 헬라어의 마세테스(mathetes)라는 말로서 배우는 자, 생도, 제자라는 뜻임. : 마세테스(mathetes)는 만사노(manthano)라는 동사에서 왔는데 이 동사의 뜻은'발견해 내다, 교훈보다는 경험과 행동으로서 전념하여 배우다.'라는 의미임. : 즉 제자란 어떤 지식을 배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승의 행동과 스승의 삶을 배우는 사람임. : 스승의 전인격을 통한 삶을 전수 받은 자를 제자라고 말할 수 있음. :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 : 아주 저명한 의사가 자기 후계자를 뽑을 때에 의술만을 보지 않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인격자를 뽑는 모습.
제자라는 말이 적용된 경우 : 12 제자, 70인의 제자, 모든 성도들 가리킴 : '제자가 되다'(manthano)라는 동사는 신약성경에 25회 나오고, '제자'(mathetes : 마세테스)라는 명사는 264회 이상 나옴 : 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나옴. : 그 후 서신서에서는 제자라는 명칭은 잘 안 쓰고, 성도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됨. : 제자라는 말이 중단된 이유는 당시 헬라문화권에 소속되어 있던 이방선교 지역에서는 '제자'라는 이름이 철학자나 수사학자한테서 세상 지혜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리키는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영어 사전에서 나오는 제자(disciple) : 라틴어인 디스키페레(discipere)에서 유래되었고 "to take a part completely"의 뜻 : ' 어떤 것을 완전하게 분해하여 이해한다."는 의미 : 즉 제자란 스승에 의해서 완전히 분해되도록 그 분에게 맡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음. : 그리고 disciple(제자)의 용어는 discipline(훈련하다)의 어원과 같음 : 좋은 제자가 되려면 훈련이 있어야 함 : 군인, 예술가, 운동가도 마찬가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제자의 예 : 모세의 제자 : 요한복음 9장 : 날 때부터 소경된 자 : 누구 죄? : 부모 죄, 자기 죄 아님 :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 이 날이 안식일 : 바리새인들이 트집 :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다시 소경을 두 번째 부름 :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그가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 요한의 제자 :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임. :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 예수님 왈 :
1.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 : 오늘 본문 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십자가란 단순한 목걸이 장식품이 아니라 형틀임 : 고통, 죽음, 고난 : 인간의 본성은 고난을 싫어함 :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죽는다고 할 때 베드로 왈 "주여 그리 마옵소서!"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 고난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제자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임.
2. '자기'라는 소유를 버린 사람 :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내 자신, 내 자녀, 내 부모, 내 돈, 내 직업, 내 생각, 내 판단... 등을 스승의 뜻에 맡긴 사람. :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고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은 자기 직업(어부, 세리)을 떠났음, 부모도 떠났음. : 제자란 일단 떠나는 사람임 :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임. : 세상의 사고방식 :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이 당대에 힘써서 배운 학문들을 배설물처럼 버렸음.
3. 서로 사랑하는 사람 :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가르치신 최대의 덕목은 사랑임 : 원수사랑 : 그런데 그 제자인 우리들이 서로 미워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마귀의 제자가 되고 맘.
4.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 :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사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함 :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 말씀을 행해야 함. : 특히 지상명령, 유언의 말씀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