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날짜: 
2012/10/08
설교: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요즘 한국 아이들을 보면, 잘 먹어서 그런지 확실히 평균 신장이나 체격은 좋아진 것 같은데, 체질과 체력은 예전 세대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실제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년 전보다 근시가 40 %나 증가했고, 그 외에도 알레르기, 피부질환, 고도비만을 겪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버티고 견디는 지구력에 있어서는 20년 전의 절반 정도도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이유가 뭘까요? 한국의 교육부가 발표한 걸 보니까 이렇습니다. “체력저하의 주원인은 운동부족이나 비만으로 인한 심폐지구력, 각근력의 순발력, 상지근지구력 등이 감소한 때문이다.” 좀 어렵게 썼지만 한 마디로 뭐지요? 잘 먹어서 영양 상태는 좋아졌는데, 매일 책상에만 앉아 있고 인터넷이나 TV에 빠져서 운동을 안 하니까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시면 뭔가 다른 쪽으로 생각나시는 게 없나요? 우리의 믿음생활도 이런 풍조와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체격이 커졌다고 체력이 좋은 게 아닌 것처럼, 요즘 교회가 교인 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옛날 교인들보다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건강해졌다는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왜 그렇지요? 교회의 덩치는 커졌는데 왜 신앙은 오히려 허약해졌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연단을 통한 훈련이 부족해서입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려면 4km 정도 걷는 것은 보통이고, 어떤 친구는 매일 왕복 15km 정도를 통학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6년 개근, 12년 개근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교회생활도 환경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울로 치면, 찬 마룻바닥에 신발을 벗고 얇은 방석 하나 깔고 예배 드렸습니다. 난로는 예배당 전체를 커버하기엔 너무나 작은 것 하나 땠지요. 그런데도 기도할 때 보면 보통 한 두 시간씩, 정말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좋은 의자, 따뜻한 예배당에 음향장치도 좋고 시청각 자료도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신앙생활은 앞 세대 선배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약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오래 참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에 대하여 쭉 설명을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그렇게 나가다가 7절에 보니까 다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끝이 납니다.
즉 사랑을 말씀하면서 인내와 관련된 부분이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이렇게 세 번이나 강조를 합니다. 다른 사랑의 속성은 딱 한 번씩 언급합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믿고, 바라며, 진리를 기뻐하고, 불의를 미워하며... 이런 식으로 딱 한 번씩 나오고 마는데 인내에 관한 부분은 세 번이나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뭐라는 거지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인내하고 참지 못하면 거기에는 사랑은 없다는 겁니다.
이 오래 참음은 9가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거두기를 바라는 가장 좋은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바로 오래 참음, 인내가 이 가을에 우리가 반드시 맺어야 할 좋은 열매입니다. 아시다시피 열매를 맺는 데에는 오래 참음이 항상 수반됩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며 인내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일상 속에서의 인내를 이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어려운 게 하나도 없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될 거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가 그의 나의 75세였습니다. 그런데 약속하신 자녀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는 겁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일이 그의 가정과 유대 역사에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왔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과 아랍민족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잖아요? 사라와 하갈의 사이가 나빴던 것처럼, 지금도 그 후손들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어디서 발생했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데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또한 같은 형제지간인 야곱과 에서가 그렇게 철전지 원수가 된 것도 어머니 리브가가 기다리지 못해서였습니다. 이미 두 아들이 태어날 때 하나님은 동생 야곱이 형 에서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환경과 상황이 되는 것을 보니 그 약속대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어머니 리브가와 둘째 아들 야곱이 공모를 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홈칩니다. 즉 인간적인 편법을 쓴 겁니다. 이게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그 일로 야곱은 형과 원수가 되고 집에 있을 수도 없어서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더 큰 비극은, 그 후 리브가는 사랑하는 둘째를 두 번 다시 못 보고 그냥 죽고 맙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남의 일인가요?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가정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아무쪼록 이 가을에 인내를 이루어 약속을 성취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영적인 인내를 이뤄야 합니다.
영적인 인내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믿음의 분명한 단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번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믿음생활의 단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생각만 해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던 황홀한 시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단계가 계속해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충만함이 있고 나면 반드시 그 다음엔 침체의 단계가 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내 기도는 들어주시는 것 같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를 고통 가운데 방치해 놓으신 것 같은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겁니다. 혼자 사막에 툭 던져진 것 같은 그런 상태에 빠진 기분이 듭니다. 이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시기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단계입니다. 영혼의 밤을 잘 이겨내고 성숙의 단계로 나가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믿음생활 하면서 아무 갈등도 없었고, 아무 의심도 없이 줄곧 믿음의 한 길로 걸어왔다, 이런 분이 계신가요? 아마 거의 없으실 겁니다. 다들 영혼의 밤을 맞이했을 것이고, 깊은 사망의 골짜기와 터널을 통과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아는 성숙의 계기가 됐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매가 성숙되기 위해서는 오랜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성숙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운 상황을 잘 견디고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잘 참고, 견디고 인내를 이루면 신앙이 성숙되는 것이고, 인내를 이루지 못하면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물론 인생이 참 짧은데 인내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세월 낭비 같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 같습니다.
특히 이 외국 땅에서 인내하다가 그냥 세월이 다 지나가면 나는 어디서 보상을 받습니까? 그러나 인내를 얕보지 마십시오. 인내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내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내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구원의 완성이 없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3. 사람에 대한 인내를 이뤄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의 인내도 쉽지 않고, 영적인 인내도 쉽지 않은데, 그것만큼 어렵지만 꼭 견뎌내야 하는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인내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머리를 싸매시면서 저것들을 어떻게 할까 괴로워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는 것은 너희들도 그들을 참으라는 겁니다.
오른 뺨을 때려도 참고, 원수 같은 짓을 저질러도 용서하고 참으라는 겁니다. 아내는 남편의 하는 짓이 보기 싫어도 참고, 남편은 아내가 미워도 참으라는 겁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신부되는 우리들을 참고 또 참는 것처럼 참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일터에서도 참고, 학교에서도 참고, 이곳 외국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서도 참아야 합니다. 때로는 목사가 미워도 참고, 성도 간에도 미운 사람이 있어도 참고,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어도 참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참는 사람이 있음으로 그곳이 아름다워집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이곳 캘거리에 세워진지 15년이 되었습니다.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인내를 온전히 이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열매에는 인내가 항상 필요합니다. 행복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공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열매 맺는 가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인내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인내를 온전히 이루므로 인격과 신앙이 성숙되고, 인내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이 외국 땅에서도 저와 여러분들이 더욱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