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후의 일들(동영상)

날짜: 
2013/04/07
말씀: 
행 1:6-11
말씀구절: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마17:11, 막9:12, 눅17:20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설교: 

행1:6-11 부활 그 이후의 일들

성도 여러분! 저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추측하시겠습니까? 한번 맞춰보시지요? A형(B형, O형, AB형)? 저의 혈액형은 A형입니다. 혈액형 연구하시는 분들에 의하면 A형의 특징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운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미리미리 꼼꼼하게 살펴보고 철저하게 계획하는 겁니다. 제가 전형적인 그런 타입입니다.

더구나 군 생활도 꼼꼼한 포병장교 출신이고, 중대장도 했기 때문에 모든 일정들을 미리미리 살펴보는 데에 거의 습관이 붙었습니다. 차를 몰고 집을 나설 때에도 1차, 2차, 3차 목적지를 분명히 세우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지 모든 일정을 세우고 나갑니다.

그리고 짜인 계획대로 순서대로 일이 처리돼야지, 한번 왔던 길을 다시 뒤돌아가는 시간 낭비나, 가스 낭비와 같은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제 아내가 상당히 피곤하겠지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서두로 꺼내느냐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큰 사건이 있은 후,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 될 일을 살펴봄으로 나의 위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또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전형적인 A형 혈액형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설교입니다. 혹시 그런 타입의 설교를 싫어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A형 스타일 설교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짧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 후에 된 일들과 앞으로 우리들에게 임할 일들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저와 여러분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의 사명을 다지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 자신의 부활을 여러 사람들에게 증거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 여러 여인들에게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그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비롯해 열 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당시 가룟 유다가 죽었기 때문에 열한 제자지요? 특히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난 후 마음속에 스스로 "에이고, 이 바보 녀석아! 천하에 못난 녀석! 비겁한 녀석!" 하는 실패감과 좌절감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포기하고 다시 물고기 잡는 옛날의 베드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그럴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했는데 도리어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이 약하여 타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 보기 수치스럽습니다. "나 같은 것이 뭘 하냐?" 하는 자괴감에 빠지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좌절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베드로에게 주님은 처음 베드로를 부를 때의 상황과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옛날에도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허탕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물을 배 오른 편에다 내려 보아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153마리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일명 베드로 고기입니다. 성지순례에 가면 갈릴리 호숫가 옆의 식당에서 이 베드로 고기를 요리해 줍니다. 제법 맛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예수님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혹시 옛날의 무슨 노래 생각나는 것 없습니까?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그러나 베드로는 모닥불 피워놓고 예수님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잔인한 고문입니다. 마음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얼마 전 그는 그 모닥불을 쬐다가 그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모닥불을 보면 그때의 실패가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 보기가 매우 미안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애들아,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베드로가 이때다 싶어 물고기를 가지러 갑니다. 베드로는 어찌하든지 예수님과 얼굴을 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이 베드로를 불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여러분! 한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갈대'라는 의미의 '시몬'을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이 '베드로야!(반석아!)'라고 부르지 않고 시몬아!(갈대야!)' 하고 부릅니다. 베드로를 "이런 갈대 같은 녀석아!' 하고 조롱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갈대와 같은 너의 모습을 나는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네가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려 나를 저주하고 부인했지만 나는 너의 약점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반석이 아니고 갈대라도 좋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감을 잃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즉 너는 아직까지 내 제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부인했지만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야- 이 배신자야! 너 같은 게 무슨 수제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여자 앞에서 나를 세 번이나 부인 하냐?"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베드로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를, 나를, 너를 이해하십니다. 고로 스스로 나는 못난이라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자- 이제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간의 증거를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동편의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500명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자 두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분문 말씀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지상 강림하실 장소는 승천하실 때와 같은 감람산에 오십니다. 그때에는 지금의 감람산이 7년 환난으로 인해 두 쪽으로 갈라져 그 사이에 큰 골짜기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 동편 문으로 들어오신다고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지순례에 가보면 예루살렘 동편 문이 시멘트로 아예 막혀있습니다.

무슬림 사람들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동편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동편 문 앞에는 무덤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역시 무슬림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곳으로 못 오도록 막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선지자는 시체를 가까이 하면 부정하다고 생각하기에 무덤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열흘 동안 제자들을 비롯해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대망회를 했습니다. 약속한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순절 날, 즉 예수님이 죽으신 유월절로부터 50일이 되던 날 성령이 암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주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요16: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오늘의 본문에도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핵심구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러분!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난 후 이제는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 핵심이 무엇이냐? 바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이 끝이 납니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즉 이 세상이 7년 대환난으로 끝나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복음전파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성령님도 이 일을 위해 오셨고, 우리들도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이곳 캘거리 땅에 왔습니다.

즉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사는 이유는 내가 먼저 예수님을 잘 믿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잘 믿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할까요? 많이 있습니다. 매일 기도한다. 열심히 전도한다. 서로 사랑한다. 서로 도와준다. 참고 인내한다. 예배에 열심히 나온다. 맡겨진 일에 충성한다..... 등등

그런데 살다 보면 주님의 일에 나태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일에만 몰두할 때가 있습니다. 타락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방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채찍질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입니다. "예수님, 곧 다시 오신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천년왕국이 펼쳐집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이 말씀한 달란트 비유, 므나의 비유, 양과 염소를 심판하는 비유가 응하는 날입니다. 즉 각자에게 행한대로 상급이 주어집니다.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에게는 왕권이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열 고을 권세가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가 주어지고, 혹 염소의 편에 선 사람들은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천년왕국과 그 후에 있을 신천신지의 영원한 세계에서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즉 목적이 있는 삶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우리들 앞에 펼쳐질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 다시 오실 때가 심히 가까이 왔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2000년간 나라를 잃었던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것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온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기적적으로 독립을 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65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문 밖에 65년 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의 본문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 후의 된 일과 앞으로 될 일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곳 캐나다 캘거리에서도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중에 천년왕국에서 부끄럼이 없는 자리,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자리, 기왕이면 주님하고 함께 왕노릇하는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