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날짜: 
2013/12/14
말씀: 
요4:5-18
말씀구절: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설교: 

지난 월요일에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어느 연합집회에서 강사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제 제 차례가 되어 강단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제 손에 설교 메시지가 들려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까요?

그때 영감이 왔습니다. "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제가 부리나케 이 제목을 메모지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목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데 이 메시지를 완성시킬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아주 당황스럽고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곧 바로 강단에 나아가 설교를 해야 합니다. 많은 청중들이 저를 주목합니다. 저는 무조건 설교를 해야 합니다.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문이 완성은커녕 제목만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당황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이 늘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있습니다. 매주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늘 목사가 설교 작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저는 가끔 설교 준비가 안 되어 당황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휴- 꿈이었기에 다행이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도 이렇게 꿈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 제목을 꿈에서 영감으로 받고 나서 당황하면서 꿈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깨자마자 설교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은 설교 제목만 들어도 "아하- 이 설교는 무슨 내용이구나!" 하고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성경 지식이 있고 영성이 있으신 분들은 이 제목으로 설교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목사님이 되어 이 설교 제목으로 메시지를 작성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아마 이런 비슷한 설교 메시지가 나올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입니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에게는 죄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즉 못 말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못 말리는 부분이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그 못 말리는 죄성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것이 부부의 경우라면 배우자의 그 못 말리는 죄성 때문에, 단점 때문에 자주 싸울 겁니다.

그런데 그 죄성이라는 것이 부모로부터 유전된 것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아주 뿌리가 깊은 죄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지독하게 못 말리는 죄성을 가까이서 매일 접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이 들까요?

어떤 때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싶을 것입니다. 화가 나서 그 못 말리는 사람을 모질게 꼬집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때는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내가 미쳐서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파구를 마련합니다.

부부의 경우 별거나 이혼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구나 말세로 갈수록 이렇게 못 말리는 사람도 많이 생기고, 그 못 말리는 죄성도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다보니 그에 따른 상대방의 고통과 답답함은 더욱 쌓이게 됩니다.

이러한 답답함이 직장, 일터, 학교, 사회생활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못 말리는 녀석을 또 보아야 합니다. 그 못 말리는 녀석 안 보았으면 좋은데 그 녀석 계속 내 앞에 나타납니다.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다. 조만간에 죽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게 웬 운명의 장난입니까?

이 고통으로 인해 내가 많이 힘듭니다. 자칫 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가정이나, 일터나,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눈 마주치기가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저를 쳐다보십시오. 혹시 여러분 보시기에 제가 그 못 말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서 괴로운 분이 있습니까? 오늘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답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해답을 들으시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한 여자가 나옵니다. 이 여자의 이름이 뭘까요? 성경에 이 여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 여자를 이렇게 부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 이 여인에 관한 유명한 복음 성가도 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자- 이 여인에게는 못 말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남자를 자주 바꾸는 겁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애인을 자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혼한 여자인데 불구하고 남편을 자주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못 말리는 여자입니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습니까? 다섯 번입니다.

즉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다섯 번이나 이혼을 했습니다. 옛날 한국말로 하면 팔자가 센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 또 못 말리는 부분이 있는데 남자가 없으면 안 되는 여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결혼도 않고 또 다른 남자를 데리고 삽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여 이런 여자를 '능력 있는 여자' 혹은 '쿨한 여자'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 여자를 '못 말리는 여자, '상종 못할 여자'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여자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본문에 보니 정오쯤에 우물가에 갔습니다. 이쪽 지역의 날씨는 정오쯤에는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밖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일부러 사람들 시선을 피하려고 정오쯤에 우물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거기에 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겁니다.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여인은 일단 물을 길어야 하기에 예수님을 무시하고 우물가에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을 겁니다. "물 좀 주시오."

이런 경우 옛날 한국의 상황으로 보면 여자가 바가지로 물을 떠주면서 그 안에 버들잎을 따서 집어넣고... 뭐 그런 식으로 대화가 부드럽게 진행이 되고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그렇게 부드럽게 사건이 전개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몰 좀 달라고 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탁- 쏘아붙이면서 말을 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이 말뜻은 무엇입니까? "야- 재수 없다. 딴 데 가서 알아봐라. 나는 너 같은 유대인하고 상종하기 싫다. 물주기 싫다." 이런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퇴짜를 맞은 겁니다. 저 같으면 그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연하게 그 여자의 속을 꿰뚫어 보면서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0절, 14절)

이 말을 듣고 여자가 도리어 예수님께 달라붙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이때 예수님이 여자의 그 못 말리는 부분, 아킬레스건을 건드립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그래,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맞다. 네가 옛날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옳도다." 저는 이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예수님 참 대단하시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처음 본 여자한테...

여러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이혼을 다섯 번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도 하지 않고 딴 남자와 동거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 처음 본 사람이 나의 이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겁니다. 얼마나 열 받겠어요. "야- 니가 뭔데 내 일에 간섭하니? 왜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거야?" 하고 멱살을 잡고 머리끄덩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여자의 이 아킬레스건, 상처를 건드리기만 하고 고쳐주지 않았다면 이 여자와 예수님은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짜 재수 없는 남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이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녀의 그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고통스러운 추억들을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도리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제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의 그 못 말리는 부분, 지워버리고 싶은 추억까지도 치료하시고, 용서하시고,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못됐습니다. 옛날에는 악하고 독했습니다. 옛날에는 더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신학적으로 거듭난 신자, 영어로 born-again Christian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떳떳합니다. 이제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설교 제목을 다시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의 본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에 대한 답을 각자가 쓸 수 있을 겁니다. 그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습니다. 못 말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게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계속 여전히 못 말립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못 말리는 사람은 시간의 문제지, 결국은 하나님이 변화시킵니다.

잠시 후 너도 죽고, 나도 죽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고로 천국에 가 보면 그렇게 못 말리는 사람도 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있습니다. 그 사람 천국까지 가서도 껄끄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때는 거기서 다 웃으면서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고로 지금 이 땅에서 변화가 안 되어도 결국 변화가 될 것을 바라보고 잠시만 참으십시오. 안 참으면 어떡합니까? 나만 속 터지고 나만 손햅니다. 그래도 참기가 힘드신 분은 이 성경 구절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러분, 오늘의 설교 제목과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분들도 이 토픽으로 각자의 설교문을 계속 작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자신이 깨달은 오늘의 메시지를 삶속에서 연결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한 삶속에서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연장입니다. 메시지의 연장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여러분들이 각자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서 계속 삶속에서 연장해 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주일 설교를 들었으니 이 말씀이 한 주간은 생활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단지 오늘 여러분에게 이렇게 문제를 풀어라. 이쪽으로 방향을 잡아라." 하는 힌트를 주는 겁니다.

즉 각자에게 못 말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그 믿음이 희망을 낳고, 희망이 사랑을 낳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못 말리는 너와 나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