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쁨, 그 뒤에 감추어진 고통

날짜: 
2013/12/24
말씀: 
눅2:25-35
말씀구절: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설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이 매우 강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민족적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매우 고통스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성령님이 시므온에게 계시해주셨습니다. "너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자기의 죽을 때를 미리 안다는 것, 이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나쁘다고 생각합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죽을 때를 미리 알면, 죽을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더욱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불안할 것입니다. 마치 사형수가 자기의 사형 날짜를 미리 알고 기다리는 것 같을 겁니다. 죽을 날이 가까울수록 낙심과 절망으로 미치고 환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 천국을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죽을 날을 미리 안다는 것은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의 순간에 맞추어 이 땅에서의 삶을 미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렇게 믿음이 있고, 천국을 확신하며,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미리 하나님께 계시를 받기를 기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미리 계시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셨습니다. 자신은 이 땅에 천년만년 살려고 오지 않고 우리들을 위해 죽으러 오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죽음에 맞추어 인생을 정리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미리 계시를 받았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즉 베드로는 젊어서는 죽지 않고 노년에 죽을 텐데, 그 노년에 포승줄에 묶이고 원치 않는 사형장으로 끌려가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예언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죽음을 미리 계시 받은 베드로는 그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아-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나도 이제 가야겠구나!" 하고 떳떳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캘거리 교회 연합 집회 때에 한국에서 교도소 소장을 지냈던 한 장로님이 간증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형수가 자신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그 사형수는 바지에다가 오줌을 질질 싸든지, 안 죽겠다고 발악발악 소리를 지르며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을 때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은 죽을 때 원망불평하며 구질구질하게 죽지 않습니다. "주여, 제가 갑니다. 저의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은혜롭게 죽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 은혜롭게 맞이하게 하옵소서. 그러기 위해 주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죽음을 미리 알려주시옵소서. 그래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집의 경우, 저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하나님이 저에게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미리부터 수없이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웬만하시면 살려주세요."

그런데 살려주시겠다는 응답이 안 옵니다. 계속 죽는다는 계시입니다. 결국 저는 "아하, 돌아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면서 부모님의 죽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준비가 다 끝나니까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므온이란 사람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계시를 미리부터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즉 예수님을 본 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드디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찬송하며 고백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여러분! 인생은 각자의 사명이 끝나면 죽게 됩니다. 특별히 시므온의 마지막 사명은 아기 예수님을 보고 난 후 독후감을 작성하는 겁니다. 즉 오늘의 본문 고백이 성경에 기록되어 저와 여러분에게 내가 만난 메시아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고 알리는 사명입니다. 오늘 시므온이 죽기 전에 우리에게 가르쳐준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30-31절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즉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이 하나님께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는 사망이 왔습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냅니까? 위대한 정치가가 못합니다. 과학자도 못합니다. 오직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다시는 죽지 않고, 다시는 썩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 재림 때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변화가 됩니다.

사람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너와 나 모든 인류가 원하는 소원입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내일 죽어야 할 사형수가 대통령 특사로 사면을 받고 풀려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형수인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예수님 때문에 나는 이제 살았네. 야호- 할렐루야!" 하고 기뻐서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성탄절 날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노래 부르는 이유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많아야 기쁩니다. 그들에게 돈이 떨어지면 성탄절은 기쁜 날이 아닙니다. 도리어 돈 떨어진 성탄절은 "슬프다. 짜증난다. 화가 난다."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있어 사랑하는 애인과 같이 지내면 "기쁘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치지만 애인이 없는 사람은 우울하고 화딱지 나는 성탄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탄절 날은 애인이 없거나 돈이 없는 고독한 사람들이 사고를 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탄절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나를 사망에서 건져낼 구원자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외치는 겁니다. 단지 오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애인이 있으나 없으나, 돈이 있으나 없으나, 문제가 있으나 없으나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기뻐서 팔짝팔짝 뛸 수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자 예수님을 맞이하여 사망에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 32절에 시므온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선민이요, 그 외의 다른 민족들은 모두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사람, 캐나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나와 너 우리 모두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나는 어둠 속에서 울며 지냈습니다. 내 인생은 우울했습니다. 내 인생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 인생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찬란한 예수님의 빛이 나에게 비추었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애들아,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울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이제 나의 빛으로 나아오라. 그리고 너희들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마음껏 외치어라." 여러분! 외치십시오. 이 성탄절에 외치지 않으면 언제 외칩니까? "할렐루야!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런데 본문 34절에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즉 누구는 예수님 때문에 흥하고, 누구는 예수님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명의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였습니다. 고로 그들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사망의 길로 갔습니다. 저주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흥하는 길로 왔습니다. 생명을 얻었습니다. 축복을 얻었습니다.

즉 메시아 예수님을 저버리면 결국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결국 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멀리하면 인생이 괴롭습니다. 비참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인생은 살만 합니다. 여전히 나는 행복하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멀리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하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뭘 모르고 하는 코미디입니다. 아니 자기 마음속에 예수님이 없는데 어찌 메리 크리스마스가 가능합니까?

복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생명이요 축복이지만,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은 도리어 심판이요 재앙입니다. 고로 성탄절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완악한 사람들은 "오호라. 슬프도다. 나는 이제 망했구나!"라고 울어야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5절에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즉 우리가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기까지 고통과 아픔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경우를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처녀가 아기를 낳으면 박수치고 즐거워할 일입니까? 오 노노노. 아닙니다. 제발, 그런 일이 우리 교회 처녀들에게 일어나면 안됩니다.

여러분!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저 년이 어디 가서 남모르게 서방질을 했나!" 하고 당시에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비난의 눈총을 받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탄생되기까지 그런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을 보십시오. 약혼한 여자가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습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경우입니까? 이때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했겠습니까? 아마 요셉이 믿음이 없었다면 그 소식을 접하고 술을 엄청 많이 먹고 처갓집에 쳐들어가서 깽판을 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음의 고통을 잘 참았습니다. 잘 인내했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날 우리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치기까지 요셉과 마리아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고 십자가에 독생자가 못 박아 죽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칼로 심장을 쑤지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즐거운 성탄절을 전해주시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까?

고로 우리는 성탄절을 기쁘게 맞이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같은 기쁨의 소식이 있기까지 그 뒤에서 모진 고통을 잘 참고 견뎌내신 분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면서 당하는 많은 고통, 그 고통을 잘 참아내야 합니다.

잘 참고 견디는 자는 영원히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성탄과 함께 하는 큰 기쁨을 누리면서, 오늘의 기쁨이 계속 영원토록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이어지기 위해 끝까지 잘 참고 견디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