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통하여

날짜: 
2014/03/23
말씀: 
엡1:23
말씀구절: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설교: 

한국인의 아주 좋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건설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엔 교회의 잘못과 허물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비방하면서 교회가 이런 저런 점이 틀려서 못나가겠다고 말하며, 교회에 대해 늘 부정적이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들이 교회에 대해 좋은 점은 보지 못하고 나쁜 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는 교회를 비판하는 신자가 아니요,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회를 세우는데 열심을 내는 자요, 이런 신자가 바로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세일즈맨이 자기가 파는 자동차의 약점만을 말하고 회사의 비리만을 들어낸다면 어느 회사가 그 사람을 사원으로 고용하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은 우리 교인들이 교회를 칭찬하고, 잘 선전해 주고, 가꿔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설사 교회에 많은 단점이 있어도 그 허물을 감싸주고 기도해 주기를 주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마치 종합병원과도 같습니다. 종합병원에는 늘 환자가 있는 것처럼 교회에는 늘 죄인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교회에는 왜 그렇게 죄인들이 많으냐?”고 하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인이 오는 곳이 아니라 죄인이 오는 곳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세상에 오셨다’(눅5:32)고 말씀한 것처럼 주님은 자신의 집인 교회에 죄 많은 인생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환자가 병원에 들어와 치료받는 것처럼 죄인이 예수님 믿고 회개하며 의인으로 성화되어 가는 곳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아 모양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논에는 알곡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자라고 쭉정이도 자라는 것처럼 교회에도 좋은 신자도 있고 나쁜 신자도 있습니다. 나쁜 환자가 많다고 병원 그 자체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나쁜 신자가 있다고 교회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예, 사람들이 주님을 가리켜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또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그러자 예수님이 너무 기뻐 말씀합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18)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즉 튼튼한 반석 같은 기초 위에 교회를 설립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반석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고린도전서 10:4에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는 반석 되신 예수님을 기초로 세워졌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일제의 박해 때나 6.25 때 많은 권세자들이 교회를 없애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더욱 왕성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교인들이 좋은 총, 칼로 무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가 허물 많은 한 인간을 기초로 세워졌다면, 교회가 잠시 후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에 의해 세워졌다면, 그리고 어느 한 장로나 목사에 의해 세워졌다면 교회는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이 세운 곳이요, 교회는 예수님이 기초요,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요,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서 복종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1:22)

그러므로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헌신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에서 봉사하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축복 받고, 예수님께 상급 받는 것이지 사람에게 축복 받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는 것은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우선이지, 불완전한 사람을 만나러오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는 돈 많은 사람, 재주 좋은 사람, 명예 있는 사람을 기초로 세우는 것이 아니고 반석 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교회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시면서 이 땅에 남겨 놓으신 유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웠을까요? 그것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충만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엡3:10)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 이니라.”(엡1:23) “교회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엡3:21)

또한 요한 계시록에 보면 주님이 요한에게 많은 계시를 보여준 후 이 편지를 어디에다 보내라고 했을까요? 당시의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누구에게 말씀하신다고 했습니까? 바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음성,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어디서, 누구에게 가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도 편지를 써서 누구에게 보냈습니까? 로마서는 로마 교회, 고린도서는 고린도 교회,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진심으로 교회를 위해 염려하고 교회를 위해 죽도록 헌신했습니다.(고후11:28) 자기는 못 먹고 고생해도 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요즘 새벽예배 때에 우리는 골로새서를 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24에 이런 감동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 모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고난 덕분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너와 내가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들에게도 조금 고난을 남겨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고난이냐 하면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성도님들은 이 땅에 교회를 세워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는 것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때로는 모진 고난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예수님이 당하라고 남겨준 고난을 자기의 몸에 마저 채운다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하면 몸으로 때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교회를 위해 바울에게 고난을 당하라고 하신 그 고난의 잔을 바울은 피하지 않고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죽음조차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있었기에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숨을 걸고 세워진 교회 안에서 우리는 헌신하고 봉사하며 자기에게도 남겨진 고난을 각자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축복과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는 것은 성도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요 행복입니다. 설사 교회에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서로 용서하고, 인내하며, 기도해 줘야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1:22에 보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은 완전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고로 교회를 업신여기고 교회를 훼방하면 안됩니다. 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고전10:32)

교회에 들어오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반드시 해봐야 합니다. 나는 여기에서 주님의 교회를 세울 것인가? 나의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했다면 이곳 주님의 교회에서 누가 안 알아 줘도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데 끝까지 동참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북 어느 성결교회의 문집사님에 대한 간증입니다. 다니던 교회가 성전을 짓다가 그만 완공을 못 본채 불신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문집사님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하는 중에 전주 예수 병원에서 사람의 눈을 사겠다는 광고가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뻐서 그의 부인에게 자신의 눈을 팔아서 교회를 마저 짖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노발대발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문집사님은 병원에 찾아가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정을 들은 병원에서 그 교회에 헌금을 해주고, 그 소식은 곧 교단에 알려지고, 미국 신문에 까지 보도가 되었습니다. 마침 이 보도를 읽은 미국의 갑부가 많은 헌금을 해주어 그 교회는 성전 건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 집사님의 자녀들은 그 계기로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세우는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왜 교회를 세웠을까요? 바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아무쪼록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교회를 잘 세우므로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