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과연 만날 수 있는가?

날짜: 
2014/09/28
말씀: 
요14:7-20
말씀구절: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설교: 

지난 번 여기 캘거리 연합성회 때 강사로 오신 화곡동 ‘치유하는 교회’의 김의식 목사님 메시지를 들으신 성도님들이 여러모로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그렇게 성회를 은혜롭게 마치면서 제가 그 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설교 하면 그 교단에서는 이단이라는 소리도 나올 텐데요. 물론 우리 순복음 교단에서는 그런 식으로 설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보통이지만 말이에요.”

그 분이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이단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순복음 교단으로 옮길까요?” “아니요. 목사님! 여기도 나름대로 또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냥 계세요.” 여러분! 저도 이곳에 와서 한때 순복음 교단과의 문제 때문에 어려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여기 캘거리의 한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 왜 그런 교단에 있으려고 해? 이번 기회에 교단을 옮겨.”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꿈에서 저에게 교단을 옮기지 말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신속하게 꿈에서 계시하셨는지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이해가 됩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지난해에 쓴 ‘디데이’라는 책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 대부분이 이 책을 읽으셔서 알겠지만 이 책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종말에 될 사건들, 특히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를 앞둔 시점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가를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한국에서 출판을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교단마다 종말론과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고로 기독교 출판사 특히 장로교에 뿌리를 둔 출판사는 이런 이유로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거절의 또 다른 이유는 이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시한부 종말론자의 나쁜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에서는 ‘휴거’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순복음 교단의 출판사인 ‘교회성장연구소’에서는 종말론 해석이 일치하므로 책을 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휴거’라는 단어로는 결국 책을 못 냈지만 하여간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아하! 이래서 하나님이 그때에 교단을 옮기지 말라고 하셨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교단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또 다른 이유는 신학적인 관점 때문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단의 신학 사상은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든지 꿈과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모두 이단으로 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순복음 교단은 오늘날에도 성령이 임하고, 성령께서 꿈과 환상과 계시의 세계를 열어주시는 것을 모두 인정합니다.

만약 제가 교단을 옮겨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그런 교단에 가면 저 역시 김의식 목사님처럼 이단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순복음 교단, 조용기 목사님, 요즘 욕 많이 먹습니다. 같은 교단의 목사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참 죄송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순절 순복음 교단의 신학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오순절 순복음 식으로 은혜를 받았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은혜를 받는 것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순복음 교단은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들 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순복음 교단은 오늘도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모두 인정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목사님들 중에 이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그렇게 신학교에서 배웠고, 그런 식으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말합니다. “성경 66권이 있는데 뭐가 계시가 또 필요하고 예언이 필요하냐? 그건 다 귀신 역사다.”

이 말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론 성경 66권은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더 이상 이에 어떤 말을 덧붙이거나 빼면 그건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시해줍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성령의 은사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요즘은 하도 많은 분들이 순복음 오순절 식으로 은혜를 받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별 탈 없이 잘 수용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현상입니다. 제가 목회하는데 있어서 간절히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주일에도, 금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설교를 하지만 성도님들이 제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표어가 이것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보면 빌립이라는 제자가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시옵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요14:8) 즉 하나님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 빌립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9-11)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본문 16-20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즉 예수님이 하나님께 부탁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예수님과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아- 이 말이 여전히 어렵습니까? 이해가 잘 안됩니까? 17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오늘 분문의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은 죄송하지만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세상에서 나와야 이 영을 받습니다. 이 영은 곧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입니다. 고로 이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요. 내가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자꾸 졸리고 어려운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다시 쉽게 생각해 봅시다. 구약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또 누가 오셨습니까?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인 성령님이 직접 나를 만나주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같이 먹고 마시며 일 년 365일, 7 days a weak, 24 hours a day, 날마다 분마다 초마다 나와 함께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과 우리가 잠시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동거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안에서 말씀합니다. “힘을 내라. 담대해라. 낙망하지 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여러분! 우리는 지금 구약 시대의 하나님, 그리고 신약 시대의 예수님 시대보다 더 좋은 은혜의 시대, 성령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 뒤에, 앞에 있는 분에게 인사해봅시다. “우리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말씀했습니다. “빌립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리고 오늘날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합니다. “나의 영, 성령을 받은 자는 아버지를, 그리고 나를 보았느니라.” 여러분! 성경에 보면 알곡과 쭉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일까요? 속이 찬 것이 알곡이고 속이 빈 것이 쭉정이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채워져야 알곡이고 무엇이 없으면 쭉정이 입니까? 돈이 많으면 알곡이고 돈이 적으면 쭉정이입니까? 명예나 지위가 있고 학벌이 좋으면 알곡이고 그런 것들이 없으면 쭉정이입니까? 노, 아닙니다. 속에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있으면 알곡이고 속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없으면 쭉정이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생명의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누가 생명의 부활을 하고 누가 부활을 못합니까? 속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부활을 하고,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부활을 못하게 됩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실패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실패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령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는데,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를 부인하는 겁니다. 그러니 결국 예수님도, 하나님도, 진리도 제대로 모르는 우매함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단위에서 여러분에게 복음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것도 제가 여러분보다 인간적으로 잘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 분이 저를 목사로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지 말고, 선교사나 부흥사 혹은 신학교 교수로 부르면 좋았을 텐데!”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합니까? 얼마 전 에드먼턴 코스타 때에 선교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고, 선교사로 있으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러자 그 선교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이고 뭘요. 제가 보니 여기 이민 교회 목사님들이 저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말이 잘 안 통하는 타민족에게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선교를 하니까 그래도 괜찮은데, 이민 목회자의 경우는 같은 동족에게 그것도 외국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 분들을 상대하니 참 힘들어 보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만 만나고 하나님과만 대화하고 지내면 참 신앙생활 편하고 좋을 것입니다. 베드로 말처럼 “여기가 좋사오니”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도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때로는 왜 하나님이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우리들을 부르시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하여간 마음에 안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들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은 너무나 괜찮아집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아무쪼록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성령님을 통아여 만나므로 이 외국 땅에서도 행복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