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3:12-20 걸음대로 천천히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쌍둥이인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물론 정확한 표현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의 족보를 강조하기에 아버지가 자녀를 낳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쌍둥이 아들 중 큰 아들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정에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권을 주려고 하였지만 어머니 리브가와 둘째 아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챘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재산권 싸움이 난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권을 동생에게 빼앗긴 형 에서는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눈치를 채고 야곱을 자기 친정인 하란으로 피신 시켰습니다. 잠시만 피해 있으면 에서의 화가 누그러들고 그러면 야곱이 돌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사랑하던 아들 야곱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야곱은 아내가 4명에 아들 11명, 딸 1명을 두게 되었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도망하였던 그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큰 가족을 이루고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형 에서는 20년이 지났는데도 동생에 대한 화를 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가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에서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동생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동생이 온다는 말을 듣고 에서는 400명 군사를 데리고 야곱을 잡으러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다급해졌습니다.
평상시 철야기도를 하지도 않던 야곱이 그날은 죽자 살자 철야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천사와 씨름을 했습니다. 천사한테 맞아서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철야기도를 하며 매달리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20년 전의 원한을 풀지 않고 동생을 죽이겠다던 에서의 분노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난 야곱을 보자 그만 형제의 정이 발동되어 그 분노가 눈 녹듯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님!" "아우야!"
에서는 잃었던 동생을 찾은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동생아, 내가 너를 앞서 인도할 터이니 나를 따르자. 우리가 함께 가자." 이렇게 말하는 에서에게 야곱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13-14절)
그래서 야곱은 형을 먼저 보내고 아내들의 걸음대로, 어린 아들들의 걸음대로, 그리고 짐승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자기의 길을 걸었습니다. 형보다 먼저 가지 않고, 형을 따라가지 않고, 약한 사람들과, 약한 짐승들과 걸음대로 천천히 간 야곱은 에서보다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1. 무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사는 하란에서부터 가나안까지 수백 km를 걸어서 왔습니다.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몇 달 동안 걸린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에서를 무리하게 따라가다가는 지쳐 쓰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형 에서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저는 천천히 가겠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빨리빨리'입니다. 제가 20년 전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였습니다. 우리 한국사람 일행들이 식당에 들어가니 이스라엘 매니저가 종업원에게 말합니다. "야, 빨리빨리 왔다. 빨리빨리 준비해라."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중국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인 주인이 식당에 온 손님들이 한국인들인 줄 알고 말합니다. "빨리빨리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 해." 음식이 나왔습니다. 다시 식당 주인이 말합니다. "빨리빨리 먹어라 해. 빨리빨리 설거지 하게." 형 에서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빨리빨리 고향에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형편을 살피면서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욕심을 부리고 무리하면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과(過)란 말이 들어가면 안 좋습니다. 과식, 과로, 과음, 과신, 과실, 과언, 과장 이런 것들은 모두 무리한 것들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자기의 믿음을 알고, 자기의 실력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만약 야곱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한계를 모르고 급히 무리하게 나아갔다면 많은 손실이 생겼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천천히 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답답하고, 시간 낭비인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덕이 될 때가 있습니다. 반면 무리하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잊지 마십시오. 걸음대로 천천히 가야합니다.
2. 나보나 나은 남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걸음대로 천천히 가겠다는 말은 남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에서는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그들 모두가 말을 타고 왔습니다. 고로 그들은 빨리빨리 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야곱의 식구들과 야곱의 짐승들은 에서를 따라 간다는 것이 무리입니다. 에서를 따라 가다간 틀림없이 탈이 나고 맙니다. 즉 자기 형편에 맞아야 합니다.
까마귀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자기 몸이 까만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얀 칠을 하고 까치 속에 들어가서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룩주룩 비가 왔습니다. 하얗게 칠한 것이 빗물에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까마귀도 아니고 까치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하고 까마귀에게 갔더니 까마귀가 아니라고 하면서 왕따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까치에게 갔더니 까치들도 우리와 다르다고 왕따를 시켰습니다. 그 까마귀는 이리 저리 따돌림을 당하는 불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따라 가지 않고 걸음대로 천천히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걸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각자 얼굴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사명을 다르게 주셨습니다. 남이 한다고 나도 하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 일을 하여야 합니다.
60대 할머니가 머리를 까맣게 염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의 주름살을 모조리 다림질하여 30대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60대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를 않았습니다. 30대 여자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치러 다니고 에어로빅을 다녔습니다. 등산도 다니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결국 지쳐서 죽었습니다. 생긴 대로 놀아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부흥사가 하나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고 싶으냐? 너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내게 잡아 바칠 수 있니?" "저는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아브라함처럼 될 수가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주셔서 미국의 모세로 만들어 주옵소서!" "모세처럼 되고 싶으냐? 그러면 모세처럼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파묻을 수 있냐?" "저는 못합니다." "그러면 너는 모세처럼 될 수가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엘리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엘리야처럼 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면 너는 많은 이방인을 죽일 용기가 있느냐?"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엘리야처럼 될 수가 없단다."
그 부흥사는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예를 들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모두 부정이었습니다. 부흥사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나는 누구처럼 되라고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너처럼 되어라." 이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 이전에 나도 없었고, 나 이후에 나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오직 나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고 나로서 살아야 합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지고 맙니다. 걸음대로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천천히 가는 것이라도 그렇게 가야만 하다면 천천히 가야합니다.
3. 주변과 조화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걸음대로 천천히 걸었다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도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닙니다.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그 자유는 제한되어야 합니다. 내 욕망이 다른 사람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 욕망도 제한받아야 합니다. 야곱이 주위를 살펴보니 자식들은 유약하였습니다. 당시 맏아들 르우벤이 겨우 13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막내아들 요셉은 6살 정도였습니다. 양떼와 소떼가 새끼를 가졌습니다. 아내 4명은 연약한 여자의 몸입니다.
이들을 이끌고 장정들인 에서의 그룹들을 좇아가면 지쳐서 탈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걸음이 아니라 자식과 짐승의 걸음대로 걷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게 주위 사람들을 맞추는 삶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해 내가 맞추며 사는 삶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즉 하나님은 우리가 약한 진토임을 알고 우리 형편에 맞추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70 km만 교외로 달리면 코벤트리(Covenntry)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에 독일군에서 완전히 쑥밭이 된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 성당도 폭격에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후에 이 도시 사람들은 폐허가 된 성당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성당을 잘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웅장한 성당 앞에 이상한 동상이 하나 서있습니다.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는 여인 동상입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이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성당 앞에 웬 여인의 음란한 동상이냐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 동상의 주인은 11세기 경 코벤트리 영주의 부인 고다이바(Godiva)입니다. 왜 영주 부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성당 앞에 세워 놓았을까요? 그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이 마을은 참 가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영주는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였습니다. 백성들을 착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 영주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여보! 국민들 허리가 휠 지경이에요. 세금을 덜 거두고 아껴서 써요." 그러나 영주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은 계속 부탁하고 애원하였습니다. 남편 영주는 견딜 수가 없어서 묘안을 냈습니다. "여보! 당신이 내 요청을 들어 주면 내가 세금을 낮추리이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실오리가 하나 걸치지 말고 발가벗고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면 당신의 요청을 들어주리다."
영주는 이런 제안을 하고 득의만만하였습니다. 도저히 자기 아내가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다이바 부인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고다이바 부인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동네를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동네 사람들은 모두 결의를 하였습니다. 창문을 다 걸어 잠그고 한 명도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영주는 할 수 없이 세금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처럼 이렇게 용기 있는 행동으로 정치적인 논리를 풀어가는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합니다. 나보다 주변을 살펴보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입니다
4.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걸음대로 천천히 걸었다는 의미는 서두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아야 합니다. 야곱의 목표는 벧엘입니다. 시간적인 제약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걸음대로 천천히 벧엘까지만 가면 됩니다. 역설적인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서둘러라. 서두르면 늦어진다."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괜히 조급하게 시간을 스스로 정해놓고 스스로 쫓기고 스트레스를 받지 마십시오. 빨리빨리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서두르십시오. 느림보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각생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유를 가지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쫓기는 인생을 살지 말고 여유로운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세에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3년 일하려고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는 80세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40년을 일하려고 80년을 준비하였습니다. 걸음대로 걸으라는 말씀은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야곱은 서두르지 않고 걸음대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1. 무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2. 남 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3. 주변과 조화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4.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걸음대로 천천히
날짜:
20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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