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도 변화될 수 있다

날짜: 
2010/12/06
설교: 

롬8:18 과거도 현재도 변화될 수 있다.
과거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의 쓰라린 상처가 있던가, 아니면 과거에 큰 죄를 범한 사실로 인해 오늘도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인생의 기쁨을 잃어버린 분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 자리에 과거의 상처나 죄악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인생을 오래 살면 살수록 더 많은 과거가 생기고, 더 많은 과거는 더 많은 상처 자국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의 상처가 도리어 영광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지나온 과거도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면죄부를 사서 과거가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우개로 나쁜 과거를 모조리 지우는 것도 아닙니다. 나쁜 과거의 추억은 그대로 있는데 오늘의 승리로 인해 과거의 고통이 새롭게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 같아서 쉽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야구시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떤 팀이 9회 초까지 0대 7로 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고 있는 팀의 4번 타자인 김원효 선수는 4타석 4삼진의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4번 타자로서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9회 말이 되었습니다. 거의 게임이 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9회 말에 주자가 이렇게 저렇게 살아나가더니 4번 타자인 김원효 선수가 끝내기 역전 만루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기적같이 8대 7로 상대팀을 이겼습니다.
이 팀은 1회부터 9회 초까지 처절하게 못하는 팀이었습니다. 더구나 4번 타자인 김원효 선수는 4 삼진을 당하므로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9회 말에 역전승을 이루었습니다. 이때 과거의 패배는 현재의 승리로 인해 영광을 위한 과정으로 해석이 됩니다. 도리어 패배의 쓰라린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승리의 기쁨이 더 커지게 됩니다. 더구나 역전 만루 끝내기 홈런을 터트린 4번 타자인 김원효 선수는 과거에는 못했지만 오늘의 홈런으로 인해 드라마틱한 승리의 주인공이 됩니다. 즉 과거가 더욱 처절할수록 이를 극복한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야구를 잘 모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축구 시합을 예로 들어봅시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2002년 월드컵 경기 가운데 제일 기억이 남는 경기로 한국 이탈리아 전을 꼽습니다. 그때 안정환 선수가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는데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엉뚱한 데로 볼을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상대팀의 비에리 선수가 헤딩 골을 넣었습니다. 이제 경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한국 벤치에는 어두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이대로 지면 안정환 선수는 뭐가 됩니까? 아마 평생의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설기현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아무 팀이나 먼저 골을 넣는 팀이 이기게 됩니다. 일명 골든골입니다. 그런데 페널티킥을 실수한 안정환 선수가 골든골을 넣었습니다. 결국 2대 1로 한국 팀이 우승 후보 팀인 이탈리아 팀을 이겼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고 있던 한국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승리가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과거는 그대로 있지만 오늘의 승리가 과거를 영광스럽게 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과거의 상처뿐만 아니라 현재의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실패와 고통도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승리로 인해 새롭게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고통도 미래의 승리로 인해 오히려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봅시다.
저희 가정에 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부도가 났습니다. 사업이 망했습니다. 돈 받을 사람은 주지 않고, 빚쟁이들만 덤벼듭니다. 이로 인해 아버님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에는 돈이 떨어져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가난이 밀물처럼 쳐들어왔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가정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아버님은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성경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믿음도 자랐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새롭게 축복해주셨습니다. 결국 뒤돌아보니 현재의 고난도 미래의 영광으로 인해 아름다운 과정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여러분, 혹시 과거가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까? 현재가 여러분을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까?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승리로 도리어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도 미래의 승리로 인해 도리어 간증이 될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과거로 인해 더 이상 슬퍼하거나 울지 않습니다. 현재로 인해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과거도 현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17살에 배 다른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팔렸습니다. 억울하게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상처를 생각하면 이빨을 부드득 갈아야 합니다. "이런 죽일 놈들!" 하고 자다가도 잠꼬대를 해야 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바라보면 자살하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쓰라린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변화시켰습니다.
13년간의 고통을 잘 참고 이겨낸 요셉을 하나님은 애급의 국무총리로 만드셨습니다. 국무총리 자리에 앉아 뒤돌아보니 고통의 과거는 오늘의 승리를 더욱 멋있게 하는 아름다운 과정이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은 형들은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 되었습니다. 강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운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표창장을 주어야 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쓰라린 과거도, 고통의 현실도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들이 됩니다. 원수 같은 사람도, 지긋지긋한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는 축복의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과거로 인해 슬퍼하며 울지 않습니다. 오늘로 인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과거의 창녀였던 사람도 오늘의 변화로 말미암아 과거가 도리어 간증이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과거에 세리였던 사람도 오늘의 변화로 말미암아 더욱 큰 주님의 은혜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오늘의 큰 승리로 과거의 패배를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Amazing Grace)"라는 찬송입니다. 이 곡의 작사자는 죤 뉴튼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과거는 생각하기조차 하기 싫은 잔인한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륜을 저버리는 못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자녀에게도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좋지 못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과거의 죄악으로 눌렸던 그의 삶은 새로운 빛을 얻었습니다. 자신 같은 못된 사람을 용서해주신 은혜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이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가 변합니다. 아니 과거는 그대로 있는데 오늘 내가 변화되므로 과거도 그 변화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즉 과거가 나를 더 이상 정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노래하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수양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과거도 현재도 변화가 된다는 것을... 오늘 당신 주위에 못된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까? 과거가 부끄럽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차 그 모든 것이 영광의 과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크게 나타내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 몇 달 전에 예배에 참석하신 이상혁 성도님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 캘거리 호스피스 시설에서 요양 중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호스피스 시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이상혁 성도님도 위암 말기입니다. 암이 몸에 퍼졌습니다. 가끔은 숨쉬기도 힘이 든다고 합니다. 암이 폐에도 퍼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오늘의 현실은 절망입니다. 더욱이 나에게 다가올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제가 심방 갔을 때 이상혁 성도님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도 아버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면서요? 그때 어떠셨나요?" 이 질문 속에는 본인도 죽음의 고통이 다가옴을 느끼며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대답해주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폐암인데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좋아하시던 빵도 잘 드시고 평안히 가셨어요. 그리고 어머님도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식사도 손수 해 드시고 마지막 일기를 써놓으시고 주무시다가 가셨어요. 통증이 전혀 없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며칠 전에 이상혁 성도님이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관광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제 호텔로 도착하여 내리게 되었는데 호텔에 내리기가 조금 망설여지더랍니다. 그런데 호텔에 내리니까 호텔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더라는 것입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한참동안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 내가 당하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도 천국 호텔을 바라보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천국의 기쁨을 얻게 되면 과거와 현재의 죽음의 고통은 도리어 더욱 큰 행복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죽음이라는 질병도 도리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현재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차 영원한 생명을 얻는 순간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이렇게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결론입니다. 과거에 패배와 실패가 있었다고 인생이 아주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당하는 문제 때문에 나의 행복이 아주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얻는 더욱 큰 승리와 행복이 있기에 과거도 좋은 추억이 되고, 현재의 불행도 더욱 큰 행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이런 행복의 벅찬 감격이 우리들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