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나님께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날짜: 
2014/11/09
말씀: 
눅1:34-38
말씀구절: 

마리아가 처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 수태하지 못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설교: 

종종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못할걸!” 글쎄요.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사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능력에 있어서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는 인류 최고의 과학자와 하나님과 시합을 했습니다. 시합의 내용은 “누가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들 수 있는가?”입니다. 먼저 과학자가 사람을 만들려고 고운 흙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 스톱. 스톱. 시합은 어디까지나 공정해야 하네. 자네는 자네 흙으로 사람을 만들게. 나는 내 흙으로 사람을 만들 테니.”

그러자 그 과학자는 자기 소유의 흙이 한 줌도 없으므로 하나님과의 시합에서 붙어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어디까지 경험을 해보았습니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9)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택한 선민이라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너무 교만하니까 예수님이 말씀한 겁니다. “너희들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 발의 피’ 한자어로 하면 ‘조족지혈’이라고 합니다. 글자 그대로 참새의 발에 붙은 피라는 겁니다. 혹시 참새의 발에 뭍은 피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주 적은 양의 피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하면 뭐라고요? ‘새 발의 피’입니다. (금방 배운 것을 잘 쓰시고 있군요. 머리가 참 잘 돌아가십니다.)

하루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마을에 일곱 명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첫째가 한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손을 보지 못하고 일찍 남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전통에 따라 형님의 자손을 이어주려고 형수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둘째도 자손이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또 셋째가 형수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셋째도 자손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가 한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활 때에는 이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형님 먼저 아우 먼저입니까? 즉 사두개인들의 질문의 의도는 인간에게 부활이 있다면 너무도 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질서가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게 부활이 있으면 안 되는 거구나. 그래 맞다. 맞아. 부활 같은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즉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까 엉뚱한 생각, 잘못된 주장, 틀린 학설을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론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능력이 창조론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첫 페이지, 첫 장, 첫 구절에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걸린 시간이 며칠이라고 하셨습니까?

6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에는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이 세상이 6일 만에 생길 수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몇몇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도와주려고 이런 식으로 대신 변명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루는 천년을 가리킨다. 고로 하나님은 6천년 동안에 걸쳐 창조사역을 하신 것이다.”

혹 어떤 분은 또 이렇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변명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는 어떤 특정한 한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같은 기나긴 세월의 한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변명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해와 달과 별들을 4일째 만드셨다.

즉 하루, 이틀, 사흘 같은 날짜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해와 달과 별들이 첫째 날에 먼저 만들어져야 날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고로 창세기에 나오는 6일 중에 적어도 해와 달과 별들이 만들어지기 전인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지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24시간 즉 하루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때요? 좀 그럴듯하지요? 그러면 또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해와 달과 별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즉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기나긴 한 시대를 가리킨다면 해와 달과 별들이 만들어 진 그 후부터는 즉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일곱째 날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24시간 하루입니까?

그렇게 되면 성경의 문맥상 맞지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만에 만들었다는 것이 자가당착으로 인해 결국 틀린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창조론의 근간이 무너지고 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루가 천년이나 기나긴 한 시대라고 하면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쉬신 겁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도 같이 일곱째 날에 쉬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인간도 만들어지자마자 천년 혹은 기나긴 시대를 쉬었다는 것이 되고....

결국 그렇게 되면 창조론은 모순투성이가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이상한 방법으로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만 난처하게 만들고 맙니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하나님이 6일 만에 천지만물을 못 만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도리어 저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 마음만 먹으면 단 1초도 안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니까요. 여러분들도 저처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니- 저처럼 믿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안 믿으면 어쩌란 말입니까?

생각해보세요. 이제 잠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때까지 주안에서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모두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리고 휴거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하고 변화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6천년 내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같은 오래 시간이 걸려야만 부활을 합니까? 혹은 6일 정도는 되어야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부활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도 안 걸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아시다시피 빛이 번쩍거리고 날아가는 속도를 계산해보니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하고 반이나 돕니다. 이를 광속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지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부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안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부활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 여기서 ‘순식간에 홀연히’라는 것을 시간으로 따지면 King James Version에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이를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즉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데에는 1초도 안 걸립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인간적인 지식이나 능력으로 생각해봅시다. 그 동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주안에서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형체도 없습니다.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먼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을 단 1초도 안 걸리고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왜 하나님이 6일 동안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천지만물을 못 만드시겠습니까?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아니 1초도 안 걸리고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실 수 있다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못 믿습니까?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자기가 못하니까 남도 못하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도 보십시오. 아미추어가 있고 프로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생각에는 그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도저히 못합니다. 그런데 프로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냅니다. 거기에다 프로 중에도 지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지존은 모든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 지존 위에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은 너무도 신기합니다. 지존이라는 사람도 그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데 그 신이라 불리는 사람 위에 진짜 신들이 있고, 또 그 신들 중에도 창조주 하나님 신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이 신중의 신인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물을 단 1초도 안 걸리고 만드실 능력이 있습니다. 아- 우리가 이런 능력의 하나님을 좀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존심이 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때 천사가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루는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부탁합니다.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주님께서 대답합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님이 칭찬합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도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예수님이 한 마디 말씀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한 마디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바람아 잠잠해라. 풍랑아 잠잠해라.” 하시니 바람과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이것을 믿고 주일학교 애들이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파도가 잔잔해졌네.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여러분! 내가 못한다고 하나님도 못하는 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내 인생을 행복하게 꾸려갈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면 왜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그리고 내가 못하는 것을 하나님도 못하신다면 그 분이 어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능력의 한계를 주신 것은 전능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복해지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 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때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의심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을 떨쳐내라고 권면합니다.

하루는 귀신 들린 어린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사정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이 단호히 대답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여러분! 하나님께 나오실 때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너무나도 쉽습니다. 인생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인생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면 어떨까요? 인생사는 것이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를 쉽게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들은 내게로 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보잘 것 없는 너희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전능한 나의 능력, 나의 힘으로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믿습니다.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