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랑 없이도 가능할까요?

날짜: 
2024/05/19
말씀: 
고전13:1-3
말씀구절: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설교: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에 관해서 아주 잘 요약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가리켜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성경에 입각하여 만든 노래도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라는 노래입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옛날엔 결혼식 축가에 이 노래를 참 많이 불렀습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 1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절에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우리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혹시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제 설교가 좀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젊었을 때보다 지금은 아무래도 성경을 보는 지식과 시각도 더 넓어졌겠지요? 그리고 목회의 경험도 더 생기다보니 지금은 평범한 성경 지식의 설교보다 성경의 의문점이나 난제에 관하여 좀 더 터치하는 설교를 하게 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성경을 연구하고 좀 더 깊게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의 의문점이나 난제들을 주일 설교에 하려고 하면 어려운 것을 보다 쉽게 풀어줘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저에게 어디 딴 데 가지도 못하게 하시고,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그저 여기 캘거리의 한 교회에 오랫동안 짱 박혀 있게 하시면서 성경을 많이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묵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셨습니다.

오늘의 설교도 그렇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뭐 그냥 이해가 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는 순간 뭔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3절을 한번 보실까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 여기서 뭐가 이상하냐 하면 사랑이 없이 과연 내가 모든 것을 다 내어주면서까지 구제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데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물론 순수한 사랑의 동기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체면이나 명예를 위해서, 혹은 남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을 쓰고, 어느 정도의 구제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도 바치고, 어느 정도의 노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나면, 그로 인해 나는 무일푼 완전 거지가 되는데 그게 순수한 사랑 없이 가능하냐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한국에 보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면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한 달에 몇 개씩 생기면 뭐 갑부가 아닌 이상 일반 서민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거기 가지도 않고, 주지도 않으면 인간관계가 안 좋아질까바 마지못해 가고, 마지못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축의금 조의금을 내긴 내지만 그 동기가 순수한 사랑이 아닌 체면유지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 많은 액수의 돈을 주면서 자신도 나중에 꼭 돌려받을 생각을 하거나 “내가 이래봬도 꽤 의리 있는 사람이다.”라는 일종의 자기 과시나 처세술이 동기일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는데 그게 순수한 사랑 없이 가능할까요? 부모의 경우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차와 집, 전 재산을 “너 다 가져라.” 하고 물려줄 수 있습니다. 왜요? 부모는 자기 자녀를 순수하게, 거짓 없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순수한 사랑은 없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구제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하고 찾아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좋은 예화가 어디 있을까 하여 여러 주석들을 살펴보았지만 알맞은 예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생각하고 더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뭐야- 이거? 이건 그냥 가정법에 불과한 건가?” 그러고 보니 영어 성경에 1. 2. 3 구절 모두 If 가정법으로 써졌습니다. 가정법이 맞긴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가정법이라도 1절과 2절은 일어날 수 있고, 가능성이 있는 가정법입니다. 1절을 보세요. 순수한 사랑이 없어도 천사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사노바, 사기꾼, 제비족, 위선자, 정치가, 그리고 가짜 목사, 가짜 선지자도 이에 해당될 겁니다.

저는 목사지만 이에 해당이 안 되겠지요? 저는 천사처럼 부드럽게 말하지 않잖아요? 좀 베드로처럼 엘리야처럼 직선적으로 말해서 오히려 탈이 나잖아요? 그리고 2절에 보면 순수한 사랑이 없는 예언자, 지식인, 박사, 능력자도 제법 있습니다. 그들 중에 보면 순수한 사랑이 없어도 귀신을 잘 쫓아냅니다. 순수한 사랑이 없이도 병자들 안수하여 잘 고칩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이 없이도 점쟁이처럼 그 예언 잘 맞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사랑 없이 자기의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사람이 나오고, 더 나아가 사랑 없이 자기의 생명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물론 이 가정법은 앞선 1. 2절의 가정법과 좀 다릅니다. 1. 2절은 그래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조건 가정법’이라면 3절은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거의 ‘순수 가정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도 제가 성경을 묵상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비슷한 사람이라도 찾아보려고 계속 생각하고 묵상하다가 두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자기의 부동산 소유를 팔아서 교회에 큰 액수의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동기가 무엇일까요?

순수한 사랑의 동기가 아닙니다. 자기가 남보다 더 뛰어나 보이려고 하는 명예욕과 교만함이 그 동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사랑 없이도 많은 돈을 헌금하고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부부가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한 것도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큰 구제를 했더라도 그 동기가 순수한 사랑의 동기가 아닌 불손하고 거짓이 되니까 자신들에게 유익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로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이겁니다. “내 안에 큰 헌금을 하거나 큰 희생을 할 만한 순수한 사랑이 없다면 적어도 교만하거나 거짓되지는 말자.”

미혼의 청년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사랑 없이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이미 결혼하여 애를 낳고 사시는 분들이 한번 대답을 해보십시오. 사랑 없이 결혼해도 대충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부부가 한 쪽만 손드시는 분은 왜지요? 뭐- 그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행복하게 살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아,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시는 모양이죠?

뭐- 나름대로 각각 대답이 다를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 본문에 입각하여 대답을 하자면 뭐지요? “순수한 사랑이 없으면 꽝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순수한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행복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도 아니고,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오’도 아니고,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톨케’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를 의미합니다. 이런 아가페 사랑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고, 이런 아가페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겁니다.

즉 행복의 전제 조건은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즘 하나님을 믿어도 자신이 좀 불행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있습니까?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회복해보십시오. 그러면 행복이 따라올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사랑 없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경우가 나옵니다.

아니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불 속에 집어 던질 수가 있습니까? 불속에서 타죽으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흔히 병원에서 통증지수를 1에서 10으로 표현할 때 가장 큰 통증 중 하나는 ‘작열통’입니다. 즉 인간의 몸이 직접 불로 태워지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지옥이라고 하면 가장 고통스러운 곳인데, 이에 대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8-49) 고로 사랑도 없는데 스스로 이런 지옥과 같은 고통의 불속에 들어가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순수 가정법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아- 하나님도 세상을(너와 나를, 원수를) 이처럼 사랑했기 때문에 독생자까지 내어줄 수 있었잖아요?(요3:16)

이를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도 사랑이 없으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사랑 없이 내가 남을 위해 자원해서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혹시 이런 경우가 어디 있지는 않을까 찾아보았습니다. 한국에 보면 공산주의자들이 반미 데모를 할 때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자살을 합니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동기가 분명히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사랑 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 국민들을 선동하는데 씁니다. 좀 민감한 용어지만 이를 ‘시체 팔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죽어도 순수한 사랑의 동기로 죽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죽음이지만, 순수한 사랑 없이 죽으면 그것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쉬운 말로 ‘개죽음’이라고 합니다.

자- 이제 슬슬 오늘의 결론을 냅시다. 요한계시록 2:4에 보면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에게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첫사랑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물론 순수한 사랑 없이 우리는 방언도 할 수 있고, 예언도 할 수 있고, 천사처럼 말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내 모든 것으로 구제할 수 있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사랑이 없으면 그 방언, 그 예언, 그 믿음, 그 희생, 그 봉사, 그 구제 모두가 꽝이 되고 맙니다. 아무런 유익이나 보상이나 상급이 없습니다. 고로 오늘 우리의 숙제는 이겁니다. “순수한 사랑을 회복하자.“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가리키면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5)

그렇습니다. 천국은 순수한 사랑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순수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교회를 오래 다녀도 그 순수한 사랑만큼은 계속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같이 한번 따라 해봅시다. “하나님, 제가 그 순수한 사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 마음의 중심 즉 동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아십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보실 때, 너와 나의 마음의 중심이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까지 순수하신 하나님과 순수한 사랑을 영원토록 나누시며 더욱 더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이 세상엔 순수한 사랑 없이 단지 사랑의 폼만 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한 사람입니다. 주님, 좀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그 순수한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그 순수한 사랑을 우리들에게 심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들도 그 순수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